이상향, 우리나라의 십승지옛날에는 생산력이 낮아 살기가 매우 힘들었다. 거기에 외침이 있을 때는 적과 싸우면서 농사를 짓고 살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흉년, 전염병이 들 때는 기근(飢饉)이 생겼다. 이러한 난세일수록 민중들의 이상향에 대한 열망은 강하게 나타났다. 고전소설 「홍길동전」의 율도국, 「허생전」의 빈섬, 「토끼전」의 용궁 등이 그러한 곳이다. 따라서 이상향은 당대의 부조리한 현실을 비판하면서 당대 민중의 염원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고 하겠다. 이상향은 어떻게 보면 관념적인 이상 세계이므로, 영원히 실현할 수 없는 신기루(蜃
산줄기와 물줄기를 제대로 나타낸 신경준(申景濬)의 『산경표(山經表)』과거 전통적 산지 인식 체계는 분수계에 따라 산맥을 인식했다. 이것을 잘 표현한 것이 조선 시대 영조 때 여암(旅庵) 신경준(申景濬, 1712~1781)이 편찬한 『산경표(山經表)』이다. 그러나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산맥도는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져 지질과 지각 변동, 지하자원 분포 파악에는 쉬울지 몰라도, 분수계를 전혀 반영하지 못해 산줄기와 물줄기를 제대로 나타내지 못한다. 분수계는 지질 구조와는 전혀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지형은 북고남저(北高南低),
광양 고을의 명칭은 삼국시대 백제 때는 마로현이라는 지명으로 사용해오다가 통일신라 경덕왕16(757)년에 희양현으로 변경 고려국이 들어서면서 태조 왕건23(940)년에 광양으로 이름한 것이 오늘에 이르러 천년을 넘긴 유구한 역사를 가진 고을의 명칭 광양이다.읍성(치소)의 천읍(遷邑)위치 변천을 보면 백제 때는 수령이 마로산성(마로산성1:2005p21.265)에서 광양 백성을 읍치 했다. 통일신라(757-939)시대 8세기를 전후해서는 현재 광양매일 시장 일대로 옮긴 것이 예상되며 그 이후 통일신라 백여 년을 지나 고려시대를 거쳐 조
Sunshine광양愛 연재를 시작하며‘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물음은 누구든지 해 보았을 것이다. 이는 인간의 존재론적인 문제이고, 자신의 뿌리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다. 이 해답은 어쩌면 운명과도 같아서 하늘에 맡겨 두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사람으로 태어나 이러한 철학적 사유를 해 보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인 것 같다. 또 다른 물음은 ‘어떤 땅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이다. 이 물음은 첫 번째 물음과 다르다. 운명이 아니라 선택의 문제인 것 같다. 안전한 땅에서 행복한 노후를 보내
선생은 초계최씨 13세손(중시조)으로 부 한영(漢榮)공과 모 청주한씨의 사이에서 백운산과 북두성의 정기를 타고났다 해 휘는 山斗며 자는 景仰 시호는 文節 호는 新齋다. 1483년 4월 10일 광양 봉강면 부저리 월곡마을에서 태어났으며 영인 이천서씨와의 사이에 2남(어모장군 병길. 사헌부 장령 정길) 1여(훈련원 첨정 순천인 朴以良의 처)를 두었다. 선생은 어려서부터 총명해 6살에 서당에 나가 공부를 했고 8세때에 詠牛頭(영우두) 詠鳥(영조)와 같은 詩를 지었으며 10세 때에는 문장과 필법이 뛰어나 세인을 놀라게 해 광양현감이 문방사
극한 기후가 유발한 자연재해 피해는 이제는 세계 각지에서 일상적 풍경이 됐다. 최근 그리스 로도스섬에서는 이상 고온으로 걷잡을 수 없는 산불 피해가 발생했고, 인도와 캐나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폭우로 산이 무너지거나 도시가 침수돼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지구 전역을 덮친 기후 위기는 이미 인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재앙이 되고 있다.우리나라는 올해 초부터 가뭄, 냉해, 우박, 병충해 피해가 속출했고, 7월에 들어서는 극한 호우가 지속되면서 침수에 따른 인적·물적 피해가 곳곳에서 발생했다. 올해 유독 빈번한 기상이변은 농작물 생산과
한여름 쉴 새 없이 물가에서 북적거리던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떠나갔을까? 내 곁에는 다만 말없이 흐르는 물과 그 곁에 우두커니 서 있는 나무들이 정물인 듯 적요하다. 그것이 그들의 본래의 모습임에도 쓸쓸함이 묻어나는 것은 지난 여름날의 소음들이 극심했던 탓일 것이다.뜨거운 날씨와 마치 전쟁하듯 치러낸 여름이었다. 무더위를 피해 자연의 품에 안긴 사람들은 너나없이 물속에서 왁자지껄 소리치며 헤어날 줄 몰랐고 그 일탈의 즐거움이 때때로 자연에서의 소음이 되기도 했다.그러나 한편으로는 물 위의 평상에서 줄곧 누워있거나 종일 멍하니 흘러가
