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큰한 국물로 언 마음 녹이는 21세기 사랑방“자신이 살던 시골을 찾았다. 시골을 찾자마자 깜짝 놀란다. 바로 어린 시절 할아버지와의 추억의 장소이자 영물이었던 왕소나무는 온 데 간 데 없고, 그곳엔 외양간만한 슬레이트 지붕의 구멍가게 굴뚝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문구의 수필 에 있는 한 내용이다.외양간만한 슬레이트 지붕의 구멍가게도 어느덧 세월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지금의 편의점이 됐다. 비록 겉모습은 변했을지라도 추억을 간직할 줄 아는 그 마음만은 여전한 광양읍사무소 건너편 한 편의점을 찾았다. 추억의 온상 ‘구멍가게’현재 이 편의점이 있는 자리는 본래 작은 가게였다. 하지만 한창우(38)대표는 이 가게가 불이 켜져 있는 모습
일상의 삶을 벗어나 낯선 곳에서 발견하는 것. 그건 바로 ‘자신’이다. 자신을 찾는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잘 다니던 직장을 관두고 오직 ‘그랜드 캐니언’을 보기 위해 미국으로 훌쩍 떠난 청년 박세진(25)씨를 만났다. 티켓팅, 여행의 시작때는 바야흐로 지난 9월, 멀쩡히 다니던 직장을 관뒀다. 떠나기 위해서였다. 퇴직서와 동시에 티켓팅을 했다. 여행 준비는 일사불란하게 진행됐다. 방 한 구석에서 잠들고 있던 가방을 깨웠다. 티셔츠 3벌, 바지 2벌, 세면도구 그리고 갑작스런 당황을 위한 처방전인 작은 영어회화책을 가방 속으로 넣었다.12박 13일 동안 박세진 씨는 누군가의 아들, 직장인 누구로의 인생이 아닌 오직 ‘자신’만을 위한
무술년 황금 개의 해다. 개의 해를 맞아 개띠 부부를 찾아 나섰다. 사랑스러운 아들과 올해 6월 세상에 태어날 콩순이와 함께 새해 첫 장을 넘기며 알콩달콩 삶을 꾸려가고 있는 1982년생 임재관·차수경 동갑내기 부부를 소개한다.제주에서 재주 부린 ‘부부’그저 ‘동네 친구’였다. 개굴개굴 소리를 따라 개구리를 잡으러 뛰어다니고 강가를 바라보며 물수제비를 했었던 어릴 적의 추억에 서로가 없던 순간이 없다. 임재관·차수경 씨는 어쩌면 ‘부부의 연’이 정해져 있는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차수경 씨가 광양을 온 건 7살 때였다. 광주에서 태어났지만, 7살 이후 죽 광양에서 삶의 터전을 이루고 있으니 차 씨에게 광양은 제2의 고향이다.차 씨는 “남편은 한 동네에서 만나 친구로 지내
오로지 음악만 바라왔다. 과거에도 그래왔고, 현재에도 늘 공존하며 미래에도 그럴 것이다. 그에게 음악은 ‘삶’이다. 광양 읍에서 나고 자라 성악을 전공하고 현재 순천시립합창단 상임 다원찬양대 지휘자인 성경현(46)씨를 만났다. 노래로 꿈을 펼치다성경현 지휘자는 어려서부터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6학년까지 줄곧 합창부 활동을 했다. 성 지휘자는 “모태신앙은 아니지만, 어머니의 권유로 교회에 다니게 됐다”며 “우연한 계기로 지휘자 선생님에게 성악 즉, 발성과 호흡법에 대해 배우게 됐는데, 그때부터 성악가라는 꿈을 가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취미는 특기가 되고 특기는 어느덧 꿈으로 자랐다. 때는 바야흐로 고등학교 음악 시간, 가창시험을 보던 중이었다.
