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희 칼럼 ‘사람이 희망이다’ - 김광희 광양보건대학교 교수

언어학자들의 통계에 따르면 오늘 현재 지구상에는 약 7097개의 언어(음성언어)가 공존하고 있다(출처: http://www.ethnologue.com).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수효의 언어가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란다. 이 언어들 가운데 5천만 명 이상의 사람들에 의해 모국어로 사용되는 언어는 총 23가지가 있다. 그 중 으뜸은 중국어(약13억 2백만 명)이고, 그 뒤를 이어 스페인어(약 4억2천만 명), 영어(약 3억 3천9백만 명), 아랍어(약 2억6천7백만 명)의 순이다. 한국어는 전 세계에서 약 7천7백만 명(해외 동포 포함)이 모국어로 사용하는 12번째 규모의 언어이다. 지구상에 현재 사용되는 문자는 몇 가지나 될까?

문자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담고 있는‘ 옴니글라트'라는 사이트(http://www.omniglot.com)에 의하면 약 176개의 문자가 현재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음성언어는 7천여 가지인데 문자가 겨우 176종이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세계 대부분의 언어가 고유한 문자를 갖고 있지 못하거나, 여러 다른 언어들이 같은 문자를 공용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영어나 독일어, 프랑스어 등 대부분의 유럽언어는 모두 라틴문자(로마자)를 사용하고 있는 점을 보아 후자의 경우를 짐작할 수 있다.

문자의 기원을 추적하다보면 세계 각 문자는 이집트의 상형문자, 메소포타미아 수메르인의 쐐기문자, 중국의 갑골문자 등 크게 세 갈래 중 하나로부터 발생해 내려온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세 갈래의 언어들의 원시형태는 모두 상형문자이거나 그림문자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지구상에 현존하는 문자 가운데 특이하게도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떤 과정과 원리를 담아 만들었는지 그 기원과 역사가 명확하게 그것도 문서로 확인되는 언어가 딱 하나 있으니, 바로 한글이다.

한글은 1443년 12월 세종대왕께서 사람의 조음기관의 모양과 움직임을 본떠서 만든 우리 고유의 문자이다. 한글은 창제 당시에는 28자였으나, 4개의 글자가 소실되고 현재는 24자가 사용되고 있다(된소리글자는 제외). 뜻글자인 한자가 도입되어 무려 1,500년 이상 사용되었던 역사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독자적인 원리를 가진 전혀 새로운 체계의 음소문자(소리글자)를 세종께서 고안하셨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였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의 인류의 지성사적으로나 문화사적으로 큰 업적을 이루신 것이다.

한글은 인권 존중의 결정체라 할 만하다.“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그 뜻을 제대로 기록하지 못하는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신” 세종께서는 백성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아무리 어리석은 자라도 열흘만 공부하면 다 배워 쓸 수 있는 쉬운 글자”를 만드셨다.

그 결과 이 땅의 백성들은“ 한문을 한글로 해석해 놓으면 그 뜻을 쉽게 알 수 있게 되었고, 한글로 법률문서를 작성하면 송사의 속사정을 훤히 알 수 있게 되었으며, 노랫가락과도 잘 어울리는 노랫말을 지을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 바람소리, 학이나 닭의 울음소리, 개 짖는 소리까지도 얼마든지 글자로 옮겨 적을 수 있게 되었다. 세종께서 만드신 한글은 사람으로 하여금 사람답게 살도록 길을 여신 것이다. 많은 역사학자들은 오늘날 서구 문명을 이룩한 원동력의 하나로 16세기 종교개혁을 꼽는다. 종교개혁의 핵심은 기독교의 교리와 사도들의 가르침을 라틴어 성경이 아닌 일반 대중들의 언어로 읽고 쓰게 된 데 있다. 루터가 라틴어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여 대중들의 손에 쥐어 줌으로써 중세의 암흑기를 마감하고 새로운 보편적 가치가 물결치는 시민 세상이 열리는 계기를 만든 것이다. 같은 논리로 보면, 한글은 역사와 문화의 전면에 일반 대중의 삶과 사상이 그대로 투영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한자 해득력이 곧 권력으로 이어지던 시대에 일반 대중이 자신들의 글자를 가져, 원하는 대로 읽고 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대중이 역사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길을 연 것과 다르지 않으니 이만한 인권의 발전과 변혁이 어디 또 있겠는가.

한글은 우리 역사를 통틀어 가장 획기적인 발명품이다. 오늘날로 말한다면 한글은 창조경제의 핵심인 셈이다. 창제 이후로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글이 우리에게 끼친 경제적 효과는 상상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IT 한국의 호사는 전적으로 세종께서 만드신 한글에 기대어 이루어진 것이다. 중국사람들과 일본 사람들은 자신들의 문자를 컴퓨터에 입력하기 위해서 대단히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한글 덕분에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훨씬 쉽게 IT친화적인 여건을 누리고 있다. 한글은 컴퓨터와 스마트폰에서 단순하고 경제적이며 효율적으로 처리된다. 첫째는 한글이 소리글자인 까닭에 글자수가 24자로 단순하여 IT기기 문자판에서 별도의 과정이나 노력 없이 얼마든지 입력할 수 있다. 둘째, 엘지전자의 자음 입력시스템이나 삼성전자의 천지인 모음 입력시스템은 대단히 단순하여 사용하기에 쉽고 편리하다.(이 두 기술은 전적으로 훈민정음에서 밝힌 글자 원리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창조경제니 융합이니 하는 오늘날의 경제 화두는 바로‘ 한글’을 통하여 그 실증적이고 구체적 모습을 확인하게 된다. 모두가 세종대왕의 창의적 아이디어에서 비롯된 것이고, 우리 후손들은 단지 그 과실을 거두고 있을 뿐이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문화적, 경제적 부요함의 원천은 한글로부터 비롯되었다. 다시 한글날을 앞두고 한글 창제의 위업과 한글문화와 그 역사를 보면서 민족적 자긍심을 갖게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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