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칼럼 - 김용권 인문학강사

최근 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막을 내렸다. 대다수 주류 언론의 예측을 깨고 공화당의 트럼프 후보가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꺾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예상치 못한 결과에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채 앞으로 전개될 트럼프 당선인의 정책을 놓고 저마다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그런데 지난 선거 과정을 돌이켜보면 무척 흥미로운 현상이 하나 눈에 띈다.

어느 여론조사 기관이 미국 유권자들에게“ 미국의 차기 대통령은 누가 되었으면 좋겠는가?”라고 물었더니,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힐러리도 트럼프도 아닌 오바마 현직 대통령을 선택한 것이다.

미국인들이‘ 미국의 대통령은 한 번 이상은 연임할 수 없다’고 하는 자신들의 헌법규정을 모를 리가 있겠는가.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의 두 번째 임기를 거의 끝마치고 퇴임을 앞두고 있는 현직 대통령을 엄연히 선택했다. 왜 그랬을까? 그건 아마도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8년간 보여준 국가 최고 리더로서의 뛰어난 소통능력과 공감의 리더십에 대한 지지와 찬사의 표현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혹자는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는 힐러리의 선거도 트럼프의 선거도 아닌 단지‘ 오바마의 선거’였다고 말하는 지도 모르겠다.

반면 지금 우리는 어떠한가?‘ 박근혜 게이트다’, ‘최순실 게이트다’ 하며 언론은 연일 특종보도를 쏟아내고, 사회 각계각층에서는 대통령 퇴진의 목소리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심지어는 학업에 전념해야 할 중고등학생들까지 시국선언과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20대의 대통령 지지율은 0%란다. 이쯤 되면 대통령은 자신의 퇴진 여부와 상관없이 이미 이름뿐인 대통령, 식물 대통령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국가의 총체적 난국이며 리더십의 붕괴이다. 참담하기 그지없다.

어찌하여 이렇게 대비되는 결과가 초래된 것일까? 한쪽은 물러가는 순간에도 여전히 국민들의 사랑과 지지를 받고, 또 다른 한쪽은 임기가 아직 많이 남았음에도 물러난 것이나 다를 바 없는 지경에처한 것일까?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필자가 보기에 그 결정적 차이는 국민에 대한 권력의 태도에 있다고 생각된다. 한쪽은 모든 권력의 주인은 국민임을 알았기에 끊임없이 국민의 목소리를 청취하고 그들과 소통하고자 노력했고, 또 다른 한쪽은 자신이 마치 나라의 주인인 양 착각하고 국민위에 군림하며 소통을 거부했던 것이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분명히 알았다. 자신이 아무리 큰 권력을 가졌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국민들로부터 위임받은 한시적인 권력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리고 미국민들 가운데는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만큼이나 자신의 반대자들도 많다는 것을. 그래서 그는 대통령에 취임한 후 줄곧 국민들과 어떻게든 소통하며 특히 반대자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 때문일까?

오죽했으면 오바마 대통령이 재임 기간 중 한 일이라곤 야당인 공화당 의원들과 매일 전화하고 골프친 것이 전부라는 우스개 아닌 우스개 소리가 전해져 오니 말이다.

그런데 우리 대통령은 오후 6시가 되어 관저로 들어가면 거의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고 하니 어떻게 올바른 세상의 소리를 듣고 소통할 수 있었겠는가. 더구나 자신에게 반대하고 비판하는 사람들은 예외 없이 이른바‘ 배신의 정치’, 혹은‘ 국정 발목잡기’ 세력으로 낙인찍고, 오로지 자신의‘ 오장육부’나‘ 가족’처럼 여기는 사람들과만 비밀스럽게 내왕하며‘ 내가 곧 선(善)’이란 식의 마이웨이만을 외쳐댔으니 어찌 국민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겠는가.

한마디로 오만과 독선과 불통의 정치였다. 이점이 바로 작금의 사태를 초래한 근본적 원인일 것이다.

예부터‘ 민심은 천심’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비록 왕정 국가나 절대군주 시대에서조차 권력은 늘 민심의 향배에 귀 기울여왔다. 민심을 거스르고서 온존한 권력은 없었기 때문이다. 하물며 권력의 서슬이 시퍼렇던 과거에도 그러했거늘 이미 상당한 민주주의의 경험을 축적한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이제 국민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민심에 역행하는 그 어떤 권력이나 리더십도 더 이상 용납되긴 어려워 보인다.

최고 권력과 민심의 관계를《 정관정요(貞觀政要)》는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군주는 배, 민심은 물!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배를 뒤엎기도 한다.”

한없이 잔잔하기만 할 것 같던 민심의 바다가 요동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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