‘고작’이 아닌 ‘명작’을 이루는 최고의 반찬김 양식이 최초로 이뤄진 광양 태인동 ‘김시식지’오늘도 식탁 위에는 구운 김과 그 옆으로 작은 간장 종지가 놓였다. 아버지는 숟가락 위로 흰 쌀밥을 소복이 뜬다. 그 위로 김을 올려 국과 함께 떠먹는다. 고소한 김과 얼큰한 국물의 조합은 추운 겨울을 거뜬히 이겨낼 수 있는 불가항력의 ‘힘’이다.만인의 사랑을 받는 김, 광양은 김과 인연이 깊다. 비문동초에 따르면 광양 태인도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김을 양식했다는 기록이 있다. 첫 눈 오는 월요일, 김시식지를 찾았다. 광양 역사의 핏줄, 김광양시 김시식지1길 57-6. 몸보다 마음이 멀어 자주 오지 못하는 역사 앞에 섰다. 1987년 전라남도 기념물 제 113호로 지
지평선 맞닿은 하늘 질펀한 노을이나술 취한 바람결이 흩고 가는 노란은행잎언제나그런 서정만그대 몫이 되게 할까형체 없는 그림자야 미리 쓸지 못하지만노동의 신성함을 온몸으로 증명하는그대의 빗자루 끝에다놓고 싶은 이 시대…….사랑의 보습 꽂고 꿈밭 가는 이웃 속엔생선살에뿌려지는 소금 같은 약속이 있듯살뜰한그대의 비질로내 뜨락도 쓸어주게찬바람이 세차게 분다. 문득, 강호인 시인의 ‘가을 청소부에게’라는 시가 떠오른다. 열두 달 중 환경미화원이 가장 바쁜 달. 바로 낙엽이 떨어지는 달이다. 광영동 목우 아파트 근처에서 묵묵히 낙엽을 쓸고 있는 전영래(59) 환경미화원을 만났다.오후 1시부터 쓸어 담은 낙엽의 결과물은 전영래 미화원 키를
시간의 저편을 품고 있는 필름이 드디어 암실 한 구석에 도착했다. 24장의 필름 속에는 무엇이 담겨있을까. 필름 위에 루페(Loupe)가 놓인다. 루페는 필름의 초점이나 노출은 물론 촬영된 피사체의 표정 등을 자세히 볼 수 있는 확대경이다. 입을 앙 다물고 눈을 감고 있는 형제, 막걸리에 흠뻑 취해 마루에 앉아 있는 할아버지, 카메라를 향해 뻗은 누군가의 손, 빛이 새어 들어가 잘못 찍힌 사진. 흘러버린 시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생생한 기억들이 필름 속에 존재한다. 새까맣고 뭉툭한 외눈박이 카메라와 필름의 합작품. 그건 바로 우리네 인생사다. 두근두근 떨림과 기다림의 아련한 맛이 잘 어우러졌던 아날로그 시절. 빠르고 편리한 것에 익숙해져 놓쳐버렸던 불편함이 문득 그리워지는 오후, 흑백과 컬러의 역사를 품고
광양읍내 한 커피숍에서 만난 한민주 양은 인터뷰를 기다리며 신문을 보고 있었다. 볼이 빨간 ‘꼬마요리사’는 앳된 얼굴 가득 밝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단정하게 교복을 입고 있던 민주 양은 모교인 광양여고에 새벽 5시부터 나와 수능 응원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한민주 양과 광양시민신문이 다시 만난 것은 거의 5년만이다. 민주 양은 중학교 준비와 요리에 좀 더 매진하겠다는 이유와 함께 지난 2012년 10월 말쯤 문어초회를 끝으로 ‘꼬마요리사 한민주가 추천하는 금주의 요리’ 연재를 그만두었다.민주 양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재미삼아 요리를 시작해 중학교 1학년 때까지 3년 동안 한식‧양식‧일식‧중식‧제과‧제빵 등 6개의 기능사 자격에 합격했다. 이중 한식기능사 자격 취득은 당시 전남 최연소 기록이다
오늘도 노트 속을 걷는다 노트를 편다. 삐뚤지만 틀리지 않다. 느긋하지만 느리지 않다. 연필이 흘러내리지 않게 오른손 엄지와 검지에 힘을 꽉 준다. 세로부터 천천히 써내려가는 한 글자는 그냥 적히는 글자가 아니다. 배우고 싶다는 간절함과 알고 싶다는 절실함이 새겨지는 것이다. 광양읍 광양복지관에는 88세 만학도가 산다. 영어는 올해로 5년 차, 중국어는 3년 차가 됐다. 배움이란 ‘곧은 길’이라고 말하는 장영철(88)어르신을 만났다. 말 못할 설움, 어찌 잊으리 한글을 모르는 것이 한이 됐다. 광양읍 우산리에서 태어난 장 어르신은 일제 강점기를 겪은 살아있는 역사다. 일본에서 6년 간 일본어를 배우며 일본 문화를 접했다. 2년 후, 해방이 됐다. 고향으로 돌아와서
귀촌일지의 적격자, 진상부부가 진상을 처음 만난 건 지난 2012년 9월. 온통 주황색으로 물든 진상을 보자마자 머릿속으로 떠오른 생각은 하나였다. “여보, 우리 여기로 이사 오는 거 어때?” 남편의 말에 아내는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강원도에 살던 부부는 오로지 끌림 하나로 곧장 진상면 섬거리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천년동안 빛이 들지 않는 한 마을에 다시 빛이 드는 건 오랜 시간이 아니라 한 순간이라는 말처럼 부부에게 진상은 그런 한 순간이었다.진상도 부부를 맞이해 활기가 더해졌다. 허전했던 공터는 마법처럼 주황색 지붕을 가진 빵집이 됐다. 이른 새벽이면 고소한 냄새가 온 마을을 깨웠다. 주황색 지붕으로 산새가 살포시 앉으면 감꽃마을 베이커리의 하루가 시작됐다.
