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종렬의 쉴만한 물가

짙어가는 실록 만큼이나 연일 때 이른 불볕더위도 기승입니다. 거기다가 가뭄이 계속되는 관계로 농심(農心)은 타들어가고 도시는 풀풀 짜증이 밀려옵니다. 선풍기를 안고 살아도 덥고 그나마 한켠에 있는 먼지낀 에어컨은 전기요금 무서워 쉽게 틀지도 못하는데, 이젠 대놓고 전기도 규제를 해가는 실정이니 이래저래 마음을 시원케 하는 소식은 감감합니다.

요며칠 끊이지 않고 올라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니 더욱 입이 마르고 가슴이 타들어 가는 것 같습니다. 학교폭력에 몰린 아이가 비명에 간 이야기나, 성적에 비관한 친구가 삶을 포기하는 일이나, 은행에서 실적에 들볶이다가 사랑하는 가족들을 두고서 먼저 세상을 뜬 이의 이야기나, 빚쟁이에 시달리다 유명을 달리한 사람의 이야기들 모두, 가슴 한켠이 먹먹케 하는 이야기들입니다.

또 다음주 화요일(26일)은 소위 '국가수준학업성취도평가,' 일명 '일제고사'를 치르는 날이랍니다. 초6, 중3, 고2가 그 대상입니다. ‘국영수' 세 과목을 보고서 학교 수준을 메기고, 국가정책을 만들겠다는 얘기에 학교마다 비상이 걸려 또 아이들이 성적에 닥달을 당하게 합니다. 겉으로는 학생을 위하는 일이라 하지만 곰곰생각해 보면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것인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합니다.

아빠는 직장에서 효율과 성과에 시달리고, 엄마는 밀려오는 고지서 속에서 빠듯해지는 살림살이에 속이 타고, 누나는 대학에서 취업과 스펙을 쌓느라 고달프고, 학생은 학교에서 성적에 줄을 세우는 일들이 지금 우리들의 목을 조입니다. 얼마나 더 벌고, 가지고, 쌓고, 얻어야 만족할까요? 왜 지금 있는 것으로 자족하지 못하고 효율에 쥐어 짜이고, 성과에 바짝바짝 피가 마르는 시달림을 받아야 하는건가요? 이미 많은 것을 가지고 누리고 있는데도 얼마다 더 우리들의 여유와 편리를 위해서 유한한 자원을 독식하는 일을 멈출까요? 우리가 누리는 만큼 지구 반대편에서는 생명이 오락가락하는 것을 왜 모르는 걸까요?

효율과 성과에 목메는 이들의 탐욕이 앗아간 우리 아빠의 시간과, 엄마의 가슴과 누나의 청춘과 우리 아이들의 황금 같은 시간들은 누가 찾아 주나요? 그리고 그렇게 가져간 것을 독식하면서도 왜 그들은 여전히 더 많이 가지려고 눈을 부라리는 걸까요? 천년만년 살것처럼... 탐욕을 멈추라! 일부의 욕망성취를 위해서 다수의 행복을 앗아가도 된다고 누가 허락했는가? 쫓기며 살아가는 이들도 더 이상 내어 몰리지 말고 멈춰 돌아서라! 그렇게 살아가기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과 옆에 있는 가족은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이니 지금 그것들을 즐거워하며 행복해 하며 자족하며 누려야 하지 않겠는가?

저작권자 © 광양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