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강현 (사)한국해비타트전남동부지회 사무국장

여당대표의 단식! 이 웃지 못할 해프닝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국정운영의 한축을 담당하고 있는 여당대표가 왜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더욱 가관인 것은 이런 여당대표 주변에 수많은 여당의 중진의원들이 눈물과 함께 하면서 점입가경이 된 것이다. 차가운 국민여론에도 불구하고 마치 죽음을 불사하겠다고 나선 여당대표에게 결의를 모아보내는 여당의 중진들을 보면 고개를 갸우뚱 할 수밖에 없다.

갑자기‘ 집단사고’가 떠오른다.

‘집단사고’란 미국의 어빙 재니스가 만들어낸 개념으로 조직구성원들 사이에 의견일치를 위해 비판적인 생각을 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오직 집단의 목표와 결과만을 중시하고 비윤리적이거나 비합리적인 결정까지도 정당화하게 만드는 집단사고의 전형적인 예는 미국의 피그만 침공사건이다.

피그만 침공사건은 1960년 미국이 쿠바의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시키려 했던 계획이다. 1959년 피델 카스트로에 의해 공산화된 쿠바는 미국을 비롯한 외국자본을 몰수하고 1961년에는 미국과의 외교를 단절한다.

미국의 턱밑에서 이뤄진 쿠바의 공산화를 두고볼 수 없었던 아이젠하워정부는 쿠바인 망명자 1500명을 모아‘ 2506여단’을 조직하고 훈련에 들어간다.

아이젠하워에 이어 대통령이 된 케네디는 이 작전에 의구심을 갖지만 작전을 주도했던 CIA의 호언장담에 따라 1961년 3월 17일 마침내 피그만 침공을 감행한다.

그러나 이 작전은 최악의 작전으로 평가된다. 전략작전의 전문가가 짰다고 보기에는 너무나 어설프고 문제투성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이 배후로 지목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쿠바의 남부에 위치한 피그만을 상륙지점으로 선택한 것도 그러하고 1500명이나 되는 망명인을 모아 훈련하면서 비밀이 유지될 거라 믿은 것도 커다란 착오였다.

이뿐만 아니라 1차 폭격은 쿠바공군에게 큰 타격을 줄 만큼 성공적이었지만 미국이 배후로 지목되는 것을 우려한 나머지 2차 폭격은 포기했고 1차 폭격 후 이틀이나 지난 후에 상륙작전을 감행했다.

그리고 쿠바망명세력이 상륙하기만 하면 쿠바 내에서 반 카스트로 세력이 봉기할 것이라는 미국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카스트로는 전 정권인 바티스타 정권보다 훨씬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었고 쿠바 내 반공산화세력은 이미 상당부분 숙청된 상태였다. 망설이다 다시 시작한 2차 폭격은 쿠바공군에게 막혔고 결국 1500명의 2506여단 중 118명이 사살되고 1,189명이 쿠바군에 포로로 잡히면서 이 어처구니 없는 침공계획은 막을 내린다.

결과적으로 카스트로 정권은 피그만 침공 작전을 기회로 삼아 반대파를 일소하고 정권의 안정을 기할 수 있게 된다. 카스트로는 케네디에게“ 당신의 상륙작전으로 우리의 혁명이 굳건해져서 고맙다”는 전문을 보내 조롱한다.

피그만 침공 작전은 애초부터 실패가 예견됐다.

당시 작전결정에 참여한 딘 러스크국무장관, 로버트 맥나마라 국방장관, 맥조지 번디 안보보좌관, 앨런 덜레스 CIA국장 등은 모두 친구사이였고 성장 배경도 비슷할 뿐만 아니라 대부분이 하버드대 출신이었다. 덕분에 작전회의는 항상 쉽게 이뤄지고 결정이 났다.

실패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집단사고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어있었던 것이다.

당대의 지성인들이었고 수차례의 전략회의가 열렸지만 누구도 다른 생각과 변수들을 보려하지 않았기에 이토록 어리석은 계획이 실행이 옮겨졌던 것이다. 케네디대통령 조차도 후에“ 내가 이렇게 어리석을 수 있었단 말인가”라고 땅을 치며 후회했던 일이 당시에는 너무나도 명백한 성공을 가져올 거라 확신되었던 것이다.

피그만 사건의 교훈은 자명하다.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려면 집단사고의 함정에 빠져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집단사고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다양한 배경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해야한다는 것이고 군사적 일사분란함을 요구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촌놈’과‘ 무수저’를 자처하던 여당대표의 뇌리 속에 깊게 박힌 것은 오늘을 있게 해준‘ 박대통령’에 대한 절대충성이었던가 보다. 그를 국회의원으로 만들어준 순천시민과 여당대표로 만들어준 국민에 대한 충성은 실종되고 없는 듯 보인다. 그런 그가 시작한 단식,‘ 나는 죽을 것이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일주일만에 접은 단식!

정세균 국회의장이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해임건의안을 처리했기에 이를‘ 날치기’로 규정하면서 시작한 단식! 그런 그에게 눈물겨운 응원과 동참을 나타냈던 의원님들!

그러나 그의 단식행위가 여당대표로서의 선택이 아닌 박근혜의 남자로서의 선택이었다고 믿는 것은 일부 철없는 이들의 오판일까.

여당대표를 비롯한 여당의 책임있는 의원들이 보여준 행동 또한 여당의 대표도 국회의원도 아니다.

그저 대통령 경호원들과도 같은 뚜렷한 책임의식을 보여준 것이다. 내가 지켜야할 대통령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 서슴지 않을 것이며 이는 곧 나라를 지키는 것이라 믿는 집단사고에 빠진 사람들!

그의 단식으로‘ 최순실’은 잠시 사라질 수 있었다. 유명우도 한숨 돌릴 여유가 생겼다. 김재수장관 해임건의안을 거부했던 박대통령도, 성주골프장에 사드배치를 확정 발표한 국방부도, 백남기농민 부검영장 재청구도, 세월포 특조위 활동종료도, 그렇게 조용하게 잊혀져 갔다. 그렇게 국감을 통해 무력화 된 것은 단순한 민생문제만은 아니다.

여당대표는 마치 장판교를 가로막고 선 장비 같아 보인다.

그러나 눈가리고 아웅한다고 진실이 묻힐까?

피그만 침공의 배후가 미국이 아니라고 믿은 것은 미국뿐이었다.

여당대표의 단식이‘ 미래 대통령을 꿈꾸는 국회 의장의 비열한 술수’에 대응키 위한 절대절명의 선택이라고 믿는 것 또한 그들뿐이 아닐까?

저작권자 © 광양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