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제 씨의 이발사 인생 50년

4~50대 남자라면 누구나 어린 시절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찾아갔던 이발관을 기억할 것이다. 어른들의 키 높이에 맞춘 의자손잡이에 판자를 깔고 앉아 있으면 불과 몇 초 앞일을 짐작하지 못하는 막막함이 살풋 가슴을 짓누른다. 눈앞을 가득 채운 전면 거울을 앞에서 일말의 두려움이 흔들거리는 경험 말이다.

눈을 질끈 감고 있으면 하얀 가운을 걸친 이발사 아저씨의 수동 바리깡이 서늘한 기운을 품은 채 머리 위를 유유히 지나치며 길을 만든다. 가끔은 제대로 날을 세우지 못한 바리깡에 여린 머리를 뜯긴 채 낮은 비명을 삼켰던 적도 있지 않은가.

그 뿐인가. 소가죽으로 만든 길다란 띠에 면도칼을 갈던 이발사와 그 옆에 얼굴 한가득 풍성하게 하얀 거품을 묻힌 채 편안하게 누워 있던 눈을 감은 아버지의 얼굴을 그때만큼 자세히 들여다 본 적이 아마도 없었을 것이다. 거기에다 면도칼에 밀려 아버지의 수염이 신작로를 내듯 깔끔하게 깎여 나가는 모습은 성큼성큼 어른이 되고자 했던 유년 시절엔 그 보다 부러울 게 없는 동경 아니었던가.

이제 시절이 흘러 그 비누 냄새나는 이발소의 모습은 기억에서 조차 희미하다. 가끔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떠올려지는 풍경일 뿐, 흑백사진처럼 아련할 밖에.

그러나 봉강면 석사리 매천 황현 선생의 생가로 들어서는 길에는 그 같은 추억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있다. 석사이발관, 막걸리집 옆 그곳에 들어서면 우리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 일곱 살짜리 코흘리개 아이였던 자신이 다시 탁자에 앉아 서늘한 뒷목을 이발사 아저씨에게 맡긴 모습을 목도할 수 있을 것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50년을 한결같이 석사이발관을 지켜온 조선제(68)씨가 반갑게 손님을 맞는다. 70을 코앞에 두고 있는 그이지만 예순도 채 되지 않아 보이는 맑은 얼굴이다.

“늙어빠진 촌구석 이발사에게 뭐 들을 게 있을 랑가 모르겄소잉” 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는 순순히 수십년 째 쓰고 있는 수동 바리깡을 손에 잡고 머리 깎을 채비를 서두른다. 어떨 결에 아빠의 손을 잡고 길을 따라 나섰던 5학년짜리 아들 놈만 눈이 동그랗다. 하지만 의자 위에 판자를 깔고 아들 놈을 앉혀 놓으니 딱 30년 전 내 모습이다.

조선제 씨가 이곳에다 이발소를 차린 게 지난 1964년 2월의 일이니 정확히 48년 전의 일이다. ‘해방동이’로 태어났던 조 씨의 당시 나이는 고작 19살. 없는 살림에 어렵사리 졸업하고 나니 할 일이 막막했다. 고등학교 진학은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무작정 마을 이발소에서 이발 기술을 배웠다.

당시 마을 이발소는 대목이었던 선친의 목공소를 개조해 만든 곳이어서 취직이 쉬웠다. 그곳에서 그는 손님 머리감기는 일부터 시작해서 이발기술을 배웠고 2년 뒤인 64년 이발사 자격증을 획득했다.

그리고 직접 이발소를 차린 뒤 군입대 35개월을 빼고는 줄곧 이곳에서 이발사의 인생을 살아왔다. 이곳에서 서면 구상리 처자와 결혼해 2남2녀를 낳아 대학까지 보냈고 지난 2월 4일 막내아들까지 가정을 꾸렸으니 이발관과 함께 한 50년의 세월은 내내 행복했다.

조 씨는 “당시 도시로 나갈 수도 있었지만 60살 늦은 나이에 얻은 늦동이 아들인 자신이 아버지를 차마 두고 떠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며 “더구나 그는 4자매 딸부잣집에 하나뿐인 아들이어서 아버지를 모시는 게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후회는 없다는 것이다.

그의 이발관은 예나 지금이나 동네 사랑방이다. 젊은 시절도 마찬가지다. 갈데없는 농촌총각과 처녀들이 만나는 장소였고 지금은 아련한 추억을 찾아 광양읍에서도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이 굳이 이곳을 찾는다. 그런 어르신들을 모른 채 할 수 없어 이발비로 받은 7천원을 쪼개 어르신들에게 막걸리 한 사발 대접하는 일도 그의 몫이다.

그는 베푸는 일을 좋아한다. 젊어서부터 그랬다. 마침 이발관을 찾은 그의 친구가 “이 사람은 어려서부터 별명 조봉이요. 하도 남에게 베풀기를 잘해 제수씨(조 씨의 부인 송순자 씨를 일컫음)도 아예 조봉이라고 부를 정도요”라고 했다. 그 말에 그는 사람 좋은 웃음을 얼굴에 가득 매단다.

때마침 지난 4일 결혼한 뒤 신혼여행을 마치고 고향집에 들린 막내아들 내외(조정래 33 민혜경 34)가 길 떠나기 전 그의 이발관을 찾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그의 얼굴이 수박 꽃처럼 환해진다.

막내아들 정래 씨는 “클 때까지 모두 아버지가 손수 머리카락을 잘라줬다”며 “항상 좋은 아버지였다”고 말했고 며느리 혜경 씨도 그 모습에 행복한 웃음이 얼굴에 번졌다. 좋은 아버지에 좋은 아들, 며느리가 그곳에 있었다. 봉강면 부녀회장 일을 보는 부인 송순자 씨가 이 모습을 보면 없던 시샘도 생길 듯싶다.

그렇게 막내아들 내외를 택시에 태워 떠나보내고 한참 먼 길을 훑다가 헛기침을 삼키더니 “따뜻한 봄날이 되면 경로당을 찾아다니며 어르신들에게 이발 봉사라도 나서야겠다”는 조선제 씨. 이발관으로 다시 들어와 이발사라는 일상으로 돌아온 그의 등 뒤로 햇발이 눈부시다. 곧 봄이 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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