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길보건진료소 임정자 소장

치매예방·심폐소생술·스트레칭·밤길 걷기 등
어르신들 위한 프로그램으로 언제나 바쁜 하루

구불구불한 길을 지나 산허리를 넘고 돌아 도착한 곳. 진월 대리마을. 아늑한 산줄기에 둘러싸여 사방이 온통 초록인 그곳에 내가 왜 왔을까, 한다면 그것은 순전히 소문 때문이다.

들리는 것이라곤 풀벌레 소리, 가을바람에 벼가 스러지는 소리뿐인 이곳에서 대체 어떤 소문이 돈다는 것일까.

오후 2, 마치 약속이라도 된 듯 보건소 옆 월송경로당에서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살짝 들어가 엿보니 소문의 당사자가 그곳에 있다.

할아버지 30여명을 모시고 열심히 스트레칭 강의를 펼치고 있는, 바로 소문난 일중독자 임정자 월길보건진료소 소장이다.

▲ 월길보건진료소
행복대학, 들어는 봤소?

임정자 소장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먼저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 같다.

소문의 근원지는 바로 2010, 임 소장이 황길보건진료소에서 근무할 당시부터 시작됐으니 말이다.

임 소장은 어르신들이 주로 TV를 보거나 화투를 치며 무료한 여가를 보내는 것을 보고 좀 더 활기차고 건강한 노년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행복한 노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신체 건강이 필수요소기 때문.

▲ 웃음 많은 소문난 일 중독자 임정자 소장
그리하여 임 소장은 직접 행복대학을 설립하고 어르신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설했다.

치매예방 프로그램 걷기 운동 프로그램 웃음치료 프로그램 등 질병과 건강, 삶의 질 향상까지 고려한 알찬 수업이었다.

골약동의 8개 마을 주민들은 매주 2, 임 정자 소장을 따라 건강한 노년을 위한 길을 함께 걷기 시작했다.

특히 치매예방 프로그램은 사전에 인지능력, 우울척도를 검사해 체계적으로 구성했다. 종이접기, 만들기, 그림, 퍼즐 등 재미는 물론 기억력 향상과 인지능력 상승에 효과가 컸다.

3개월 동안 행복대학을 다닌 어르신들은 졸업식 때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다른 지소로 떠나는 임 소장을 붙잡고, 떠나지 말라고 간청하기도 했다. 자기 몸처럼 어르신들의 건강을 살뜰히 챙기는 임 소장에게 정이 단단히 든 것이다.

아쉬운 마음에 어르신들이 십시일반 모아 임 소장에게 감사패를 선물하기도 했다. 그것은 여전히 임 소장에게 보물 1호로 남아있다.

임 소장은 졸업사진을 찍을 때 서로 웃긴 가발을 쓰고 웃으면서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난다“20년 진료소장을 하면서 가장 행복했었고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었다며 그날을 추억했다.

그 때가 구정 무렵이었는데 어르신들이 수업 때 만든 종이지갑에 세뱃돈을 넣어 손자에게 줬더니 너무 좋아했다고 자랑하시곤 했다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어르신들이 한층 더 밝아진 모습을 볼 수 있어 뿌듯했다고 말했다.

덕분에 우리 마을이 웃소!

임 정자 소장의 일 욕심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끓어올랐다. 그 열기는 진월 월길까지 닿아 적막했던 금동·신송·송현·가길·대리·중도 등 6개 마을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 섬진강 동백길 걷기 대리마을 팀의 출석부. 개근상 후보도 여럿이다.
1월에 부임한 임 소장은 2월에는 가길마을 치매예방 프로그램3월에는 대리마을 섬진강 동백길 걷기와 중도마을 공원길 걷기4월에는 찾아가는 심폐소생술 프로그램7월에는 할아버지 경로당(월송 경로당) ‘스트레칭 및 교육 프로그램을 시작해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특히 걷기 프로그램은 마을 주민 30여명이 매일 저녁 약속이라도 한 듯이 섬진강 길을 걷는데, 보건진료소 앞에는 그 흔적을 말해주듯 출석표가 걸려있다. 매일 빠지지 않고 개근하는 운동광 할머니도 두루 있었다.

이러한 마을 문화가 형성되기까지는 임 소장의 무던한 노력이 숨어있다. 임 소장은 경로당에 앉아 있는 것에 익숙해져버린 어르신들의 무거운 엉덩이를 일으키기 위해 매일 저녁 어르신들과 함께 밤길을 걸었다.

처음에는 귀찮아하던 어르신들도 임 소장의 살뜰한 마음에 동해, 이제는 시키지 않아도 밤이면 밤마다 섬진을 찾았다.

임 소장은 이곳 월길에 와서 가장 잘한 일이 있다면 바로 할아버지들을 움직이게 한 것이라고 꼽는다.

▲ 할아버지들이 세월에 굳은 몸을 풀기 위해 열심히 스트레칭 중이다.
임 소장은 할머니들은 비교적 건강에 관심이 많아 운동을 스스로 하려고 하지만 할아버지들은 잘 안하려고 하신다그래서 할아버지들이 모여 있는 경로당을 직접 찾아가 스트레칭을 알려주고 혈압을 재드리고, 각종 질병과 폭염 대비 등 때에 맞는 교육을 해드렸다고 말했다.

매주 수요일, 여섯 마을에 사는 할아버지들은 40여분의 스트레칭으로 뒷전으로 밀어놓은 건강을 다시 되찾기 시작했다. 비록 전혀 다른 엉뚱한 자세로 따라하시는 분도 있지만, 건강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행복한 노년은 이미 시작됐다고 봐야할 것이다.

도대체 시키지도 않는 일을 그렇게 열심히 하는 이유가 뭔가요? 라고 물으니 임 소장은 그저 웃기만 한다. 그런 것을 하는 이유를 생각해본 적도 없고, 그냥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는 것.

그에게는 어르신 건강을 챙기는 것이 하루 세끼를 챙겨먹는 것처럼, 어쩌면 당연한 일상일지도 모르겠다.

임 소장은 바라는 것은 단 하나, 어르신들이 건강한 몸으로 행복한 노년을 보내시는 것이라며 찾아가는 프로그램을 하면서 어르신들과 더 돈독해지고, 신뢰감이 생겨 더 그들의 건강을 더 살뜰히 챙길 수 있었다. 앞으로 더 많은, 더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야심찬 포부를 밝혔다.

일 중독자 임 소장 덕분에 머지않아 월길이 진월 제일의 건강마을이 될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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