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강현의 사소한 이야기

▲ 박강현 (사)한국해비타트전남동부지회 사무국장
“오늘날은 그야말로‘ 이야기의 홍수시대’다. 우리는 하루 동안에도 수많은 이야기의 홍수 속에 휘둘리고, 감동하고, 울고, 웃으며 살아가고 있다. 매일 새로운 이야기를 만나고, 그 이야기에 의해 우리의 삶은 계획되고 변화된다.…이야기는 지금도 우리 삶속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에너지를 전달한다. 그리고 그 에너지는 말 그대로의‘ 힘’이다. 이야기 속에는‘ 힘’이 있다!”-2『이야기의 힘!』황금물고기,2011.
도대체 이야기를 통해 전달되고 변화되는 삶의 영역은 어디까지일까? 그리고 이야기의 힘은 어디서 오는 걸까? 그리고 그것은 인간의 이성과 욕망에 어떻게 닻을 내리고 있을까?

합리적 이성!
대부분의 사회학자들은 인간의 사회에서 합리적 이성을 갈구한다. 그러나 세상사의 대부분은 결코 합리적 이성에 의해 결정되어지지 않는다. 20세기 강력한 힘을 발휘했던 사회과학의 퇴조도 인간사회의 결과들이 합리적 인과관계 의해 설명되지 않는 다는 자각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최근 브렉시트로 빚어진 영국의 이율배반도 이러한 현상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EU의 과도한 규제로 영국의 성장이 발목을 잡혔다는 회의론과 난민을 비롯한 이주민들에 대한 복지지출 등의 재정부담이 가중되면서 벌어진‘ 브렉시트’. 영국의 이러한 선택은 과연 합리적인가라는 질문에 부정적인 견해가 대부분이다.

이렇듯 인간의 본성은 감성과 합리성의 충돌 속에서 어쩌면 너무나 충동적이기도 하고 비이성적이기도 하다. 그러한 비이성이 나름 최고의 지성과 사회성으로 무장한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아니러니하다.

브람스, 바하, 베토벤, 슈만 등의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음악가들과 베를린 교향악단과 뮌헨교향악단. 실존주의 철학의 선구자로 불리는 니체와 철학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철학자 중 한사람으로 불리는 칸트, 변증법이란 철학적 방법론을 제시한 헤겔, 염세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파우스트’의 괴테, ‘수레바퀴 밑에서’를 쓴 헤르만헤세‘, 빌헬름 텔’의 실러…

음악에서도 문학에서도 그리고 과학과 철학에서도 독보적인 거장들이 존재하는 것처럼 사회의 성숙도가 남달랐던 이 나라! 한반도 1.6배의 면적에 8천여만명의 인구와 GDP규모 세계 4위의 드러난 것보다 내공이 더 깊은 나라! 그런데 이런 문학과 음악, 철학의 성숙도를 자랑하는 이 나라가 함량미달의 한 인간을 지도자로 선택해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학살을 일삼았다면 믿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잠시 독일의 아이러니에 대해 들여다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오스트리아의 작은 시골마을에 태어난 히틀러는 일찍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길거리를 떠돌며 엽서그림이나 그려주는 떠돌이 그림쟁이였다. 생계를 위해 힘들게 살아야했던 그가 틈이 나면 리하르트 바그너의 게르만 민족신화에 관련된 오페라를 감상했다.

역사속에 깊이 뿌리내려있던 이야기의 힘은 자연스럽게 히틀러의 가슴속에 자리잡게 되었다. 히틀러의 일화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1차 세계대전이 한창 벌어지고 있을 때 한 독일병사가 다친 몸을 이끌고 전탱터로 나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의사가 그에게 왜 죽음을 무릅쓰고 싸우려하는가라고 묻자 이 젊은이는 이렇게 답했다.“ 그건 나의 조국 독일이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존경할만한 나라이기 때문에 독일이 세계를 다스리게 되면 다른 민족에게도 행운이 될 것이다” 이 젊은이가 바로 히틀러다.

그는 훗날 그의 오른팔이었던 괴벨스를 통해 아리아민족의 우월성을 담은 신화를 만들어 온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사람들의 분노를 유대인에게 이끌었다. 결국 1700만명을 학살했고 그중에 600만명의 유대인이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집시와 폴란드인, 동성애자와 장애인들도 인간청소의 대상이 되어야 했다. 가장 합리적 이성이 충만했고 음악과 문학으로 다져진 독일이라는 나라에도 감성을 파고 드는 이야기의 힘앞에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이야기의 힘은 다만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인간이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고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결과는 천차만별이 된다. 다만 훗날의 사람들이 그 아픔을 변명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있다는 게 그나마 작은 위안이랄까. 그러나 이런 너무나 인간적인 갈등과 충동, 그것을 감성이라는 말로 표현해보면 그래서 인간은 아름다운 것이 아닐른지. 부족하고 어설프기 그지없는 인간이란 존재와 그들이 구성하는 사회가 수천년의 역사속에서 갈팡질팡하며 남겨놓은 족적들.

그것은 수많은 이야기로 태어나면서 인간사에 진한 전율과 충만한 느낌으로 자리한다. 사람들은 예로부터 이야기로 전해지는 그들만의 소통과 전달, 그리고 공유하는 방법에 있어 이야기가 갖는 힘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래서 신화가 없는 민족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야기는 한 민족의 정체성을 만들고 그들이 세계속에서 살아갈 지표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그래서 놀랍다. 합리적 이성보다는 우리는 항상 위로받고 싶은 감성에 더 휘둘리는 것은 아닐른지.

그래서 역시 스토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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