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태 에세이

부자나라에서 날아온 이야기.

지난 6월 25일 미국 NBC 방송과 USA 투데이 등에 따르면, 미국의 동북부 끝자락에 위치한 메인주의‘ 퍼스트레이디’, 곧 주지사 부인 앤 프레이지 여사가 한 해산물 레스토랑인에서 손님의 주문을 받아 음식을 손님에게 접대하는 웨이트리스 로 취업해서 일하고 있다고 보도해 주목을 받았다.

그는 남편 폴 르페이지 주지사의‘ 박봉’으로는 생계가 어려워 소매를 걷어붙이고 식당 종업원으로 취업한 것인데, 우선 그는 손님들이 주는 팁을 모아 차를 사겠다는 거란다. 지사 부인 앤 여사는 “돈 때문에 시작했다. 꼭 해보고 싶은 일이었다.”고 지역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는 페이스북에“ 맛있는 음식과 아름다운 경관을 즐기고 훌륭한 서비스를 받으면서 멋진 시간을 만끽하시라”면서 식당 홍보에도 열성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한다. 알다시피 미국의 주지사는 선출직으로써 정치·사회적으로 높은 위상을 앞세워 자치정부에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한다.

그러나 주지사의 평균 연봉은 13만 달러로. 우리돈으로 환산하면 약 1억 5250만원으로 생각만큼 높지 않다. 실제로 미국 50개 주 중에서 면적 순위 39번째인 메인 주의 폴 르페이지 주지사 연봉은 전국 주지사 가운데 가장 적은 7만 달러(약 8211만원)를 받는다. 한 달 월급으로 환산하면 한화로 약7백만 원 꼴이다. 명색이 지사인데 한국의 중소도시 시장의 월급만도 못하다. 그래서 가계를 돕자고 부인이 식당 종업원으로 나선 것이다.

한국에서라면 언감생심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건만, 미국이란 나라이므로 그런 일도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면서, 우리와 그 나라 사람들 사이에는 소위‘ 공직문화’에 대한 개념의 차이가 너무나 두드러지게 다르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얼마 전에도 모 도지사의 해외출장에 마느라가 따라다니며 골프를 치고 관광을 즐기며 공금을 낭비했다고 해서 말썽을 일으킨 일이 있었다. 같은 선출직 공직자이면서 그렇게 다르다는 것을 우리는 모르고 지내왔다.

내가 미국에 살면서 보고배운 것 중 하나가 미국의 공직사회의 청렴함과 공금에 대한 엄격한 씀씀이였다. 그들은 종이 한 장이라도 허술하게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대부분의 공문서 용지가 재생지이며, 관공서의 표지가 찍힌 봉투 하나라도 사적으로 사용하지 못한다. 아니, 하질 않는다. 공사의 구분이 확연하기 때문일 거다. 사용하다간 벌칙에 따라 상당한 액수의 벌금을 내야하고 가딱하면 처벌도 받을 만큼 공과 사가 엄격하다. 또 다른 예를 들면, 경찰관이 경찰차를 몰고 식당에라도 가서 식사를 하는 것을 보면 그것을 목격한 시민이 경찰서장이나 시장에게 전화를 걸어 항의를 하는 경우를 직접 보기도 했다. 그만큼 시민의 공직사회에 대한 의식수준이 높더라는 말이다. 물론 내가 보고 겪은 범위가 좁아서 미국 사회 전반의 공직사회를 통틀어서 말할 순 없다. 대체로 내 눈에 비친 것이 그렇더라는 것이다. 좌우간 그곳의 공직자들의 윤리관과 한국의 그것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공직에 종사하는 자들, 곧 공직자는 이 사회의 엘리트층에 속하는 자들이다. 한 사람의 하위급 공무원을 뽑는데 수십 명 지원자가 모여 경쟁을 하게 되는 판이라서, 옛날 과거시험에서 장원급제를 하는 것 이상으로 영광스러운(?) 지경이다. 그런가하면 시쳇말로 금 수저를 물고 태어난 자들이 고위직을 차지하기도 한다. 그리고선 공직자 본연의 직무인 ‘봉사’는 걷어치우고 권위주의에 흠뻑 빠져서 부도덕하고 비겁한 권력을 휘둘러 호의호식하고 개인적 치부를 일삼는 자가 부지기수이다. 일일이 예를들 필요가 없다. 날마다 TV와 신문이 보도하는 뉴스에는 꼭 한 두 가지 공무원의 부정행위나 공직사회의 부패상이 단골 메뉴로 등장하지 않는가.

공직자를 특히 국가의 각종 공적 기관에 종사하는 자를 공무원이라 한다. 영어로는 공복이라는 뜻으로 public servant라 하고, 공무원이라는 것을 굳이 번역하자면 public (service) official이라고 할까.

공복이란 뜻인 public servant인 경우, servant는 serve라는 말과 어근이 같은데, 이 serve란 말은 원래‘ 노예’라는 뜻에서 온 것이라 한다. 그렇다면 공복은 곧‘ 공노’인 셈이다. 나는 여기서 공직자를 굳이 낮춰서 말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오늘의 민주사회에서도 공직에 있는 자들 중에는 자기가 옛날의‘ 벼슬아치’와 같은 것인 양 잘못 알고 잘못 처세를 하고 있는 것을 꾸짖고자 할 따름이다.

공직자윤리법이 있다. 1981년 12월 31일 제정되어 1987년 12월 4일과 1988년 8월 5일 일부개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총 6장 24개조로 되어 있으며, 공직자윤리법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두고 있다. 요약하면 공직자의 부정행위를 방지하고 공무집행의 공정성을 확보함으로써 깨끗한 공직사회를 구현하며, 나아가 공직자로 하여금 국민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그 책임을 다할 수 있게 함을 목적으로 하는 법이다. 공직기강 확립과 기강 바로 세우는 선결과제 실천해야 국민의 녹을 받는 공직자 기강해이 문제다. 공직자가 바로서야 국민도 경제도 바로 선다.

일찍이 다산 정약용 선생께서 귀양살이 땅 강진에서 공직자, 곧 백성을 다스리는 목민관의 마음과 몸가짐에 대한 글을‘ 목민심서’에 남겼는데, 그 가운데서 다음과 같이 한 대목을 뽑아 오늘의 공직사회에 격언으로 드린다. 그 글을 읽기 전에 꼭 말하고자 하는 것이 있다. 내가 지상에서 읽은 것인데, 서울에서 미국 뉴욕으로 가는 항공편(국내선)의 요금이 일반 국민은 왕복 111만원인데 비해 공무원은 그 4배가 넘는 공금으로 같은 배행기를 탄다는 것이다. 아래의 다산 선생님의 말씀이 씁쓸할 것이다.

“나라를 망하게 하는 것은 외적의 침략이 아니라, 공직자의 부정부패에 따른 민심의 이반이다.”“ 백성을 사랑하는 근본은 재물을 절약해 쓰는 데 있고, 절용하는 근본은 검소한 데 있다. 검소해야 청렴할 수 있고 청렴해야 백성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검소하게 하는 것은 목민관이 된 자가 가장 먼저 힘써야 할 일이다.”

저작권자 © 광양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