올해는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70년이 되는 해다.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은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으로 모든 전투는 중단된다. 1951년 7월 10일경부터 정전협정 체결을 위한 회담이 760여 차례 진행된 후 겨우 맺어진 합의다. 군사분계선 확정과 전쟁포로 문제로 길고 길어진 까닭에 3년 중 2년은 회담도 했지만 3·8선 부근에선 영토를 확장하기 위한 피 말리는 전투가 진행됐다고 전해진다.정전은 전쟁의 완전한 평화적 해결을 이룰 때까지 군사적 충돌행위를 멈추자는 합의다. 정전협정 이후 평화적 해결을 위한 회담은 단 1차례만
1999년 1월 26일부터 2001년 11월 2일까지 방송했던 텔레비전 프로그램 ‘칭찬합시다’를 시작으로 전국에 ‘칭찬 신드롬’이 번지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었다. 당시 IMF로 국민이 실의에 빠졌을 때 남모르게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을 릴레이 형식으로 소개하면서 서민들과 함께 희로애락을 같이하며 칭찬에 인색한 사회 분위기를 전환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광양참여연대는 우리 지역에서 칭찬보다는 뒷담화, 인정 보다는 시기와 질투가 난무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감지돼 칭찬과 인정이 필요함을 간절히 느끼며 ‘칭찬합시다. 100인 칭찬 릴레이 운
지방자치분권 및 지역균형발전에 관한 특별법은 풀뿌리자치의 활성화와 민주적 참여 의식 고양을 위해 읍·면·동에 해당 행정구역의 주민으로 구성되는 주민자치회를 둘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지난 5월 초 윤석열 정부 행안부에서 만든 ‘2023년 주민자치회 표준조례 개정안’을 두고 말들이 많다. 주민을 뺀 주민자치회라든지, 자치가 사라진 관치를 향한 주민자치회라든지, 민주주의의 퇴보라는 외침이 그 중심이다. 그 어느 때보다 주민자치가 요구되는 현 상황에서 지역의 주인인 주민은 주민자치회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계실까. 본 시의원이 부
지난 7월 11일은 인구의 날이었다. 1987년 7월 11일 전 세계 인구가 50억 명이 돌파한 것을 기념하는 ‘50억의 날(The Day of Five Billion)’에서 유래해 1989년 UN개발계획(UNDP)이 매년 7월 11일을 세계 인구의 날로 제정했다. 인구수, 인구 분포, 고령화 등 다양한 인구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환기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전 세계 규모의 인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 결과가 이날 발표되기도 한다.한편 전 세계 인구는 1999년 10월에 60억 명, 2011년 10월에 70억 명을 돌파했다. 오늘
지난 12일 광양읍 한 아파트에 발생한 화재로 전소되는 피해를 입어 실의에 빠진 피해 주민이 생활의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직접 찾아가 생필품이 담긴 구호품을 전달하고 위로해 주었다. 소중한 삶의 보금자리를 잃은 주민은 10살, 3살 어린아이들과 함께 잠잘 수 있는 임시거처를 광양읍 지역사회보장협의체에 문의했으나 해줄 수 있는 제도적 방법이 없었다. 안타까운 소식을 보고받은 필자는 지역 시의원에게 연락하고 소셜 네트워크에 이러한 사실을 올려 제도적 조례 제정을 요청했다. 마침 지역 시의원 두 분과 함께 있었던 창덕아파트 입주자 대표
망덕(望德)산의 산명 기록을 보면 높이 197.2m로 풍수지리설에 천자봉조혈의 명당이 있다해 많은 구산객들이 한때는 모여든 곳이기도 한 명산이다.조선조 지리지에는 기록이 없으나 고종9(1872)년에 왕명으로 제작한 광양현 지도에 망덕산 名이 처음으로 나타나며 조선조지지자료(1911)에 이어 광양군지(1925:군의 동쪽 오십리에 있다).조선환여승람(1936) 기록에는 “在郡東五十里天皇峯特起南通大海可擅明勝: 군 동 오십리에 있다.천황봉이 특이하게 남쪽에서 일어나 바다로 통하고 있어, 가히 명승으로 자처할만하다”라는 기록이 있으며 ‘백두
식빵에 환한 햇살을 발라먹었다. 버석하게 마른 식빵은 익숙하리만치 입술에 감겼고 밤새 메마른 식도로 출입했다. 주스 한 모금도 없이 넘기는 아침은 너무 이른 새벽이라 새도 지저귀지 않았다. 건물 새로 수줍게 고개를 내미는 햇살을 보며, 그렇게 내 모의고사의 날이 밝았다.평소보다 일찍 일어난 하루는 참으로 비몽사몽 해 뱉어낸 날숨이 하품으로 변하기 십상이었다. 삼삼오오 모여 등교하던 학생들은 오늘만큼은 서로 떨어져 각기 길을 걸었다. 저마다의 손에는 영어 단어라던 지, 탐구 요점 정리라던 지, 긴 이름 붙은 종이를 들고 있었다. 그
