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17년, 제철 기술 완전 자력 수행 구축

국내외 32연인원 372만명장비 15만대
세계 3위 철강기업 - 8위 철강대국 부상
9개 공장 및 발전설비 등 13개 설비 구성

1970년대 전반까지 고도성장에 따라 호황을 누렸던 세계경제는 1970년대 중반 이후 두 차례에 걸친 석유파동으로 인해 불황국면으로 반전했고, 이에 따라 철강경기도 위축됐다.

그러나 당시 WSD(World Steel Dynamics) 전망에 따르면 철강생산 능력의 감소에도 불구하고 철강수요는 1.4%씩 소폭이나마 증가하는 추세를 이어가 1980년대 후반에는 철강 공급 부족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전망됐다.

그러한 세계 철강 정세와 전망 속에서 우리나라는 철강업과 중공업이 상호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꾸준히 발전하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우리나라 산업구조는 건설조선자동차기계전기전자산업 등 철강 다소비 산업이 주종을 이루고 있어, 이들 산업이 지속적인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철강재의 안정적인 공급이 무엇보다 필요했다.

따라서 광양제철소로서도 1기 설비와 함께 안정적 조업기반을 구축할 2기 설비 건설의 필요성이 증대될 수 밖에 없었다.

▲ 광양제철소 2기 종합 준공 후 생산된 제품에 휘호를 남기는 故 박태준 전 명예회장
제철 엔지니어링 업무 자력 수행

광양제철소는 2기 설비 구축에 있어 광양 1기 설비와의 호환성을 고려함은 물론 관련 신기술을 총망라해 최대한 반영하고자 노력한다.

또한 당시 포항종합제철은 창업과 동시에 일본 등 철강 선진국으로부터 기술을 전수받으면서도 자체 기술개발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온 결과, 광양 2기부터는 사업계획 수립부터 견적 및 도면 검토, 건설감독 및 조업지도 등 일련의 제철 엔지니어링 업무를 회사 자체 역량만으로 수행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갖출 수 있었다.

▲ 광양제철소 2기 공사현장
이로써 철강 선진국들의 경우 세계 최첨단의 제철 엔지니어링 업무를 자력으로 수행하는 데 적어도 1세기 이상의 긴 기간이 소요됐으나, 광양제철소는 창업 후 불과 17년 만에 선진국에 대한 기술 의존에서 벗어나 완전한 자력수행 체제를 구축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광양제철소는 광양 2기 설비의 국산화 폭을 확대해 광양 149.4%보다 높은 55.4%를 달성했다.

광양제철소는 그간 국내 기계공업을 육성하기 위해 설비구매 시 국내 최초로 국산화설비 조달계약 방식’(외국 설비공급사의 공급분 중 국내 제작사가 외국 설비공급사에게 설비의 일부를 수주, 제작해 납품토록 한 제도)을 채택하는 등 설비국산화율 제고에 총력을 쏟았다.

▲ 광양제철소 2기 공사현장
이와 같은 노력에 힘입어 국내 기계공업은 그간 매우 빠른 속도로 성장했고, 관련된 설비분야 수출 또한 크게 신장됐다.

또한 2고로는 에너지 절감을 위해 탈석유화(Oilless) 중심의 설비를 도입토록 추진했으며, 설비확장에 따른 오염물질 배출량과 공해 증가에 대비해 COG 탈류설비 및 배수종말처리설비를 우선적으로 설치하는 등 오염물질 저감을 위한 노력도 병행했다.

2기 설비 건설에 찾아온 고비

광양제철소 2기 설비 건설공사는 1986930일에 종합 착공한다.

포항 1기부터 광양 1기까지 설비를 확장하는 과정에서도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었지만 광양 2기 설비 건설 때 가장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 최초의 시련은 자연재해였다.
광양제철소는 1987년 들어 총 22개 설비 중 18개 설비를 예정대로 건설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해 6A급 태풍 셀마가 찾아왔다. 이로 인해 광양제철소와 관련된 140여 개 기업체가 장비에 막대한 피해를 봤으며, 특히 7개사는 공사 진행이 어려울 정도로 심한 피해를 입어 2기 건설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2기 건설의 두 번째 시련은 같은 해 6월 소위 ‘629 선언이후 전국적인 민주화 열기 속에 진행된 노사분규였다.

