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시골로 가는 마을버스를 탈 때가 있다. 승객 대부분은 어르신들인데, 창밖 풍경을 보며 가다보면 차안에서 나누는 이야기가 저절로 귀에 들어온다. 농사일로 시작된 이야기는 끝도 없이 이어진다. 말로만 들었던 사랑방에 앉아 있는 느낌이다. 마을의 대소사며 이웃의 건강 이야기, 누구네 자식 승진 소식까지 주거니 받거니 쉼 없이 이어진다. 분명 타는 곳이 달랐는데 모두 한 동네 사는 것처럼 호응하고 소통한다. 그러다 “잘 가쇼” 한 마디 툭 던지면 이야기가 끝이 난다. 내릴 때가 된 것이다. 이번 마을 정거장은 하운마을이다. 행복? 몰
MG광양시새마을금고 ESG봉사단 발대식 및 결의대회가 지난 22일 성황다목적체육관에서 열렸다.전국 새마을금고중 ESG경영 선도 금고로서 ESG 운영위원회를 선정해 발대식을 진행한 이 날 행사는 광양시새마을금고 ESG 운영위원회 위원 위촉장 수여, 경품추첨, 시립합창단 공연, 명랑운동회 및 레크레이션, 노래자랑 등이 펼쳐졌다. 광양시새마을금고 ESG 운영위원회는 김재숙 위원장을 위시해 크리스마스 트리설치, 시민과 함께하는 MG투어, 일회용품 줄이기 캐페인등을 펼치고 있는 그린MG실천단, 국수나눔 봉사, 경제독서골든벨, 버스킹 음악회
농어촌 도시였던 광양시는 광양제철소가 새롭게 둥지를 틀면서 급속도로 산업 도시화로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경제적인 성장에 비해 문화예술 인프라에 대한 발전은 성장과 보조를 맞추지 못하고 있어 도시 발전의 한계점에 부딪힌 상태다.특히 광양지역에서는 한국 문단에 큰 영향을 끼친 다수의 문인들이 인연을 맺고 있지만 지역에서는 이들을 기념할 공간이 부족해 지역의 정체성 확립과 청소년들의 정서함양 및 지역 발전을 위해 문학관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문학관은 지역의 정체성 확립 및 지역문화의 구심점이 되고 지역 사람들이 살아온 역사와 문화,
며칠 전 구례향교에서 김평부 대금 명인의 공연을 보았다. 뒤풀이 자리에서 막걸리 한 사발에 흥이 오른 참석자들의 요청으로 김평부 명인은 북이 아닌 기타를 잡고 이원규 시인의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을 불렀다. 안치환의 노래에 익숙한 필자에게는 너무나 신박한 버전이었다. 그 음색과 멜로디에 압도당해 지금도 헤어나지 못하고, 결국 이번 글의 제목마저도 ‘행여 마로산성에 오시려거든’으로 정했다. 이원규 시인에게 양해를 구한다.광양의 첫 이름, 마로(馬老)는 무슨 뜻일까?모두가 아는 것처럼, 광양의 백제 때 이름은 ‘마로’였다. 하지만
상운마을을 찾아가는 날, 상운(上雲)이라는 이름을 의식해서인지 자꾸만 눈길이 하늘로 향했다. 동화 속 마을처럼 하얀 구름이 드리워진 예쁜 마을이 나타나려나. 기대와 설렘을 안고 옥룡에 들어섰다. 필자의 마음에 부응하는 듯 백운산 자락 곳곳에 뭉게구름이 두둥실 떠올랐다. “어르신들 마음이 포근해서 들어왔어요. 이곳에서 편안하고 안정된 노후를 보내려고요.” 마을을 거닐다 처음으로 만난 손장일(63세) 씨의 말이다. 광양시청에서 퇴직하여 상운마을을 제2의 삶터로 정했고 강아지 복남이와 중흥사까지 산책하는 것이 큰 즐거움이라 한다. 가족들
