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칼럼-김용권 인문학강사

바야흐로 기부의 계절이 멀지 않았다. 찬바람이 불고 한 해의 끝이 다가오면 정치인이나 기업가를 포함해 사회 유명 인사들의 발걸음이 고아원으로 양로원으로 각종 보호시설로 향한다. 저마다 평소에 못 다한‘ 사랑’을 한 해가 가기 전에 실천이라도 하려는 듯 쌀이나 라면 같은 생필품을 가득 안고서 말이다. 아마 올 해도 예외는 아닐 성 싶다.

그런데 한 가지 눈에 띄는 사실은 이들 대부분이 조용히 선행을 베풀고 소리 없이 돌아오기 보다는 저마다 떠들썩하게 이러저런 기념사진을 찍어 올리고 동영상을 촬영하느라 여념이 없다는 점이다.

심한 경우에는 이웃사랑을 실천하러 온 것인지, 아니면 자기 자신을 홍보하고 피알하러 온 것인지, 그 의도 자체를 의심케 만들 지경이다.

애당초 도움 받는 사람들의 입장이나 아픔에 대한 배려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는 듯 보이고, 단지 세상이 나의 이‘ 아름다운’ 행동을 몰라주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으로 가득하다.

우리 모두 사회 속에 살아가기에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남들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이야 왜 없겠는가? 그리고 자신의 행동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대견하고 훌륭할 때 그것을 뿌듯하게 여기고 자랑하고 싶은 것이야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하지만 진짜 아름다워지려면 거기서 멈출 수도 있어야 한다.

《장자(莊子)》산목(山木)편에 이런 이야기가 전한다.

양자가 송나라에 가서 한 여관에 묵었다. 여관 주인에겐 첩이 둘 있었는데 하나는 미녀였고, 다른 하나는 미색이 그만 못했다. 그런데 정작 귀여움을 받는 쪽은 미녀가 아니라 추녀였다. 이상하게 여긴 양자가 그 까닭을 물었더니 여관 주인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미녀는 스스로 아름답다 여기며 뽐내기에 도리어 아름다운 줄 모르겠고, 추녀는 스스로를 아름답다 여기지 않기에 도리어 아름답게 보입니다.”

그 말을 듣고 양자가 제자들에게 이같이 말했다.

“모두들 명심하여라. 어진 행동을 하면서도 스스로 어진 행동을 하고 있다고 내세우지 않으면, 어디에 간들 사랑받지 않겠느냐?”

스스로 아름답다 여기고 자신을 드러내려는 것들은 도리어 아름답지 않다. 최고의 덕은 자신을 뽐내지 않는 것이다. 태산 같은 미덕도 한 순간 자랑에서 무너져 내린다. 세상을 향해 알리면 알릴수록 빛이 바라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자신의 미덕(美德)이다! 소리 없이 숨기고 감출 때 미덕은 오히려 빛을 발한다.

그래서일까?《성경》에도 다음과 같은 언급이있다.

“여러분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움을 행하지 않도록 조심하시오. 그렇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여러분의 아버지에게 보수를 받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자선을 베풀 때에는, 위선자들이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골목에서 하듯이 당신 앞에다 대고 나발을 불지 마시오.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하거니와, …… 당신이 자선을 베풀 때에는 당신의 오른손이 무엇을 하는지 당신의 왼손이 모르게 하시오. 그리하여 당신의 자선이 숨겨 있게 하시오. 그러면 숨겨진 일을 보시는 당신의 아버지께서 당신에게 다 갚아 주실 것입니다.”

선행(善行)은 선행 그 자체가 목적이었으면 좋겠다. 다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 혹은 자기만족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지 않기를 바란다.

만일 그런 선행이라면 결코 요란하고 떠들썩할리 없다. 오히려 남이 알까 전전긍긍해 하고 쉬쉬할 것이다.

소리 없이 다녀오고 조용히 물러나올 일이다. 적어도 올 해 만이라도 조용히 찾아가서‘ 성의’만 살짝 놓고 사진은 찍지 말고 돌아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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