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째 독거노인 가정에 도시락 배달 봉사 이어온 이동익 씨

어떤 통계학자가 말하기를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한국에서 볼 수 있는 안 좋은 모습이 부모가 재산이 있으면 더 자주 찾고, 재산이 없으면 잘 찾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얘기는 부모에게 재산이 풍족히 있으면 자녀들이 부양의 걱정을 덜고 서로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고, 재산이 없으면 수시로 부모를 찾아 부양의 의무를 다한다는 것이다.

특히 선진국일수록 더욱 도드라지게 나타난다니 우리 자신들을 되돌아 볼 일이다.

우리는 이들 나라와 반대로 부모에게 재산이 있으면 더 자주 찾고, 재산이 없으면 나몰라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유독 우리나라에는 저소득 빈곤층 독거노인들이 많은 건 아닌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 사회의 또 다른 곳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사회안전망이 돼 그들을 따뜻이 돌아보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하겠다.

광양 지역에도 이렇듯 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않고 사랑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그들 중 경제적으로 어려운 독거노인들의 식사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광양YWCA 무료급식소에서 도시락배달을 위한 봉사를 하는 사람들이다.

▲ 이동익 씨와 큰딸 세은이가 함께 도시락 배달에 나섰다.
사랑의 도시락 50

이른 아침.
광양읍 노인회관인 상록회관 1층에 있는 65세 이상 저소득층 노인들에게 제공되는 광양YWCA 무료급식소가 북적거린다.

도시락을 싸는 사람들은 자원봉사자들로 정성껏 싼 50개의 도시락은 광양읍귄과 옥룡, 옥곡, 중마 등의 몸이 불편해 회관으로 식사를 하러 오지 못하는 독거노인 가정에 배달된다.

이미 10여 년간 이뤄져 온 도시락 봉사라 이제 어르신들은 도시락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이 같은 도시락 배달을 10년째 해오고 있는 따뜻한 사람이 있다.
이동익 씨(44)가 그 주인공이다.

이 씨는 지난 2006, 그러니까 도시락 배달 봉사가 시작된 때부터 10년간 한 달에 6~7회 씩 도시락 배달을 해오고 있다.

이 씨는 현재 포스코 엠텍 냉연3과에서 20년째 근무 중으로 광양으로 이사 온 지는 21년 째니 광양이 제2의 고향인 셈이다.

도시락 배달은 퇴근 하고 집에 와 바로 배달봉사에 나서면 약 한 시간 반 정도 걸린다.

이 씨가 하루에 배달하는 도시락 수는 평균 22개 정도, 21집에서 22집이 어르신들께 도시락을 전해드린다.

이 일을 결혼 전부터 해 온 터라 아내도 그런 그의 봉사활동에 대해 뿌듯해 한다.

이 씨가 처음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광양장애인종합복지관 수화동아리 활동 중 우연히 회원으로부터 갑자기 배달할 사람이 없어 그러니 몇 번만 봉사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나서 부터다.

처음에는 몇 번만 하려고 했던 것이 어느 순간 의무감으로 변해 지속해 갔고, 이제는 당연한 그의 일과 중 하나가 된 것이 어느새 10년이 됐다.

이 씨는 이 정도의 봉사도 하지 않고 산다는 것은 내 삶의 대한 예의도 자세도 아니라고 생각한다특히 자녀들에게 자신의 이런 모습을 꾸준히 보여준다면 자라면서도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도시락 배달에는 이 씨의 큰딸인 세은이(칠성초 3)가 함께 했다.

세은이는 1학년 때부터 방학이면 아빠의 도시락배달을 따라다니고 있으며, 외롭게 지내시는 어르신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다.

이 씨는 세은이를 데리고 다니는 가장 이유는 어르신에 대한 효 교육도 되고 음식에 대한 소중함도 배우게 되는 것이라며 아이가 따라오는 걸 싫어하면 못 데리고 다니겠지만 도시락배달 하는 것을 너무 좋아해 줘 고마울 뿐이라고 말했다.

세은이는 제가 갖다드린 도시락을 드실 할머니,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기쁘고 기분이 좋다는 의젓한 말을 한다.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

도시락 배달에 대한 어르신들의 반응도 다양하다.
반가워하고 고마워하시는 분도 있으신가 하면 배고파 죽겠는데 왜 이제서야 오느냐고 역정을 내시는 분들도 계신다.

이 씨는 “10여년 쯤 이런 일들을 겪다보니 이제 그러려니 한다그것 보다 보통 10월까지는 배달할 곳이 많은데 돌아가시기도 하고 건강이 안 좋아져 요양원에 들어가시기도 하기 때문에 11월 들어서면서 부터는 배달할 곳이 많이 줄어든다며 안타까워했다.

고향이 순천 서면인 이 씨에게 도시락배달 봉사를 하며 달라진 가장 큰 변화는 순천에 홀로 계신 어머니께 연락도 더 자주하게 되고 더 자주 찾아뵌다는 것이다.

도시락 배달을 하면서 갖게 된 잊지 못할 기억도 있다.
봉강면에 사셨던 한 할아버지의 기억이다.

이 씨는 그 할아버지가 건강하실 때 처음 만나 점점 쇠약해져 가시는 과정을 약 4~5년 정도 지켜봤다늘 반갑게 맞이해 주시고 뭐라도 꼭 챙겨주시려는 모습, 몸이 쇠약해져 있을 때도 웃음을 잃지 않던 그 모습에서 사람을 얼마나 그리워하고 외로웠을지가 느껴졌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방학 때면 꼭 세은이를 데리고 갔다.
또 도시락 배달을 다니면서 아무도 임종을 지키지 못한 채 돌아가신 어르신을 발견하기도 했다.

옥룡에 사시는 어느 할머니는 추운 겨울에 마당에서 돌아가신 채 동익 씨에게 발견되기도 했다.

이 일이 있은 후부턴 어르신들 집에 들어서면 꼭 큰소리로 어르신들을 부른다.
인기척이라도 확인해야 맘이 놓이기 때문이다.

퇴직 후 더 다양한 노인관련 봉사를 하며 살고 싶다는 동익 씨.
동익 씨에게 봉사란 뭐냐 물으니 ()’이라고 말한다.

이 봉사가 제겐 유일하게 남에게 자랑스럽게 얘기할 수 있는 꺼리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분들은 시간이 없어서 봉사가 힘들다고 말하지만 제가 해 보니 봉사를 하면 시간이 더 남게 되는 것 같아요. 하루를 일찍 시작하니 더 긴 하루를 보내게 되고 어르신들 배고플 거 생각하니 배달 전날에는 술자리 약속이 있어도 간단히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게 되죠

이제는 어르신들이 부모같다는 동익 씨는 더불어라는 말을 가장 좋아한다.
그리고 삶의 가치관은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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