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희 광양보건대학교 교수

벌써 2017학년도 대학 입학 수시모집 지원이 마무리되었고, 수능시험도 불과 2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수험생과 학부모는 대학을 선택하고 수능과 다양한 대입 전형을 준비하느라 가슴 졸인 나날을 보내게 된다. 우리 사회에는 대학의 선택이 곧 인생 성패의 갈림길이 된다고 보는 생각이 여전히 많다. 예전에 비하면 요즘의 대학 선택풍속도는 많이 변한 것이 사실이다. 과거 사회적 명성을 기준으로 대학과 학과를 선택하던 데에서 벗어나 자신의 재능과 장래 가능성을 따져가면서 실용적 선택을 하는 학생과 학부모가 크게 늘었다.

본디 일반 4년제 대학의 존립 목적은 학문 연구에 있다.‘ 학문 연구’가 너무나도 고색창연한 말이어서 우리 시대에 더 이상 통하지 않는 말 같지만 어쩔 수 없는 진리이다. 인간 존재에 대해 깊이 사색하고 탐구하며, 원리와 법칙을 찾아 사회와 자연의 움직임을 설명하고, 나아갈 바를 미리 내다보고 준비하는 일들이 학문의 세계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결실을 전수하는 곳이 또한 대학 강단이다.

이 때문에 철학을 비롯한 인문학이 형성되었고, 자연과학이 탄생하였다. 여기서 얻어진 원리를 우리의 삶에 실제 적용하는 과정에서 기술과 응용과학이 생겨났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대학의 일반적인 발전 경로를 따라 대학교육이 확대되어 왔다. 특히 학문의 성과를 사회에 옮겨 심고, 산업화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많은 전문 인력의 수요가 발생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1979년 일반대학과 역할을 달리하는 고등교육 기관으로서 전문대학이 출범하였다. 전문적인 기능을 익히고 기술을 배워 실용적 영역에서 평생의 직업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탄생된 대학이 바로 전문대학이다. 그동안 전문대학은 우리 사회와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고등직업교육의 해답을 제시해 왔으며, 전문대학에서 배출된 전문 인력들은 우리나라의 산업화를 견인해 왔다.

전문대학에서 인생을 설계하는 젊은이들을 가리켜 오히려 지혜로운 학생들이라 평가하는 시대가 되었다. 일반대학을 졸업하고 뒤늦게 전문대학에 다시 입학하는 이른바‘ 유턴학생’들도 그 수효가 급증했다. 전문대학이 이처럼 선호되는 데에는 실무에 곧바로 적용할 수 있는 실용적 기능을 가르치는 독특한 교육과정과 실습 위주의 교육 방법 그리고 기능 인력을 선호하는 일선 기업체에서의 인력 수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여기에 더하여 정부의 지속적인 전문대학 육성 정책 또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학벌이 아닌 능력중심사회로의 전환을 국정의 목표로 내걸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전문 인재 양성을 위한 직업교육 강화와 전문대학을 고등직업교육 중심기관으로 육성하는 것을 국정과제로 제시하고 이를 착실히 추진해 왔다.

전문대학을 졸업하면 학생들은 자기 분야의 자격증을 몇 개씩 얻게 된다. 일종의 취업 티켓인 셈이다. 그런데 전문대학에는 직업상 독점적 지위를 부여하는 면허(자격이 아니라)를 국가로부터 받게 되는 전공학과들도 있다. 간호과, 치위생과, 임상병리과, 방사선과, 작업치료과, 치기공과, 안경광학과,응급구조과, 물리치료과 등이 그러하다. 이 학과에서 공부하면 의료인 면허를 갖게 되고, 의료계에서 의료인으로 독점적인 지위를 누리며 종사할 수 있다. 취업을 원한다고 해서 누구에게나 길이 열려 있는 일터가 아니라는 점에서 독점적이라 말할 수 있다. 독특한 이들 학과는 전문대학 교육의 꽃이다. 전남에서는 유일하게 우리 시에 있는 광양보건대학교만이 이 9개 분야의 학과들을 모두 개설하고 있다.

특성화된 대학이라는 명성과 취업 명문대학이라는 사회적 평가는 이유 없이 얻어진 것이 아니다.

실사구시의 철학자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선생은 그의 자녀들에게도 실용성을 갖춘 현장적 지식경영을 힘주어 가르쳤다.‘ 공리공론(空理空論)이 아닌 강구실용(講究實用)’을 강조하였으니, 세상에서 실질적인 쓰임을 갖지 못하는 공부, 공부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공부보다는 실제에 유용한 공부를 하라고 자녀들을 훈육하였다. 학문은 세상과 분리된 채, 말하자면‘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의 경지를 지향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이다.

쓸모를 생각하는 태도로부터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는 다산의 주장은 오늘날 대학 진학을 앞에 두고 갈 길을 망설이는 학생들에게 좋은 지표가 된다.

끝으로 최근 지역대학에 큰 관심을 갖고 광양보건대학교의 홀로서기 노력에 응원을 보내주는 많은 시민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들 중에는 인재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부모와 학교와 사회가 함께 만든다는 사실에 공감할 분이 많을 것이다. 대학을 지키고 키우는 데에도 자식을 기르는 부모의 정성처럼 지역사회의 따뜻한 관심과 배려가 더욱 절실하다. 학생들에게 대학이 인생의 희망이 되는 것처럼, 인재를 기르는 대학에게는 지자체와 지역민의 애정과 관심이 자양분이요 희망이다. 대학 입시철을 맞아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대학이 모두 이 사회적 온기 속에서 새로운 변화의 전기를 만들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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