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영동을 색칠하는 화가 ‘큰그림연구소’ 이현숙 대표

광영동 골목길에는 오드리 햅번이 있다. 쏟아지는 빗속에도 담벼락 속 파란 꽃은 여전히 싱싱하다. 성장판이 닫힌 초록 넝쿨은 창문 아래서 하염없이 누군가를 기다린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먹고 자라는 이 식물들은 모두 큰그림기획연구소회원들이 물감 묻은 손으로 낳은 소중한 자식들이다.

걸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골목, 그 거리를 지나 카페 에 들어서니 이현숙 대표가 벽화 속 햅번처럼 환한 웃음으로 나를 반긴다.

무채색이었던 광영동을 화사하게 색칠한 그녀, 과연 오늘은 또 무슨 일을 꾸밀까.

광영동을 스케치하다

2009, ‘큰그림기획연구소를 세우고 회원들과 옥곡 요양원, 광양 시립도서관 등 광양 일대를 돌며 벽화봉사를 다녔던 이현숙씨는 광영동 근처에 작업실을 얻으면서 새로운 구상에 빠진다. 예전에는 활기찼던 광영동이 이제는 특별한 매력도 없이 조용히 숨만 쉬고 있는 모습을 보며 이 동네를 살리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

그는 광영동이라는 하얀 도화지를 펴놓고 생각에 잠긴다. 지나가는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벽화도 좋지만, 그들의 걸음마저 멈추게 할 순 없을까. 멈춰 서서 내가 사는 이 마을의 모습을 돌아보고 또 다른 큰 그림을 그려볼 수 있도록.

그래서 생각한 것이 축제였어요. 잔치를 벌이면 사람들이 뭐지?’하고 관심을 가질 테니까요. 여기에 마을의 역사를 담은 사진까지 전시한다면... 예전의 모습을 돌아보고 현재 우리의 모습을 인식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죠

그렇게 그는 2014광영골목 아트플레이를 처음 개최하고 주민들을 끌어 모으기 시작했다.

사진전, 벼룩시장, 프리마켓 등 다양한 잔치에 주민들이 서서히 걸음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의 스케치대로 광영 골목이 조금씩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3년간의 노력, 그리고 변화

아트플레이 축제, 마을 벽화 그리기, 햇살꽃 프리마켓 등 그는 3년 동안 광영동을 살리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처음에는 이상한 사람들이 이상한 거 한다는 시선으로 다들 보셨죠. 그런데 꾸준히 축제를 열다보니 그 냉대의 시선이 조금씩 따뜻해지기 시작했어요. 지나가다 작업실에 들려 저에게 마을에 대한 아이디어를 주고 가시거나, 애로사항들을 이야기하는 분들이 늘어났죠

그 노력에 결실을 맺듯 2016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에 선정돼 마을의 보물을 찾아서라는 프로그램을 열게 됐다.

매주 2, 주민들이 모여 마을의 고민과 생각들을 구체적으로 기획해 스스로 마을 공동체를 변화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

개선됐으면 하는 장소를 사진으로 찍고, 영상도 만들고, 방법을 찾고, 필요하면 행정적 절차까지 밟으며 스스로 마을을 변화시켜가고 있어요. 주인의식을 가지고 마을을 가꿔나가는 첫 걸음이죠

지속가능한 문화 공간을 위해

축제는 주민들이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트플레이도 2년 넘게 이어오고 있지만 언젠가는 지원이 끊길 것이고, 그대로 사라지지 않기 위해서는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필요하죠

담벼락의 그림도 세월에 바래지고 빗물에 씻겨 조금씩 지워지기 마련.

언제나 푸릇한 그림으로 행인을 반기기 위해선 화가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덧칠이 필요하듯, 광영동의 문화 공간도 시민들의 관심으로 자립성을 길러가야 한다는 이현숙 대표.

축제가 자체적으로 이어지기 위해선 문화를 향유하는 데 있어 정당한 지불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문화라는 것은 공짜로 이어지는 게 아니며, 작가들 역시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돼야 다음 작품을 창작할 원동력을 얻을 수 있고 역량도 키울 수 있거든요

그의 말대로 작가와 시민, 서로가 win-win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건강한 문화예술이 마을 깊숙이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이다.

한 시간 남짓한 인터뷰에도 그는 지친 기색 하나 없이 한결 같은 열정으로 광영동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다.

게다가 지난 6경관협정 활성화 지원사업에 선정돼 코디네이터로 활동하게 된 터라 어깨가 한 층 더 무거워졌다.

그래도 마을이 변화되는 모습을 보는 것이 너무나 뿌듯하다는 이현숙 대표.
그 덕분에 내일도 광영동은 주민들의 행복한 수다로 한층 더 소란스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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