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기만 좋아하는 사람은 어리석고, 듣는 것 좋아하는 사람은 현명하다고 했던가.

광양의 향후 5년간 문화예술의 진흥을 위해 모인 사람들은 소위 전문가라고 불리는 지역 지도자들이었다. 한국예총을 필두로 지역작가, 공연기획자, 각종 예술협회 리더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화려한 명찰을 단 그들이 함께 머리를 맞댄다면 전남 제일가는 랜드마크도 세울 것 같다는 믿음이 들었다. 그러나 명단은 화려했고 회의장은 초라했다.

출석률이 저조했던 것. 주인을 찾지 못한 의자들이 속출했고 결국 회의는 가운데를 텅 비워놓은 채, 다소 초라하게 시작했다. 각 임원들은 준비해온 사업을 발표하고 질의응답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나 한 사람당 많게는 9개의 사업계획을 가지고 오는 바람에 시간에 쫓겨야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무려 50개의 새로운 사업이 제안됐다. 그들은 머릿속에 구상해왔던 다양한 문화예술 콘텐츠를 모두 쏟아냈다. 대단하지 않은가. 그 중에는 정말 좋은 아이디어들도 많았다.

사회자의 브레인스토밍처럼 서로 자유롭게 의견을 던지면서 최선의 것을 찾아보자는 의도에는 어느 정도 걸맞는 것 같았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을 여러 사람이 머리를 맞댄다면 최선의 길을 찾아낼 수 있으리라. 그러나 그들은 머리를 맞대기도 전에 가방을 들고 허리를 숙이며 미안한 표정으로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바쁜 일이 있다고 했다. 물론 이해한다. 지역 지도자로서 살아가려면 얼마나 많은 스케줄에 시달리겠는가. 하지만 그것이 한두 명이 아니라는 것. 한 명이 본보기로 발표순서까지 바꿔가며 먼저 일을 치르고 지루한 회의실을 빠져나가자, 마치 줄줄이 소시지처럼 사람들이 따라 나가기 시작했다.

의문이 들었다. 그들은 토론을 하기 위해 왔는가, 아니면 발표를 하러 왔는가. 자신의 큰 그림을 멋들어지게 펼쳐놓고는 관객의 평은 필요 없다는 듯이 서둘러 전시회장을 빠져나가는 화가처럼, 그들은 자기 자신의 사업에 도취된 듯 보였다. 의견을 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서로 토의를 하고 내가 보지 못했던 것들을 찾아내고, 함께 사업을 발전시켜야 나가야하는 것 아닌가. 그분들에 비하면 나이도 턱없이 적고 명패 하나 없는 초라한 청년이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냥 과시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서로의 사업 구상을 꼬집고 비판하기에 급급할 뿐, 그것을 어떻게 좀 더 보완해서 함께 만들어 갈 것인가를 그들은 고민하지 않는 듯 했다.

함께는 없고 밖에 없었다.

물론 몇몇 분들은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경청해준 분들도 계셨다. 대체로 이름순 발표 형식 때문에 성에 이응, 지읒 자가 들어가신 분들과 정말로 광양 문화예술을 살려보고자 하는 몇몇 예술가들이었다. 그러나 너무나 민망하게도 회의가 끝날 때는 고작 9명만이 남아있었다. 마지막 차례이자, 이날 워크숍의 핵심이었던 토론시간은 그렇게 개인 스케줄로 인해 떠나버린 사람들 때문에 초라하게 막을 내려야만 했다.

무수한 말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그것을 두 손에 곱게 담아 살펴보고 만져보고 만들어가려는 이들은 없었다.

아무도 듣지 않는 말들만이 회의장 바닥을 이리저리 굴러다닐 뿐회의는 그렇게 끝났다.

이렇게나 훌륭한 아이디어를 가진 분들이 광양에 수두룩한데, 왜 광양은 수년 동안 변하지 않았던 걸까 라는 물음에 어렴풋한 해답을 얻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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