“진정으로 무언가를 꿈꾸는 사람에겐 바로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젊은 때입니다.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딱 좋은 때이죠.” 미국의 화가 그랜마 모지스(Anna Mary Robertson Mosies, 1860-1961)의 말이다. 그녀는 전문적인 미술 교육을 받은 적이 없지만, 76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101세까지 무려 1600여 점의 그림을 남겼다. 그중 250점은 100세가 넘어서 완성했다. 주로 뉴욕과 버지니아 농장에서 보냈던 전원생활의 소박한 풍경을 화폭에 담았다. 평생 농장 일을 하며 열 명의 자녀를 키우는 일에 전념했던
산골의 겨울은 몹시 추웠다. 사촌들과 산에 올랐다. 갈퀴로 솔가리와 낙엽을 긁어모으는 일은 처음 하는 일이라 서툴렀지만, 놀이처럼 재미있었다. 이모집과 붙은 바로 뒷산인데도 사촌 언니는 연신 둘째 손가락을 펴서 입술에 대고 말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렇게 해 온 나무를 아궁이에 넣었다. 푸른 연기를 내뿜으며 솔가리가 타닥타닥 튀었다. 가늘고 긴 불꽃을 내며 타 들어가는 솔잎이 아름다웠다. 땔감을 구하러 산지기 몰래 산을 드나들던 시절의 이야기다. 이모 집은 옥룡면 추산리 양산 마을에서 있었다. 우리 연구회의 필자 열 명이 옥룡
대학 1학년 여름방학에 여고 친구들과 무주구천동에 놀러 갔다. 그곳에 머무는 3일 내내 비가 내렸다. 민박집에서만 시간을 보내다가 여행 마지막 날에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백련사까지 걸었다. 계곡을 타고 오르면서 그 유명한 무주 구천동은 언제 나오는 거냐며 푸념했다. 그도 그럴 것이 명성에 걸맞지 않게 그곳은 실개천이었다. ‘금강산 중은 금강산 좋은 줄 모른다더니’ 우리가 그 꼴이었다. 물 많고 깨끗한 옥룡 계곡을 지척에 두고도 우물 안 개구리로만 살아온 광양 여자 여섯은 그 가치를 몰랐던 것이다.이제는 안다. 햇빛 고을인 데
퀴즈 하나. 광양에서 용이 세 마리 사는 동네는 어디일까요? 정답, 옥룡면 용곡리 흥룡마을.우스게 소리이지만 마을 사람들의 자부심이 뿜뿜 넘치는 이야기이다. 동천을 벗하는 신재로를 따라 올라가다 면사무소 지나면 대방교회가 나온다. 교회 옆 다리를 건너면 바로 흥룡이다. 강가에 바짝 닿은 초암마을이 오른쪽에 있고, 왼쪽에는 대방마을이다. 신라시대 도선국사가 응골이라 불리는 마을 뒷산이 용이 하늘로 오르기 위해 머리를 들고 있는 모습이라 하여 흥룡이라 했다는 전설이 있다. 용은 상상의 동물이라 확인 불가능하고 대신 호랭이굴이라는 지명이
필자는 전과자다. 죄를 지어 감옥에 다녀온 전과자(前科者)가 아닌, 전공을 바꾼 전과자(轉科者)이다. 1984년 당시 최첨단과학으로 주목받던 유전공학과에 진학했다, 1987년 6월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면서 역사교육으로 전공을 바꾸었다. 그런 연유로 필자의 옛 친구 중엔 유전공학 박사가 몇 명 있는데 그중 한 절친과 관련된 이야기다.유전공학 박사도 고인돌은 모른다2000년대 초반 4월 어느 일요일 아침에 유전공학 박사인 절친의 부친상 전화를 받았다. 당시엔 장례식장이 아닌 집에서 초상을 치르던 때였다. 절친의 고향은 경북 청도였다.
