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은 ‘눈’을 즐겁게 하고, 향기는 ‘코’를 감미롭게 하며, 한모금의 차는 ‘혀’를 황홀케 한다

▲ “꽃차를 마시면 내 자신이 화려해진다”-김선애 꽃차 소믈리에

여자라면 누구나 꽃을 다 좋아할 것 같지만, 의외로 아닌 사람도 있다. 꽃이 시들어가는 것을 찬찬히 보고 있자면 마음이 시리다. 왜 항상 꽃은 초라하게 생을 마감하는가. 꼭 우리네 인생처럼 말이다. 그 안타까운 마음을 붙잡고자 ‘꽃차 소믈리에’ 김선애 씨는 꽃을 말리기 시작했다. 사계절 내내 고운 꽃을 보고 싶었기 때문.

그렇게 하나하나 모으다 보니 집안에는 200종이 넘는 꽃들로 넘쳐났다. 이제 더 이상 햇볕에 오그라드는 꽃의 몰락을 보지 않아도 됐다. 그의 꽃잎은 따뜻한 물을 부으면 생명을 다시 얻은 듯 활짝 피어났다. 꽃물이 우러난 차를 한 모금 마시자 지나간 봄의 향기가 물큰 올라왔다.

정신없는 세상, 꽃차 한 잔으로 숨 고르기

꽃차 소믈리에 김선애 씨의 하루는 바쁘다. 먼저 재료 수집을 위해 들판을 거닐어야 한다. 길가에 핀 꽃들이 모두 향기로운 먹거리다.

▲ 하동에서 뜯어온 황국

쌀쌀한 가을철, 김선애 씨가 선택한 꽃은 바로 황국. 하동까지 찾아가 향이 깊은 황국을 한 아름 따왔다. 그 소식을 듣고 수강생들이 모였다. 꽃차의 매력에 빠진 이들은 매주 1회씩 김선애 씨의 집에 모여 차 만드는 법을 배우고 있다. 황국이 방바닥에 어지러이 쏟아지고 진한 국화향이 거실 구석구석을 채웠다.

“예로부터 중국에서는 국화를 약용으로 널리 사용해 왔어요. 노란 국화인‘ 황국’은 특히 두통에 좋죠. 머리가 무거울 때 말린 국화를 뜨거운 물에 우려 마셔보세요. 향기에 취하고, 뜨거운 찻물이 속을 데우며 어지러운 마음을 가라앉혀 줄 거예요”

김선애 씨는 수강생들이 국화 줄기를 따는 동안, 전날 우려 놨던 대추 우린 물을 가지고 다. 널따란 팬에 그 물을 쏟고 채반을 얹어 생국화를 고루 펼쳐놓는다. 수증기를 이용해 정제를 하는 것이다. 황국은 약간의 독성이 있기 때문에 수고가 가더라도 맹물대신 꼭 대추 삶은 물을 이용한다. 꽃을 찌는 동안, 수강생들은 지난번에 만든 꾸지뽕 차를 꺼내 놓았다.

“꽃차는 하루 만에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녜요. 들에서 꽃잎을 뜯고, 정제하고, 말리고, 덖고…정성을 깃들인 만큼 차가 우러나오죠. 참 정직해요. 이것도 보세요. 네 명이 똑같은 꾸지뽕으로 차를 만들었지만 색이 다 다르죠. 누군가는 덖을 때 텔레비전을 보거나 다른 생각에 빠져있었다는 증거겠죠. 정말 잘 만든 차라면, 물감 떨어지듯 스르르 색이 나와야 해요”

김선애 씨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조심히 주워 담는 수강생들. 그들은 꽃차에 빠진 지 벌써 반년이 흘렀다. 집에서 독학을 하다가 김선애 선생님을 만나 본격적으로 배움의 길에 들어섰다. 왜 그렇게 꽃차가 좋으냐 물으니, 꽃잎을 주물거리다가 이내 말을 연다.

“몸에도 좋고, 색도 좋고… 무엇보다 꽃을 보면 마음을 뺏겨요. 여자라서 그런가. 또 자기 손으로 채취하고 덖어서 가족들 먹이는 것도 하나의 보람이죠. 제일 좋은 점은 꽃차를 마신 뒤로 얼굴에서 광이 난다는 거예요. 수분을 많이 섭취하니 피부도 촉촉해지고 깨끗해졌어요. 제 이웃은 혈압까지 뚝 떨어졌다고 하더군요. 아무튼 좋아요, 그냥”

▲ 각자 만든 꾸지뽕 차를 비교해 보는‘ 향긋한 수업’

잠시 수다를 떠는 동안 황국이 정제를 마쳤다. 김선애씨와 수강생들은 넓적한 나무 채반을 가져와 쪄진 황국을 동그랗게 말았다. 이렇게 단단히 말면, 꽃차를 우렸을 때 모양도 보기좋다. 그러고 나서 창을 열고 가을바람 아래에 황국을 가져다 놓았다. 한 잔의 차를 맛보기 위해선 기다림, 또 기다림이다.

광양에 꽃차 향이 퍼지는 날이 오길…

김선애 씨는 처음에는 귀동냥으로 꽃차를 만들다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 3년 전 꽃차 소믈리에 자격증을 땄다‘. 꽃차 소믈리에’는 꽃차의 재료가 되는 식물의 특성과 제다법을 익히고 꽃차의 색과 향과 맛을 분별 및 평가하는 전문가다.

“무엇보다 내가 확실히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야 스스로 자신감도 생기고 다른 이들에게 자신 있게 권할 수 있을 테니까요. 저는 광양에 꽃차가 널리 보급됐으면 좋겠어요. 그 마음에 공방도 열었지만 안타깝게도 지난 6월에 문을 닫아야 했죠. 지금은 각종 행사에 꽃차 시음회 봉사를 다니며 홍보를 하고 있어요”

김선애 씨는 광양의 꽃차 보급화를 위해 시중보다 저렴한 가격에 꽃차를 판매하고 있다. 같은 취지로 시작한 꽃차 수업도 누구나 원한다면 참여할 수 있게 했다.

▲ 이토록 황홀한 찜이라니!

“앞으로의 꿈이 있다면 꽃차 카페를 여는 거예요. 카페 찬장에는 사계절 내내 울긋불긋한 꽃들이 진열되고 사람들은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향기에 흠뻑 빠지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계속 봉사도 하고 이곳저곳 시음회도 하다보면 언젠가 꽃차의 매력을 알아주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잘 말려진 꽃잎은‘ 눈’을 즐겁게 하고, 지나간 계절을 상기시키는 향기는‘ 코’를 감미롭게 하며, 꽃을 먹는 듯한 한모금의 차는‘ 혀’를 황홀케 한다. 차 한 잔으로 맛보는 세 가지 즐거움, 그리고 그 안에서 피어나는 깊은 여유. 오늘 국화 꽃잎 하나를 찻잔 속에 띄워보는 것은 어떨까. 찬바람에 얼어버린 당신의 마음을 그윽하게 다독여 줄 것이다.

_‘꽃뜨락’ 김선애
_ 교육 및 꽃차 판매 문의 : 010-8871-6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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