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길보건진료소 임정자 소장
치매예방·심폐소생술·스트레칭·밤길 걷기 등
어르신들 위한 프로그램으로 언제나 바쁜 하루
구불구불한 길을 지나 산허리를 넘고 돌아 도착한 곳. 진월 대리마을. 아늑한 산줄기에 둘러싸여 사방이 온통 초록인 그곳에 내가 왜 왔을까, 한다면 그것은 순전히 소문 때문이다.
들리는 것이라곤 풀벌레 소리, 가을바람에 벼가 스러지는 소리뿐인 이곳에서 대체 어떤 소문이 돈다는 것일까.
오후 2시, 마치 약속이라도 된 듯 보건소 옆 월송경로당에서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살짝 들어가 엿보니 소문의 당사자가 그곳에 있다.
할아버지 30여명을 모시고 열심히 스트레칭 강의를 펼치고 있는, 바로 소문난 일중독자 임정자 월길보건진료소 소장이다.
임정자 소장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먼저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 같다.
소문의 근원지는 바로 2010년, 임 소장이 황길보건진료소에서 근무할 당시부터 시작됐으니 말이다.
임 소장은 어르신들이 주로 TV를 보거나 화투를 치며 무료한 여가를 보내는 것을 보고 ‘좀 더 활기차고 건강한 노년’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행복한 노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신체 건강이 필수요소기 때문.
그리하여 임 소장은 직접 ‘행복대학’을 설립하고 어르신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설했다.
△치매예방 프로그램 △걷기 운동 프로그램 △웃음치료 프로그램 등 질병과 건강, 삶의 질 향상까지 고려한 알찬 수업이었다.
골약동의 8개 마을 주민들은 매주 2회, 임 정자 소장을 따라 건강한 노년을 위한 길을 함께 걷기 시작했다.
특히 치매예방 프로그램은 사전에 인지능력, 우울척도를 검사해 체계적으로 구성했다. 종이접기, 만들기, 그림, 퍼즐 등 재미는 물론 기억력 향상과 인지능력 상승에 효과가 컸다.
3개월 동안 행복대학을 다닌 어르신들은 졸업식 때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다른 지소로 떠나는 임 소장을 붙잡고, 떠나지 말라고 간청하기도 했다. 자기 몸처럼 어르신들의 건강을 살뜰히 챙기는 임 소장에게 정이 단단히 든 것이다.
아쉬운 마음에 어르신들이 십시일반 모아 임 소장에게 감사패를 선물하기도 했다. 그것은 여전히 임 소장에게 보물 1호로 남아있다.
임 소장은 “졸업사진을 찍을 때 서로 웃긴 가발을 쓰고 웃으면서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난다”며 “20년 진료소장을 하면서 가장 행복했었고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었다”며 그날을 추억했다.
또 “그 때가 구정 무렵이었는데 어르신들이 수업 때 만든 종이지갑에 세뱃돈을 넣어 손자에게 줬더니 너무 좋아했다고 자랑하시곤 했다”며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어르신들이 한층 더 밝아진 모습을 볼 수 있어 뿌듯했다”고 말했다.
덕분에 우리 마을이 웃소!
임 정자 소장의 ‘일 욕심’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끓어올랐다. 그 열기는 진월 월길까지 닿아 적막했던 금동·신송·송현·가길·대리·중도 등 6개 마을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1월에 부임한 임 소장은 △2월에는 가길마을 ‘치매예방 프로그램’을 △3월에는 대리마을 ‘섬진강 동백길 걷기’와 중도마을 ‘공원길 걷기’를 △4월에는 찾아가는 ‘심폐소생술 프로그램’을 △7월에는 할아버지 경로당(월송 경로당) ‘스트레칭 및 교육 프로그램’을 시작해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특히 걷기 프로그램은 마을 주민 30여명이 매일 저녁 약속이라도 한 듯이 섬진강 길을 걷는데, 보건진료소 앞에는 그 흔적을 말해주듯 출석표가 걸려있다. 매일 빠지지 않고 개근하는 운동광 할머니도 두루 있었다.
이러한 마을 문화가 형성되기까지는 임 소장의 무던한 노력이 숨어있다. 임 소장은 경로당에 앉아 있는 것에 익숙해져버린 어르신들의 무거운 엉덩이를 일으키기 위해 매일 저녁 어르신들과 함께 밤길을 걸었다.
처음에는 귀찮아하던 어르신들도 임 소장의 살뜰한 마음에 동해, 이제는 시키지 않아도 밤이면 밤마다 섬진을 찾았다.
임 소장은 이곳 월길에 와서 가장 잘한 일이 있다면 바로 ‘할아버지들을 움직이게 한 것’이라고 꼽는다.
매주 수요일, 여섯 마을에 사는 할아버지들은 40여분의 스트레칭으로 뒷전으로 밀어놓은 건강을 다시 되찾기 시작했다. 비록 전혀 다른 엉뚱한 자세로 따라하시는 분도 있지만, 건강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행복한 노년은 이미 시작됐다고 봐야할 것이다.
도대체 시키지도 않는 일을 그렇게 열심히 하는 이유가 뭔가요? 라고 물으니 임 소장은 그저 웃기만 한다. 그런 것을 하는 이유를 생각해본 적도 없고, 그냥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는 것.
임 소장은 “바라는 것은 단 하나, 어르신들이 건강한 몸으로 행복한 노년을 보내시는 것”이라며 “찾아가는 프로그램을 하면서 어르신들과 더 돈독해지고, 신뢰감이 생겨 더 그들의 건강을 더 살뜰히 챙길 수 있었다. 앞으로 더 많은, 더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야심찬 포부를 밝혔다.
일 중독자 임 소장 덕분에 머지않아 월길이 진월 제일의 ‘건강마을’이 될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