6월 초, 맹하(孟夏)가 아니라 성하(盛夏)의 계절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필자가 산본마을을 방문한 지난 토요일은 뜨거운 기운이 벌써 턱밑까지 차올랐다. 막 모내기를 마친 들판에는 연초록 벼잎들이 때이른 무더위를 사랑하는지 열심히 생명의 물을 흡입하고 마을 뒤 서산(西山) 밤나무들은 야릇한 냄새를 뿜는다. 마을에는 매실 수확철이라 그런지 사람은 만나기 어렵고 산비둘기 소리만 가득하다. 마을회관에 들어서니 할머니 몇 분이 담소를 나누고 계셨다. 거의 매일 점심 식사 후 자연스럽게 모인단다. 덕례리에서 살다가 스무 살에 이 마을로
광양시가 지속가능한 천만 명 관광시대를 열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가운데 배알도와 망덕포구 일대의 관광지도가 새롭게 탄생할 전망이다. 호남정맥을 완성하고 550리를 달려온 섬진강이 바다와 만나는 망덕포구는 광양을 비롯해 곡성, 구례, 하동 등 섬진강권과 전남, 광주, 경남, 부산, 울산 등 남부권을 잇는 ‘ㅗ’ 형 관광벨트를 완성하는 핵심 교점이다.망덕포구 일대에는 전남형 지역성장 전략사업 ‘섬진강 속 빛나는 윤동주의 별빛아일랜드’, 남부권 광역관광 개발계획 ‘아트케이션 관광스테이’, 남도특화경관 조성사업 ‘섬진강을 품은 별빛
만약 당신이 광양에 전원주택을 짓는다면 어떤 기준으로 마을을 선택할까? 필자는 십여 년 전 몇 가지 기준을 정했다. 첫째, 직장과 종합병원이 승용차로 30분 이내. 둘째, 마을 뒷산과 앞 시냇가 즉 배산임수(背山臨水)의 풍광. 셋째, 마을의 전통과 인심. 넷째, 축사 등 주변 혐오 시설의 영향을 받지 않는 곳 등이었다.그래서 옥룡면 남정마을을 선택했다.지금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의 선택이라기보다는 마음이 저절로 끌렸다는 편이 옳을 것 같다. 창밖을 통해 넓은 들판과 멀리 국사봉 능선을 바라보면 마치 고향에 와 있는 착각이 든다. 퇴
제28회 세계 환경의 날 기념 시민참여 한마당 행사가 지난 3일 마동근린공원에서 열렸다.광양민간환경단체협의회 주최로 열린 이날 행사는 온실가스 감축과 에너지절약, 자원 재활용의 실천 방안을 알리고 실천함으로 환경과 지구를 살리고 저탄소 녹색성장 친환경 도시 광양을 만들어가기 위해 마련됐다.‘내가 꿈꾸는 플라스틱 제로 도시 광양’을 주제로 환경단체 회원과 시민, 공무원, 기업체, 학생 등 3백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행사는 환경보전에 기여한 유공자에게 표창장을 수여하고, 체험행사 등을 함께하며 환경보전 실천을 다짐했다.이날 행사는
장시에 대한 자료를 찾다 보니 수군 주둔지였던 다압면 ‘섬진진(蟾津鎭)’의 한 병졸이 장세(場稅)때문에 조정에 올린 글이 눈에 띈다. 강 건너 두치의 장세(場稅)를 두고 운영권에 대한 쟁탈전을 벌인 것이다. 이는 김덕진 교수의 논문에서 나타난 것인데 이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그는 ‘18~19세기 지방장시(場市)에 관한 연구’에서 ‘현재 통영의 관할 하에 있는 전라도 광양의 섬진(蟾鎭)의 재정형편이 어려워졌다. 연유는 기존 광양에서 거둬들인 진전(鎭前)의 장세가 하동으로 이속되고 부터다. 그러니 장세를 다시 광양으로 되돌려 달라’는