돈을 버는 것보다 돈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는 청년, 익숙한 것을 익숙하게 보지 않는 한 청년이 있다. 얼마 전 광양시어린이보육재단에 군대에서 모은 150만원을 기부하면서 화제가 됐던 황이삭 청년을 인터뷰했다. 기부를 통해 배운다 “기부를 통해 조금이라도 남들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어요”기부를 다른 말로 하면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다. 현재 동아대학교 정치외교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황이삭 청년은 광양에서 태어나 줄곧 자라왔다. 어릴 적부터 남의 것을 탐내지 말고 정직을 가르친 아버지와 사랑하며 살라고 말하는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돕고 사는 것이 몸에 뱄다.요즘 군대 월급은 계급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이등병이 16만원, 병장은 21만원을 받는다.
“제가 바로 네일 하는 남자입니다”남자가 네일아트를 한다는 소리에 너도 나도 물음표를 던진다. 하지만 미용분야에서는 이미 남성들이 두각을 나타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사람들이 수두룩한 세상이다. 광양에도 작은 손톱 위로 큰 꿈을 펼치는 네일리스트가 있다. 바로 김대홍 네일리스트(30)다. 남자 네일리스트가 된 이유“네일(Nail)아트는 창작을 할 수 있는 작품들이 무궁무진합니다”그가 네일을 택한 이유는 딱 하나였다. 가능성이었다. 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고향인 제주도에서 디자인 관련 회사와 관광업 쪽에서 일을 하다 4년 전, 광양을 처음 만났다. 가족들과 함께 이사를 온 것이다. 처음 본 광양은 한적하고 여유로운 동네였다.김대홍 씨는 “조용하고 아담
색소폰 연주할 때가 가장 행복해“광영초등학교 2학년 2반 7번 정은찬입니다”광영동에 위치한 한 연습실에서 만난 정은찬 군은 도복을 입고 헐레벌떡 뛰어왔다. 자기소개도 심플하다. 번호까지 말하는 세심함이 돋보이는 아주 완벽한 자기소개다. 정은찬 군과 색소폰의 만남은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늦둥이인 은찬 군을 집에 혼자 둘 수가 없는 부모님은 늘 은찬 군을 데리고 다녔다. 그 곳이 바로 색소폰 동호회였다.가사는 이해할 수 없지만 신나는 멜로디가 은찬 군의 가슴을 울려왔다. 정은찬 군의 데뷔곡은 ‘동백꽃’그리고 제일 좋아하는 곡은 ‘님과 함께’다. 나이와 취향은 철저하게 다름을 보여주는 사례다. ‘님과 함께’가 은찬 군의 애청곡으로 탄생된 것은 양로원으로 봉
새벽 6시 반, 대문 앞 꾸벅꾸벅 졸고 있는 자전거를 깨운다. 덜커덕 잠꼬대를 하는 자전거를 밀고 집을 나선다. 노란조끼와 노란 모자가 눈에 띄는 주성현 어르신(81)의 출근길이다. 그의 직장은 마동초등학교 후문 횡단보도. 출근 시간은 7시 반까지다. 퇴근시간은 8시 40분. 주 업무는 아이들의 등굣길을 책임지는 것이다.마동 마흘마을에서 마동초등학교까지 가는 여정은 쉽지 않다. 오르막길이기 때문이다. 하기야 살아온 인생을 뒤돌아보면 이정도 오르막길은 힘든 것도 아니다.주 어르신은 “나이가 있다 보니까 오르막길이 힘들다. 학교를 올라올때는 자전거를 밀고 오고 갈 때는 타고 내려가는데 그때가 기분이 제일 좋다”며 “집에서 학교까지는 한 30분 정도가 걸리는데, 늦을까봐 매일 일찍 집을 나선다”고
30살, 독일로 떠나다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는 없다. 경북 의성에서 태어난 김현수 작가는 한국에서 줄곧 예술 활동을 해왔다. 하지만 인생은 마음가는대로 그려지는 붓이 아니었다. 오롯이 표현하고 싶은 것만 알리고 싶은 것만 예술로 승화시키기에는 마음이 내키기 않았다. 1984년, 그는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서른이 코앞이었다. 김현수 작가는 “다소 늦은 나이에 유학을 결심하기란 쉽지 않았다”며 “예술을 삶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당시를 떠올렸다.유학을 떠난 김 작가는 1993년도에 독일 뮌헨 국립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했다. 졸업 후에는 뮌헨 빌라슈툭 미술관, 바이로이트 바그너 미술관, 토스카나 일 쟈르디노 미술관, 다니엘 스페리 재단, 프라이징 디오쎄잔 미술관, 에
