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읍 세풍리 세승마을 성훈이네 집. 빈 엄마의 자리, 거기에다 투병 중인 아빠의 빈자리까지...성훈이네 가족은 유난히 흐린 기억들이 많습니다. 이제 스무 살이 된 큰 누나와 올해 고등학교 3학년에 진학하는 작은 누나, 그리고 이제 초등학교 6학년에 진학하는 성훈이까지, 사실상 성훈이네 가족은 그렇게 세 남매가 전붑니다.

아빠는 오래 전부터 찾아온 병환으로 광주광역시의 한 요양원에서 생활한 지 오래 됐고, 엄마는 큰 누나 김지영 씨가 5학년이던 시절부터 곁에 없었습니다. 모든 살림은 지난해 고등학교를 졸업한 큰 누나 지영 씨의 몫입니다. 이곳저곳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림을 꾸리고 동생들의 교육비를 돕습니다.

지영 씨는 엄마가 떠난 뒤 줄곧 동생들을 뒷바라지 하며 엄마로, 누나로 살았습니다. 풍족하지는 않지만 국가에서 지급되는 생계비 지원, 그 마저도 아빠의 병원비로 쌀가마니 세듯 빠져나갔지만 그래도 동생들의 엄마로 사는 일을 마다할 생각이 없습니다. 동생들이 그렇듯 지영 씨에게도 동생들이 유일한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동생들이 곁에 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지영 씨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콩 한 조각을 나눠 먹어도 서로 의지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버팀목이 되는지 모릅니다.

몇 해 전부터 이들 세 남매에게 따스한 손길을 내밀어 준 사람들도 있습니다. 동생들의 학용품과 생활비를 보태주고 새 모이 주는 것처럼 꼭 필요한 반찬도 날라다 줍니다. 그 모습을 가만 그려보자니 살풋 웃음이 납니다.

고마운 것은 무엇보다 생색내지 않는 분들입니다. 어쩌다 한 번 찾아와 반짝 도움을 주고 기념사진 찍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럴 때면 속이 좀 상합니다. 동생들도 상처를 받는 것 같습니다. 이제 다들 사춘기를 겪고 도움을 받는다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는 나이가 왜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이분들은 좀 다릅니다. 모두들 그리 풍족하지 않지만 제 가진 것을 남에게 조금씩 양보하는 것입니다. 같이 사는 길을 가는 분들입니다. 아르바이트 자리도 알아봐 주고 함께 꿈도 이야기 합니다. 동생들도 이분들이 찾아오면 금새 얼굴이 환해집니다.

그래서 “왜 우리만 이렇게 힘들까?”하는 생각에 차갑게 얼어붙어 좀처럼 풀리지 않던 마음이 조금은 풀리는 느낌입니다. 무엇보다 ‘세상에 우리 세 남매만 남겨졌구나’하는 서럽고 외로운 마음도 차츰차츰 옅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외로움은 어떤 고통보다 세 남매를 힘들게 했지만 세상은 그리 차갑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따스한 손길로 넘어지면 일어나도록 손 내미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동네 분들도 매번 관심과 사랑을 주십니다.

세 남매가 사는 집은 곧 허물어질 지경입니다. 오래된 마루가 있는 옛날 집인데 방이 두 칸이지만 기름 값이 무서워 세 남매 모두 한 곳에서만 생활합니다. 그 마저도 여기저기 금이 가 불안합니다. 부엌도 낡아 불편하기가 여간하지 않습니다. 화장실은 더 합니다. 겨울인데도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아 찬물에 얼굴을 씻으면 금방이라도 얼음이 얼 것 같습니다.

그런 탓인지 지영 씨는 물론 동생들도 비염을 달고 삽니다. 특히 지영 씨는 어릴 때 축농증을 앓아 호흡하기에도 곤란을 겪을 지경입니다. 그러나 자신보다 감기를 달고 사는 동생들을 보면 가슴이 아픕니다. 그래서 집을 고쳐야 하지만 그건 엄두도 못 낼 일입니다. 그래서 또 동생들에게 미안해집니다.

지영 씨가 어서 취직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지영 씨는 공무원이 되고 싶습니다. 어느 직업보다 안정적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기웁니다. 그래서 아르바이트를 뛰는 와중에도 틈틈이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공무원이 되면 돈을 모아 동생들에게 따뜻한 집을 선물해 주고 싶습니다. 그런 날이 올까요? 오래 걸리겠지만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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