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사냐. 건강해라. 돈 많이 벌고. 세금 잘 내고. 그게 인생이여”

진월 무화과 할머니

새빠지게 벌어서 아들 하나, 딸 셋을 다 가르치고 나니 주머니가 텅 비었다.
자식들에게 손 벌리고 싶지 않아 할머니는 무화과와 밤을 줍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땅에 떨어진 밤송이를 까서 돌밤을 줍고, 설익은 무화과를 땄다.
몸이라도 성하면 산 중턱까지 올라가 더 많이 담을 수 있겠지만 이제는 무릎이 시려 엄두도 못 낸다.

추석을 핑계 삼아 자식들을 불러보지만, 슈퍼를 하고 있는 아들은 이번 명절에도 가게 문을 열어야 해서 못 온단다.

‘어쩌겄어’라고 하며 웃는 할머니의 얼굴이 내심 섭섭하다.

“몇 살인가? 스물여섯? 아이고, 예쁘네. 좋은 사람 만나야 할 턴디. 여자는 남자를 잘 만나야 혀. 내가 남편을 잘못 만나 요래 늙을 때꺼정 고생 안 한가”


진상 단감 할머니

아침부터 단감을 따느라 할머니의 입안이 온통 다 헐었다. 아무래도 오늘 번 돈도 고스란히 병원에 갖다 줘야 할 것 같다.

객지에 뿔뿔이 흩어진 아들 둘이 다음 주에 온다고 하는데 어쩌나, 손자들은 이번 명절에도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못 온 단다.

감 팔아 용돈이라도 넉넉히 주려했건만…

“영감은 16년 전에 죽고 지금은 나 혼자 살고 있어. 적적하냐고? 만고에 편해! 영감탱이 죽은 게 세상 좋아. 난 원래 버글버글한 걸 싫어하는 사람이야. 그래서 자식도 둘만 낳았어”

아침 7시부터 나와 짐 보따리를 풀었건 만 오전 내내 한 다라도 못 팔았다.

그래도 할머니는 평온하다. 나름대로 장사 철학이 있기 때문.

“안 살 사람은 별 짓을 다 해도 안 사고,살 사람은 가만히 있어도 사는 거여. 그러니까 호들갑 떨지 말고 가만히 있는 게 답이여. 금방 누가 산당가, 진득허니 기다려 보자고”

올 추석에 받고 싶은 것이 물으니 아무 것도 없다는 할머니.

자식에게 바라는 게 뭐 있겠냐며, 그저 자주 찾아오기나 하면 만사 오케이란다.

“요즘은 내가 일부러 용돈도 안 받으려고 해. 다들 힘들게 살잖아. 내가 벌어서 내 밥은 내가 먹어야지. 다들 바쁘니까 명절에도 왔다가 한 차에 가뿌려. 저번에도 5만원 줘불고 일 있다고 홀랑 가버렸지. 다들 시간 없이 바쁘게 사니 어쩔 수 없지 뭐. 그리고 아까 말했듯이 난‘ 버글버글’한 걸 싫어하는 사람이야. 차리라 잘 됐지, 뭐”

아무래도 할머니가 반어법을 쓰시는 것 같다.

47년 경력의 베테랑‘ 바지락 할머니’.

중마 바지락 할머니

일명‘ 장사의 신’이라고 불리는 이 할머니는 23살 때부터 홍합, 바지락, 꼬막 등을 팔아 생계를 꾸려왔다. 꼬박 47년을 장터 바닥에서 보낸 것.

옥곡장의 살아있는 경력직 장사꾼인 할머니는 사람을 홀리는 재주가 있다‘. 이것 좀 사쇼’라는 말도 없다.

그저 손님이 다가오면 일단 검정봉투부터 꺼내서 조개 바구니를 흔들며 그 소리에 묻혀가게끔 가격을 슬그머니 말한다.

손님들이 살까말까 고민하는 사이에 조개를 봉지 안에 담아 재빠르게 묶는다.

그리고 손님 장바구니에 곧바로 쑤셔 넣는다.

손님들은 어느 순간 가방에 담긴 조개를 보고, 반쯤 얼이 나간 채 돈을 건넨다.

그렇게 할머니는 장사 수완을 올려 오늘도 30만원 넘게 팔았다.

“40년 넘게 이 짓을 했어. 지긋지긋해도 직업이 여것 뿐잉께. 이것이 배운 도둑질이라. 힘들어도 취미 붙여서 하는 거지. 몸 성할 때까지 할 거야. 남의 돈 벌기가 쉬운 줄 아남?”

올해 70살이 된 할머니는 예전처럼 조개 까는 게 쉽지 않다.

하루에 작은 목욕탕 의자에 앉아 수백 개의 조개를 까다보면 손가락 마디마디가 시큰하게 저려온다.

그래도 명절에 만날 자식들을 생각하며 할머니는 오늘도 칼을 잡는다.

“고생고생해도 집에 가서 돈 셀 때는 아~ 기분이 그냥 째지지. 그 맛에 장사하는 거야. 그 돈으로 자식들 먹이고 학교 보내고 이렇게 밥 벌어 먹고 살지 않았는가. 그리고 손자들은 돈을 줘야 할머니 좋다하지 안 그럼 안 오도 안하니까 열심히 벌어야 해”

돈은 자신이 잘 버니 용돈은 됐고, 자식들에게 한 마디 하겠다는 할머니.

“잘 사냐. 건강해라. 돈 많이 벌고. 세금 잘 내고. 그게 인생이여”

할머니는 그 다섯 마디를 끝으로 다시 묵묵히 바지락을 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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