광영동 시장 골목 어귀에 자리 잡은 미호 방앗간. 외할머니 집을 찾은 것처럼 푸근함이 먼저 반기는 곳. 주·야가 적힌 낡은 간판은 미호 방앗간의 17년 세월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높이 솟은 굴뚝에서는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가만 피어오르는 연기가 시장의 고즈넉함과 잘 버무려져 담백한 풍경이 된다.2000년 3월에 문을 연 미호 방앗간은 올해로 17년이 됐다. 방앗간이 제일 바쁠 때는 설 그리고 추석 전인 지금이다. 가게 안에 들어서자 마자 고소한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한켠에선 한창 기름을 짜는 중이다. 방앗간 주인인 서도수(67)씨는 깨 볶기에 여념이 없다. 사뭇 달라진 방앗간 풍경한 때 방앗간 기계들은 쉴 틈이 없었다. 인절미, 찹쌀떡 등 떡을 만들고,
독서가 별 건가 뭐. 책은 또 대단한 건가 뭐. 친구의 표정을 읽으면 그것이 독서요, 함께 웃으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책이 된다.까르르 아이들 웃음소리가 한 페이지가 되는 곳. 이 곳에서는 모두가 작가고 모두가 독자다. 아침저녁으로 소슬한 가을바람이 부는 9월의 마지막 자락, 광양읍 용강리에 위치한 송보 7차 아파트 작은 도서관의 오후 4시를 취재했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아이들은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로 책을 읽는다.투명하고 청량한 소리를 가진 구슬을 만지며 노는 남자 아이들도 있다. 도서관을 떠올리면 일단 ‘쉿’ 무조건 ‘조용’해야만 하는 곳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하지만 작은 도서관은 다르다.책을 크게 읽고, 친구와 자연스럽게 수다를 나누는 것이 도서관의 풍경이
광양 세풍 쌀을 온기 가득한 솥에얇게 펴는 것이 관건 뜨겁게 달궈진 가마솥 안으로 쫀득한 밥알이 서로 뒤엉킨다. 윤기가 흐르는 광양 세풍 쌀로 만든 밥알을 가마솥 바닥과 혼연일체를 만드는 것. 최대한 얇게 펴서 굽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가마솥 누룽지의 진짜 맛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가마솥푸드 참가마 수제 누룽지’ 비법 중 하나다.누룽지는 가마솥 바닥에 눌어붙은 밥을 총칭하는 것으로 지역에 따라 ‘깜밥’, ‘깐밥’, ‘깡개밥’, ‘깡개’, ‘누룽갱이’ 등으로도 불린다. 고소함과 더불어 담백한 맛과 편의성 덕택에 예부터 간편식으로 애용돼왔다.광양 세풍 쌀을 고집한 이유는 광양의 ‘쌀’을 알리기 위해서다. 박순철 씨(55)는 “‘쌀’하면 유명한 고장이 많다
"최반장, 빨리 이리 좀 와보게!" 최반장, 광양시장표창장 받다어디선가 누구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나타난다는 ‘홍반장’. 온 동네를 주름잡던 그 반장이 우리 동네에도 나타났다. 지난 9월 1일 광양시장표창장을 수여받으며 그간 노고를 인정받아 눈길을 끌고 있는 주인공은 바로 대광로제비앙2차 아파트 최종남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이다.그는 광주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졸업 후 공직생활을 4년 정도 했다.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해야 하는 것이라는 압박감에 퇴직을 했다. 이후 포스코로 입사를 한 뒤 1986년도에 광양 제철소로 오면서 이 곳에 새로운 터를 잡았다.최종남 회장은 “고향은 광주이지만, 광양은 제2의 고향과 같다”며 “퇴직을 한 뒤로도 광양에서 살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광양에서 살 것이
한 바퀴의 맛이 짜릿하다‘쉼’의 대명사 자전거 라이딩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 ‘더위’도 내년을 기약하며 돌아갔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면 섬진강변을 끼고 달리던 그 ‘바람’이 떠오른다. 싱그러운 초록의 냄새와 달릴 때마다 피부로 느껴지던 보드라운 바람의 촉감이 그리워서다. 자전거를 타고 바라보는 풍경에는 그저 산만 강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껏 달려온 과거와 달려갈 미래가 그리고 달리고 있는 현재가 공존한다. 페달을 밟으며 어제를 반성하고 내일을 다짐한다.바람이 선선하게 부는 요즘 같은 날, 자전거를 타고 달리기가 참 ‘아름다운 날’이다. 책상위에서 바쁜 업무에 시달리다 문득 섬진강에서 만났던 그 바람이 무척 보고 싶다.자전거 라이딩 4년차에 접어든 우상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