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칼럼 - 김용권 인문학강사

지금으로부터 약 2천 3백여 년 전 중국 진(秦) 나라의 수도 함양성에서는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남쪽 성문에 포고문이 한 장 나붙었는데,“ 남문 앞에 세워둔 3장 높이의 나무기둥을 북문으로 옮겨놓으면 십 금(金)의 포상금을 내리겠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저 삼삼오오 모여 이구동성으로 터무니없는 일이라며 쑤군댈 뿐 선뜻 앞으로 나서는 이가 없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다시 이런 포고문이 붙었다“. 나무기둥을 북문으로 옮기는 자에게는 오십 금(金)을 내리겠다.”

이번에도 사람들은 그 포고문의 내용을 믿지 않았다. 그런데 지나가던 어떤 사람이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으로 나무기둥을 북문으로 옮겨 놓았다. 그랬더니 정말로 정부가 오십 금(金)의 포상금을 내렸다. 이로부터 진(秦) 나라에는 정부나 국가 지도자의 말을 의심하는 자가 없게 되었다. 그 유명한 상앙(商央)의‘ 남문사목(南門徙木)’의 일화이다.

당시 사회 전반을 개혁해 천하의 패자(覇者)가 되고자 했던 진(秦) 나라는 혁신개혁(變法)가 상앙을 기용해 여러 개혁 정책들을 마련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 정책들의 시행에 앞서 한 가지 고민거리가 있었다. 다름 아닌‘ 앞으로는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라는 정부의 약속을 과연 국민들이 얼마나 믿고 따르겠는가 하는 점이었다. 정부가 아무리 목소리 높여 외쳐도 국민들이 정부의 말을 믿지 않으면, 정책이 잘 시행될 리 없었기 때문이다.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던 상앙으로서는‘ 정부는 결코 거짓말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국민들의 뇌리에 반드시 각인시킬 필요가 있었고, 그 때문에 ‘남문사목’의 퍼포먼스까지 펼쳐보였던 것이다.

오늘날 상앙의 그런 행위가 너무 기획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으나 적어도 국민(구성원)들의 믿음과 신뢰가 정치(국가운영)의 근간임에 대해서만큼은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국가(공동체)의 운영에 있어 국민들의 신뢰와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 하나를 더 소개해 보자《. 논어》에 나오는 구절이다.

하루는 자공(子貢)이 선생님인 공자(孔子)에게 정치(국가운영)는 어떻게 하는 것이냐고 여쭈었다. 그랬더니 공자가 말했다.

“먹을 것이 풍족해야하고(足食), 군대가 충분해야 하며(足兵), 국민들의 신뢰가 있어야(民信之) 하느니라.”

그러자 자공이 다시 여쭈었다.“ 셋 가운데 어쩔 수 없이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무엇을 먼저 버리시겠습니까?”

그러자 공자가 말했다.“ 군대를 버리겠다.” 자공이 또 여쭈었다.“ 남은 둘 가운데 어쩔 수 없이 하나를 더 버려야 한다면, 이번엔 무엇을 버리시겠습니까?”

공자가 힘주어 말했다.“ 차라리 나는 먹을 것을 버리겠다. 자고로 죽음이야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일이지만, 국민이 (정부를, 지도자를) 믿지 않는다면 정치는 애당초 성립조차 하지 않기(民無信不立) 때문이다.”

지도자는 국민들이 믿어줄 때 비로소 지도자인 것이다. 가장 기본적인 신뢰관계가 무너지고 나면 백약이 무효하다! 작금의 사태가 그러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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