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늬의 풀잎에 드는 햇살

한달 전 미국 뉴욕타임스에 “기억하시나요”라는 제목의 광고가 실렸다. 독일의 빌리브란트 전 총리가 폴란드 바르샤바의 전쟁 희생자의 비석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하는 모습으로 “브란트 총리는 그들 조상들의 잘못을 온 국민과 함께 뉘우치고 있음을 전 세계인에게 행동으로 보여준 것으로 이를 계기로 진정한 화해가 가능했다”는 내용이다. 이는 뉴욕주재 일본총영사와 일본 우익 정치인들이 뉴저지주 팰리세이드파크시에 세워진 일본군 위안부 기림비를 시당국에 철거 요구하고 나선데 대한 대응차원에서 기획된 광고이다. 그러나 그들 일본인들은 시당국으로부터 자신들의 요구가 거절되자 백악관 사이트를 통해 기림비철구를 요구하는 청원운동까지 벌이고 있다. 지난 주 초 벌써 서명 정족수 2만5천명을 넘겨 규정상 백악관은 가부간 공식 입장을 밝혀야 한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파렴치한 일본의 생떼에 백악관의 귀추가 주목된다.

국가와 국가간이건 국가와 민족간이건 개인과 개인간이건 용서와 평화의 역사는 가해자의 진정한 사과에서부터 출발할 것이다. 작가 김훈의 인터뷰가 생각난다. 5.18 광주 희생자중 한 명에게 “용서와 화해는 불가능한가”라는 질문에 그는 “가해자들은 용서를 구하지도 화해를 요청하지도 않았다. 만일 용서를 구해 온다면 부둥켜 안고 통곡하고 싶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없었다” 라고 답했다. 그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5공화국 설계사’ 허화평 전 의원은 “광주 시민들이 먼저 용서하면 사과하겠다”라는 모순된 발언으로 충격을 더했었다.

박근혜는 “5.16이 구국혁명”이라며 그릇된 국가관을 드러내고 여론이 들끓자 “민주투사들에겐 용서를 구한다”며 앞뒤 안 맞게 분별력없는 사과를 했고, 욕설에 가까운 막말로 논란에 휩싸인 임수경은 뒤늦게 사태 수습에 급급한 위기모면용 사과를 했다. 얼마전 ‘형제의 난’으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이건희 삼성총재는 의미없는 형식적인 사과를 한 바 있다. 자고나면 정치인,경제인, 연예인들 수많은 공인들로부터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는 사과의 말을 밥먹듯이 들어야 하는 국민들! 이 상투적인 사과에 국민들의 반응 역시 싸늘하다. 진정성이 담기지 않은 사과는 썩은 사과에 불과하다. 제대로 된 사과의 위력을 안다면 자존심을 내세울 것도 비겁하게 변명할 것도 합리화 할 것도 부자연스러워 할 것도 없다. 가급적 사과 할 일을 만들지 말아야 하겠지만 가장 맛있는 사과는 제 때 제대로 하는 사과일 것이다. 인류의 조상 아담은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먹고 조물주의 책망을 들었을 때 “하나님이 주셔셔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라는 비겁한 변명으로 관계 회복불능의 역사를 인류의 피에 각인 시켰다. 자신의 죄를 하와와 하나님에게까지 책임 전가하고 원망하고 합리화 했으며 순간을 모면하려 했다. 그 유전자 탓일까. 인간은 자신의 잘못에 대해 솔직하지 못하고 대체로 사과에 서툴고 인색하다. 잘못된 사과에 대해서 가장 경계해야 할 점은 이전의 따뜻하고 우호적인 관계를 상실하게 한다는 점이다. 그 관계 회복을 위해서 사과는 정직이 우선해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오래전 제대로 된 사과의 단맛을 본 적이 있다.

이삿짐이 많아 도우미 세 분을 구했었다. 짐을 나르던 와중에 그들은 내가 아끼는 고미술 액자 표구 뒷면을 찢어 놓고 식탁 유리를 깨트리는 실수를 범했다. 내가 사색이 됐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서로 책임전가하기 급급한 그들 중 한 분이 “죄송합니다. 다 제 잘못입니다. 오늘 실수에 관한 책임은 오늘 일당을 받지 않는 것으로 대신 하겠습니다. 부족하다면 달달이 조금씩 값겠습니다” 라고 했다. 내가 그에게 감동을 한 것은 그의 말이 아니라 그의 태도이다. 겉치레의 사과가 아니라 어떻게 하겠다는 책임의식을 보여준 그의 ‘Attitude’다. 그의 일당의 몇 십배가 되는 손해를 봤음에도 불구하고 일당과 더불어 두둑한 팁과 식사, 그리고 되려 미안해지려던 마음까지 담아 챙겨 주었던 것은 그가 보여준 진정성 때문이었다. 아직까지도 유리없는 식탁을 사용하고 찢어진 채 걸려 있는 액자를 볼 때 마다 그가 준 맛있는 사과가 떠오른다.
“위인들의 인생이 감동적인 까닭은 실패(잘못)에 대한 솔직한 고백(사과)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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