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영의 시민칼럼

토론문화는 그 사회의 성숙함의 척도다. 시민들이 곳곳의 공간에서 자유롭게 토론하고 의견을 모아가는 모습은 마음에 다가오는 음악을 감상하듯 깊은 감동을 준다. 사색하게 만들고 스스로 입을 열게 만든다.

우리사회의 토론문화는 어떠한가? 크고 작은 공청회나 워크샵에 참석해 보면 많은생각을 하게 된다. 또 그 유형들을 보게 된다.

첫 번째는 인사차 빠지지 않는 인사들의 인사말 같은 한 말씀이다. 예를 들면 우리 광양은 어사박문수가 이르기를 전국지 호남이요 호남지 광양이요....어느 자리에서도 같은 말만 되풀이하는 형이다. 길지 않은 토론시간을 이분들의 인사치레에 절반정도 허비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둘째로 갈등이 있을 때 행동대장 격으로 나타나는 유형이다. 나는 오래전 어느 갈등이 심각한 공청회 현장에 간적이 있는데 발제자의 발제가 끝나고 토론이 시작하자 뒤에서 지역 어른이 앞자리 건장한 장년의 의자를 발로 툭툭 쳤다.

그러자 장년 두 명이 벌떡 일어나 앞의 발제자를 향해 소리치는 모습을 보았다. 내용은 그랬다. 자신들과 반대의견을 발제한 외부전문가를 향해“ 광양 것도 아닌 것이 뭘 안다고 ... 그만해” 그 후 토론장은 욕설이 난무하고 아수라장이 되었고 그날 토론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창피해서 고개가 숙여졌던 기억이다. 생각이 옳더라도 그릇된 광양 사랑이다. 범시민적사고에 대항하는 사업적 이해관계자에 의해 이런 현상이 벌어진다고 추측 한다.

셋째는 이름 붙이자면, 공권력 투입 유형이다. 몇 차례에 걸쳐 정책이나 자신들의 의견이 수세에 몰리는 경우 공청회 시작 직전에 단체나 기관회의를 열고 그 참석자들을 공청회에 다수 참석시켜 잘 짜여 진 각본처럼 토론을 힘으로 끌고 가는 유형이다.

최근의 어느 한 공청회가 그랬다. 그 전 공청회나 주민투표에서 9대 1로 수도 없이 밀리던 의견을 한번으로 역전시키는 경우다. 이 경우는 행정이나 정치인들이 주민을 충분히 설득하려 하지 않고 자신의 치적을 쌓으려는 데서 발현된다. 이것이 관철시킨 것인가. 설득시킨 것인가. 그렇지 않다.

넷째는 자발적 참여자이나 하고 싶은 말을 못하고 발길을 돌리는 유형이다.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유형이 지금껏 우리사회의 토론 아닌 토론을 주도해 간다. 그러나 네 번째여. 시민이여. 실망하기는 이르다. 네 번째가 우리 사회는 압도적 다수임을 잊지 말자.

주변의 더 작은 사회로 다가가 우리가 참여하는 모임을 보자. 충분히 토론하고 있는가. 충분히 말하고 있는가. 다양한 의견들을 청취하고 있는가. 당신이 그냥 평회원이고 일반시민이더라도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정보들에 쉽게 접근하고 있는가. 성숙한 사회는 위의 것들이 쉽게 구현되는 사회이다.

그동안 각종 토론회에 참여했다가 하고 싶은 말한마디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던 시민들에게 제안한다. 각종 관심사별로 분야별로 작던 크던 시민들이 모여서 시민네트워크데이 – 서로 관계에 의해 잘 알지 못하더라도 제안자에 의해 관심사가 같은 사람들이 모여 꾸준히 대화하고 의견을 나누는 날 또는 자리를 열어보자. 이것은 이미 다른 지역에서도 확산되고 있다.

시민 스스로 이웃들을 불러 모으고 편안하게 의견을 주고받고 모아 가고 작지만 모아진 의견을 행동에 옮기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토론을 하는 이유인 민주주의의 실천이다.

뜻밖에도 여느 자리에서든 보면 그러한 커뮤니티를 기다리는 이웃들이 많다.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정책네트워크, 문화네트워크, 교육네트워크, 나눔네트워크 등 수많은 네트워크들이 생겨나길 바란다. 이는 시민들의 참여로 풍성해 질 것이다. 성숙한 사회로의 진행일 것이다.

7월 29일부터 3일 동안 수평토론문화 확산을 위한 제1회 토론박람회가 백운산 자연휴양림에서 계획되고 있다고 들었다. 꼭 성사되길 응원하며 지역의 많은 시민들이 직접 토론팀을 꾸려 주도하고 또 각 부스를 돌며 토론을 즐길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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