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강현의 사소한 이야기

인간의 감각기관 중에 주변을 탐색하기 위해 가장 많이 의존하는 것이 시각이다.

그러나 갓 태어난 아이의 시력은 극히 원시적 수준이다. 겨우 전방 20~25㎝ 전방의 물체만 볼 수 있다. 그것마저도 뿌옇게 보일 뿐이다. 그러나 생후 3개월이 되면 자신을 향해 움직이는 물체를 탐지 할 수 있게 되고 6개월이 되면 물체의 색과 깊이를 느낄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생후 1년이 지나면 시력조정이 마무리 되고 2년이 되면 0.3의 시력을 갖게 된다. 그 후 3년 정도 지나면 0.8의 시력을 갖게 되고 9살이 되면 시력이 완성되어 정상적인 성인의 수준에 이른다.

이처럼 시각은 오감 중에 가장 발달이 느리고 오래 걸리지만 인간이 주변의 사물을 지각하는데 시각이 차지하는 비중은 80%를 넘는다.

그래서 우리 속담에도“ 몸이 열 냥이면 눈이 아홉 냥이다”는 말이 있다. 인간이 하루 평균 보고 기억하는 이미지의 양은 1만개가 넘는다고 한다.

이렇듯 시각은 인간의 창조적이 뇌활동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며 인간의 생존에서 차지하는 역할과 비중 또한 대단하다.

이러한 눈의 중요성은 여러 가지 분야에도 적용된다. 무사들은 초보단계에서는 손으로 베고 좀 더 진전되면 발로 벤다 한다. 그리고 고수의 수준에 이르면 눈으로 베고 입신의 경지에 들면 마음으로 벤다는 말을 한다. 하다 못해 구기 종목에도 이런 말들이 있다. 발과 손의 단계를 지나면 눈의 단계를 그리고 마침내는 마음의 단계에 이른다고 한다. 오랫동안 운동을 해본 사람들은 이 말의 뜻이 무엇인지 안다.

그러나 최고의 경지에 이르기까지 모든 감각을 지배하던 눈이 이제는 한계가 된다. 지배력이 너무 크다 보니 또다른 무엇인가를 느끼는데 오히려 방해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끔 눈을 감는다. 시각을 차단함으로써 작지만 강력하고 중요한 다른 감각기관들을 깨우는 것이다. 그래서 진한 전율로 전해지는 음악을 들을 때, 어디에서도 맛본 적이 없는 진미를 느끼고자 할 때 우리는 눈을 감는다. 심지어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교감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눈을 감는다.

절대적인 지배력을 가진 어떤 것의 영향을 벗어나면 마침내 얻어지는 깨달음!

인간의 감성적인 깨달음 또한 이런 간단한 지각심리학의 깨달음과 다르지 않다. 심한 갈증 끝에 한잔의 물을 마실 때도 우리는 눈을 감는다.

우리의 감각의 말단에서 시각으로 왜곡되지 않는 순수의 그것, 가장 본래적인 것들을 느끼고 찾기 위해 우리는 본능적으로 절대적인 감각기능의 하나를 차단시키는 것이다.

이제 다시 눈을 뜨고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시대를 관통하는 가장 큰 영향력은 무엇인가를 생각해본다.

그것은 거대한 글로벌시장에 바탕을 둔 자본과 시장의 논리다. 이 논리는 우리의 기업과 시장구조는 물론 우리의 학교와 가정과 개인의 가치관까지 규정하는 가장 큰 힘이 되고 있다.

그것은 효율과 성장, 무한경쟁이라는 이름으로 구체화된다. 항상 그 어떤 것과의 비교를 통해서만 자신의 가치를 결정하고 그 가치의 크기는 시장안에서 화폐단위로 구체화되었을 때만이 실용의 단계를 밟는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불안하다.

지금의 것들이 언제 용도폐기 될지 모르는 극박한 상황에서의 자기혁신이 강요되고, 도태되면 사라진다는 절박함이 삶의 무게를 만만치 않게 한다.

그래서 갖가지 스펙을 만든다. 이러한 스펙은 자본의 논리에서 본인에 대한 상품성을 극대화는 데에 초점이 맞춰진다. 자기만족과 행복이라는 단어도 철저히 시장안에서 규정되고 타인들에 의한 평가속에서만 존재한다.

이렇게 거대한 매커니즘으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미래를 예측하고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몽매함에 불안하다.

우리가 가진 감각기관으로는 판단이 어려운 지경이다.

그래서 우리도 눈을 감을 필요가 있다.

지금의 우리를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인지구조의 사회적 지각능력을 잠시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진정한 맛과 음률을 찾기 위해 시각을 차단하듯 지금껏 우리가 세상을 판단하던 잣대를 내려놓아야 한다.

그리고 다시 우리의 감성으로 되돌아가 굴절되고 퇴화된 우리의 능력을 극대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만이 새로운 세상을 창의적으로 해석하고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을 만들어 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타인을 설득하고 그들에게 감동의 전율을 느끼게 하는 우리만의 스토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지금의 세상을 가장 강하게 인지케 하는 절대적 기준을 잠시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타인에 입맛에 맞춘 어설픈 스토리텔링으로 돈을 벌어보겠다는 발상이 얼마나 위험한지, 그리고 그렇게 해서는 까다로운 사람들의 심성을 사로잡지 못한다는 사실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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