▲ 광양제철소 2기 공사현장 순시
전국적 규모의 노사분규 가운데 광양제철소와 관련된 업체 162개사도 노사분규에 휘말려 광양제철소는 2기 건설 기능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많은 노력과 시간을 투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광양제철소는 국가 경제발전을 향한 제철보국의 신념과 포항소 건설 성공신화의 기반이 된 우향우정신을 바탕으로 굳건히 한 걸음씩 전진해가며 2기 건설공사를 이어갔다.

이에 맞춰 정부도 1기 설비 건설 당시 폭 350m의 항로를 준설한 데 이어, 2기 설비 건설을 위해 항로 준설을 시작했다.

2기 설비 건설을 위한 준설공사는 이 항로를 대형선박이 출입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폭 500m로 준설하는 공사였다.

또한 대형선박이 접안할 수 있도록 만드는 2기 원료부두 정박지 준설공사도 진행했다.

이와 함께 수어댐에서 광양제철소 수수지까지 송수관을 추가로 부설해 공업용수를 공급할 수 있도록 했다.

2기 종합 준공 ‘1450만톤 체제 구축

광양제철소는 국내 철강재 공급 부족으로 국내 산업계가 겪는 어려움을 덜어 주기 위해 2기 건설일정을 단축하겠다는 광양제철소의 의지를 제작사와 건설사 경영층에 전달해 협조를 구했다.

이렇게 해서 당초 19881031일로 되어 있던 일정을 3개월 18일 앞당겨 드디어 1988712, 조강 연산 270만 톤 규모의 2기 설비를 성공적으로 종합 준공시켰다.

2기 설비는 전 공정을 일괄적으로 조종할 수 있는 종합생산관리 시스템은 물론 소품종 대량생산 체제에 맞춘 설비 중심으로 총 9개 공장과 발전설비 등 13개 설비로 구성됐다.

1조억 원이 투입된 2기 설비 건설을 위해 국내에서는 14개 건설회사와 6개 설비제작업체, 해외에서는 영국 등 12개 업체가 참여했다.

, 연인원 372340명의 근로자와 각종 장비 15258대가 동원됐다.

▲ 광양2고로에 화입하는 노태우대통령(1988.7.12)
이날 준공식에는 노태우 대통령과 안병화 상공부장관 등 국내 귀빈 다수와 주한 외교사절, 설비 제작업체 및 공급업체 대표, 국내 시공업체 대표 및 현지 주민과 회사 임직원이 참석했다.

박태준 회장은 경과보고를 통해 철강재 부족으로 인한 관련 산업 분야의 어려움을 해소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노력해 온 결과 당초의 계획공기를 앞당겨 경제성과 안전성을 겸비한 최신예 제철소를 완성할 수 있었다포항제철은 우리 국민 모두의 가장 소중한 자산이라는 긍지와 자부심으로 앞으로도 국가발전에 필요한 기간산업으로서 가일층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날 정부는 2기 건설에 공이 큰 임직원에게 포장과 표창을 수여했고, 광양제철소는 전 직원에게 1호봉씩 특별승진을 단행했다.

세계 8위 철강대국 부상

광양 2기 설비 준공으로 광양제철소는 조강 연산 1450만 톤 체제를 갖춤으로써 일본의 신일본제철, 프랑스의 유지노 사실로(Usinor Sacilor)에 이어 세계 3위의 대형 철강기업으로 부상하게 됐다.

더불어 우리나라는 철강생산 능력이 2100만 톤으로 늘어나 자유 세계에서는 6, 전 세계에서는 8위의 철강대국으로 우뚝 설 수 있었다.

저작권자 © 광양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