전국에 내놓으라 하는 사찰과 명당에 등장하는 인물 도선국사! 수천수만 곳에 터를 잡아 주느라 국사는 생전에 몹시 바빴을 것이다. 아마도 터 잡이 지도를 가져와서 물으면 도움말을 해 주었으려나? 국사의 유명세에 기대어 너도나도 온갖 터에 국사의 이름을 갖다 붙이기도 했겠지? 그런데 고려나 조선이 관련 기관을 두고 도선국사가 제창한 비보풍수를 정책으로 밀었다면? 국토이용계획을 세우고 집행했다면? 그리고 인간의 삶은 자연과의 상생이라는 비보풍수의 원리에 따라 생태환경 보존과 자연치유에 앞장섰다면? 이러한 물음표를 가지고 ‘자연치유와 국토
도선은 48세 때인 875년, 아버지 왕륭에게 고려 태조인 왕건의 출생을 예언하고 집의 방향을 고쳐주었다. 이후 50대 중반인 880년경엔 신라 헌강왕의 초대로 경주에 갔으나 왕궁에 잠깐 머물다 옥룡사로 돌아온다. 옛 나라가 흔들리고 새 운명은 감감할 때 미리 새로운 천 년을 준비한 선각국사 도선의 면모를 알게 해 준 일화다. 이처럼 끝나기 전에 끝날 줄 알았고 오기 전에 올 것을 알았던 선지식인 도선은 많은 일화와 재미난 이야기를 몰고 다닌다. 그중에는 탄생 설화와 어머니를 모신 인간미 넘치는 이야기도 있다.처녀가 오이를 먹고 아
재 오사카 한국상공회의소(회장 박양기) 창립 70주년을 맞아 광양상공회의소 오사카 산업시찰단이 현지를 찾았다. 1953년 5월 13일 출범한 오사카한국상공회의소는 지난 70년 동안 조국의 경제재건을 지원하고, 동포사회의 상호 친목 도모와 한국과 일본의 경제계를 연결하는 구심점 역할을 해왔다.70년의 역사를 이어오는 동안 오사카 한국상공회의소는 모국에 산업시찰단을 파견하기도 하고, 조국이 어려울 때 수재의연금을 모금해 보내기도 했다.특히 오사카 한국상공회의소는 지난 2019년 10월 포스코 광양제철소를 방문하며 광양상공회의소와 교류해
학사대로 가는 길옥룡은 들어가는 입구부터 계곡이 이어져서 사시사철 물 흐르는 소리와 주변 숲에서 들려오는 다양한 새소리, 그리고 자연풍경이 어우러져 지날 때마다 여유롭고 평화로운 기분으로 심신의 안정을 찾게 된다. 고속도로 광양톨게이트를 빠져나와서 곧장 우회전하여 옥룡 초입에 들어서면 ‘신재로’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도로명이 맨 처음 만들어지던 시기에 필자는 광양시 첫 여성 지명위원으로 참석하여 ‘신재로’라는 이름을 제안하였고 다행히 채택되어 지금까지 쓰이고 있어 볼 때마다 반갑고 정겹다. 백운산 봉바위(鳳巖)
가슴이 떨린다. 진월면 차동마을의 용암세장에서 김구 선생의 친필 글씨를 볼 수 있다니, 참으로 놀랍다. 김구 선생이 누구인가?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순위 ‘Top 10’ 안에 꼭 들어가는 인물이다. 최근 탈북한 정치인이 김구 선생 폄훼 발언을 하면서 그의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과 해방정국에서 분단을 막기 위한 노력은 더욱 빛을 발했다.1929년에 건립된 용암세장에는 김구 선생의 현판 외에도 이 건물을 건립한 운사 안경진(1886~1971)의 글씨를 비롯해 유명 현대 서예가들의 작품들이 여러 점 걸려 있다. 놀랍게도 완당 김정희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