요즘 들어 골목이나 시냇가에 놀고 있는 어린아이들이 제법 눈에 띈다.몇몇이 어울리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시냇가 바위틈을 헤집으며 서로를 부르며 깔깔거리며 웃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물속의 고기떼들을 보며 큰 일이라도 생긴 듯 “빨리 와! 여기 엄청나!”하며 급히 친구들을 부르기도 한다.아이들은 몰려가고 흩어지는 일을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 잠잠해진다.거칠 것 없는 그들의 움직임과 소리가 잠들어 있는 듯한 산촌의 고요를 깨운다.전에 없던 광경이라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게 되고 어떤 아이들인지 궁금증이 생긴다.어디에서든 한곳에 머물지 않고
각종 옷가지가 산더미처럼 높이 쌓여있다. 작아서 안 맞는 멜빵바지, 목 부분이 헤져 너덜거리는 빨간색 반팔 티. 온갖 여름옷들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엄마는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대강 문지른 뒤 옷 상태를 확인하고 있었다. 엄마는 아련한 눈빛으로 큰 두 눈꺼풀을 끔뻑거렸다.“이건 너가 초등학교 학예회 때 입은 거고, 이거는 너 생일 때 사준 옷…”엄마의 손은 차마 옷들을 종량제 봉투로 옮겨 담지 못했다. 허공만을 허우적거릴 뿐이었다.“그냥 버려, 다 작고 헤져서 못 입어”엄마는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더니 또 다른 티셔츠를
푸릇푸릇한 나무들은 계절이 바뀌면 그 날씨와 사람들의 옷차림에 맞게 잎들을 바꿔가곤 한다. 사람들도 계절이 바뀌면 그 날씨와 특별한 일정에 맞춰 옷들을 골라 입곤 한다. 나도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으며 그렇게 살아갈 예정이다. 하지만 내 옆엔 그렇게 살아가지 못하는 한 사람이 있다. 언제나 한결같이 나에게 웃어주시고, 나에게 칭찬과 마음을, 위로와 조언을 함께 건네주신 나의 외할머니이다. 이제부터 내가 써 내려갈 이야기는 나의 어설픈 글이자, 외할머니께 바치는 서툰 것밖에 없는 내 마음의 글이다. 광양에 한 마을 언덕
온 나라가 들썩이고 있다. 일본 후쿠시마 핵 오염수 문제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하에서 어디 문제가 이것뿐이겠는가마는 현재 전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는 최대 이슈는 바로 핵 오염수 문제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일본의 해양 투기가 코 앞이기 때문에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그러나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의 태도다. 우리 국민의 안전과 생명, 농어민들과 수산업 관련 종사자들의 생존권은 나 몰라라 하면서 일본 편만 들고 있어서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깡그리 앗아갈 수도 있는 중차대한 일에 어느 나라 대통령인지 모를 행동을 아
사람마다 차이가 나겠지만, 만 75세가 된 올해부터 나는 생각하지도 못한 많은 인체의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나름 성실하게 살아왔던 지금까지의 삶이 계속되라는 생각에 추호도 의심이 없었다.아름답고 신비스러운 꽃을 기대하며 85개의 화분에 구색과 조화까지 생각하며 가능하면 4계절 내내 꽃을 볼 수 있는 수종으로, 시간이 흐를수록 품위와 깊은 정을 느낄 수 있는 종류를 고르는 데 최선을 다했다. 햇빛을 좋아하는 꽃들은 채광이 잘 되는 창 쪽으로 놓고 환기와 물 주기에도 신경을 썼다. 그런데 불과 몇 달 사이에 물을 주
학창 시절 나는 비 오는 날을 가장 싫어했다.항상 일하시는 부모님 덕에 우산을 안 챙겨 가는 날엔 비를 쫄딱 맞고 추운 집안에 혼자 들어서야 했는데 그게 너무 싫어서 매일 아침 일기예보 ARS를 듣고 강수확률이 30%가 넘으면 꼭 우산을 챙겨 등교했다. 행여 우산을 못 챙긴 날에는 아무 가게에서 빌려서라도 비를 안 맞으려고 했다. 이제는 휴대폰 음성검색으로 쉽게 날씨를 확인하고 자동차 시동을 켜면 알아서 오늘 날씨를 친절하게 알려주는 편리한 세상에 살고 있지만, 아직도 15년 이상 매일 아침 걸었던 일기예보 전화번호가 기억나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