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봉 아래 첫 동네, 건강 장수 마을

광양시에는 280여개의 마을이 있으며, 각 마을 마다 고유의 특성과 수려한 자연경관을 갖고 있다. 시민신문은‘ 이장님 막걸리 한 잔 하시죠!’를 기획해 직접 지역내 마을을 찾아다니며각 마을의 이장님을 만나 뵙고 생생한 마을의 소식과 각 마을의 보석 같은 숨겨진 이야기,아쉽게 잊혀져가고 있는 이야기, 골목과 토담을 넘어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을 담아내며 기록한다. <편집자 주> 막걸리 협찬: 광양주조공사

추수를 앞둔 논배미는 가을이 만들어 낸 한 폭의 풍경화로 아름답다.

노을에 빛나는 황금 들녘은 농부의 부지런한 노동이 빚어낸 결실로 농촌의 풍요를 상징한다면, 수확을 마친 들판은 허허롭기 그지없다.

 

 

국사봉 아래 첫 동네 옥곡면 죽양마을은 본래 마을 터인 텃골을 죽치(竹峙)라 하였으며, 과거 인근에 대나무가 많아 대치 또는 큰 재 아랫마을이라는 뜻으로 이름이 전해지고 있다.

옥곡면 소재지에서 수평천을 따라 5㎞ 가량 올라가면 왼편으로 국사봉을 등지고 완만한 경사에 자리 잡은 죽양이 펼쳐진다. 총 70여 가구에 220여 주민이 오순도순 살고 있는 죽양은 장수마을로 유명하다.

최장수 어르신은 양수임 할머니로 올해 106세, 팔순을 넘긴 어르신도 20명이 넘는다.

 

 

 

죽양의 온갖 대소사를 챙기며 올해로 9년째 이장을 맡고 있는 정병진(69세) 이장을 만나 막걸리 한잔 따르며 마을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 마을은 김해 허씨가 입촌하며 마을이 시작됐지. 허씨는 대부분 떠나고 현재는 전주 이씨가 2/3를 차지한다네”

“철쭉축제가 열리는 국사봉이 우리 마을 뒷산이야. 예로부터 똑똑한 사람들이 많았던지 기세가 강한 동네로 소문이 나서 다들 어려워했지”

역사에 기록으로 남은 큰 인물은 없지만 국사봉의 기운을 받은 탓일까? 죽양 태생 인물은 드센 기운으로 이름을 떨친 모양이다.

“당시로는 늦은 스물아홉에 결혼해 짧은 객지 생활을 접고 서른 한 살에 고향으로 돌아온 뒤 농사를 천직으로 1983년부터 참다래 농사를 시작했어. 수입과일이란 걸 찾아보기 힘들었던 시절 광양에서 최초로 그린키위인‘ 헤이워드’ 품종을 재배했지”

정 이장은 국내 참다래 재배 초기 시절 수입묘목을 가꾸며 혼자 힘으로 어렵게 농사를 이어왔다.

혼자 힘으로 익힌 재배 기술을 지역 농가에 보급한 노력으로 2010년에는 농업인 대상을 수상하며 공로를 인정받았다.

“남해 과수시험장에서 1960년대에 청와대 시식용으로 키위를 시험 재배하던 시절이여. 우리나라에서도 재배가 가능한 것을 확인하고 농가에선 처음으로 뉴질랜드 수입묘목을 키우기 시작한 것이니까 요즘 말로 내가 신지식 농업인이여”

쉴 새 없이 새로운 농법을 익히고 전하는 정 이장은“ 농촌은 노력한 대가로 소득 차이가 나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우리 마을이 다른 마을보다 기본 소득이 높은 것은 부단히 노력하고 성실하기 때문이제”라며 자랑이 대단하다.

마을 이장을 맡아 가장 큰 변화는‘ 주민 단합’을 꼽는다.

“한뜻으로 동네 사람이 모이면 어려운 일이 없어. 주민들이 모든 일에 두 팔 걷어붙이고 협조해줄 때 가장 보람을 느껴”

마을 숙원사업을 묻자 회관 앞을 지나는 복개천이 무너져 내린 곳이 많아 공사를 다시 하고 있다며 상류부터 주변 정비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한다.

 

 

 

수확 앞둔 참다래가 길옆 가득하고, 집집마다 울긋불긋 붉은 등을 내달아 놓은 듯 대봉감이며 단감이 골목을 환히 밝히고 있는 죽양의 가을은 감단풍이 절정이다.

옥곡 오일장에 대봉감 시장이 크게 열릴 날이 멀지 않았다. 경운기 가득 대봉감을 싣고 장날을 찾은 죽양 어르신을 만나거든 가격은 깍지 말고 덤이나 얻어 보자. 이장님 이름을 팔아 잘 익은 홍시 하나 맛 볼 수 있으면 더욱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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