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준의 별 이야기_ 59

조선시대의 유명한 화가 신윤복(1758년~1814년)을 아시나요? 신윤복은 김홍도,김득신, 장승업과 함께 조선4대화가로 손꼽히는 인물이며, 조선 후기 영조, 정조 시절의 화가인데, 특히 산수화와 풍속화를 잘 그렸습니다. 주요 작품으로는‘ 미인도’가 있는데, 주로 남녀간의 사랑이나 여성의 아름다움을 주제로 많이 삼았고, 화려한 색을 많이 사용한 최초의 화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작품 중에는 천문인의 관심을 끄는‘ 월하정인'이 있습니다. 어둑어둑한 달밤에 남녀가 사람의 눈을 피해 몰래 담벼락 밑에서 만나는 장면을 묘사한 작품인데, 보는 이로하여금 두 사람이 잘 되면 좋겠다는 마음이 절로 솟아나게 합니다.

이 작품에서 저의 관심을 끄는 부분은 달의 모습 입니다. 달의 모습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추론이 가능합니다.

1) 음력 초순에 뜨는 초승달이나 그믐 가까이에 뜨는 그믐달은 아래쪽이 볼록한 모습인데, 그림 속의 달은 위쪽이 볼록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월식이 있을 때에만가능한 모양새입니다. 개기월식엔 달이 지구 그림자에 완전히 가려져 안보이지만, 부분월식일때는 그림처럼 윗부분만 볼록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2)그림 속의 글에서‘ 심심야3경’이라고 시각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자정이라는 뜻인데, 자정에 달이 집의 처마 위치로 낮게 떠있는 것은 여름철을 의미합니다. 태양은 여름철에 고도가 가장 높지만, 달은 반대로 여름철에 고도가 가장 낮습니다.

이상을 종합해보면 신윤복이 활동하던 시기, 한 여름에 부분월식이 있던 날 밤의 모습을 그린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천문소프트웨어를 이용해 그 시기에 부분월식이 있었던 날을 조사해보면 1784년 8월 30일과 1793년 8월 21일 둘 중의 하나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1784년 당일엔 비가 와서 달이 보이질 않았을 것이므로, 이 그림은 1793년 8월 21일 밤을 그린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신윤복은 36세 였습니다.

신윤복은 그림 속의 작은 달이지만 대충 적당히 그려 넣지 않았습니다. 실제 있었던 모양은 물론 위치까지 세심하게 관측해 사실을 그려 넣었습니다.

그랬기에 22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그 그림이 그려진 정확한 날짜를 알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무엇이든 과정은 적당히, 결과만 중요시하는 요즘 세태에 우리 모두 많이 본 받아야 할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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