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포 앞바다에서 지내온 ‘빛바랜 삶’의 시간들

광양시에는 280여개의 마을이 있으며, 각 마을 마다 고유의 특성과 수려한 자연경관을 갖고 있다. 시민신문은‘ 이장님 막걸리 한 잔 하시죠!’를 기획해 직접 지역내 마을을 찾아다니며각 마을의 이장님을 만나 뵙고 생생한 마을의 소식과 각 마을의 보석 같은 숨겨진 이야기,아쉽게 잊혀져가고 있는 이야기, 골목과 토담을 넘어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을 담아내며 기록한다. <편집자 주> 막걸리 협찬: 광양주조공사

▲ 골약동 평촌마을 김종옥 통장

“독(돌)을 들어 내믄 구멍이 숭숭 나있는디, 그 구멍 따라 손을 요러크름 넣어서 쭉 훑어블믄 낙지 몇 마리가 그냥 손에 드러앵겨(들러붙어). 몇 번 그리 하다보믄 바께스(양동이)로 한가득이라~”

낙지는‘ 먹는 것보다 잡는 맛’이라며 평촌마을 주민들은, 과거 컨테이너부두가 들어서기 이전 하포앞바다에서 지내온 삶의 시간들을 풀어냈다.

주민 한사람은“ 옛날에 하포 참고막이 맛있기로 유명했어. 다른 지역에서도 많이 가져갔는데, 어디고막뿐이겠는가, 새조개, 게, 낙지 등 풍부한 수산물이 가득했어”라며 “참 그 시절이 좋았어. 바다 나가 몇 시간 일해서 나가서 팔고, 그 돈으로 먹고 살았지. 애들도 키워내고. 주민들끼리 같이 여행도 가고, 지금은 소득도 없고, 늙은 사람들만 남았어”라고 말했다.

평촌마을에서 나고 자란 김종옥 통장(78)은 주민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더니“ 참 많이 변했지. 또 앞으로도 변하겠지”라며 막걸리 한잔을 들이켰다.

마을에는 현재 23가구, 40여명이 살고 있다. 지은 지 오래된 마을회관은 작지만 정겹다. 마을은 오는 3월‘ 민영개발위원 조합장’을 선출해 개발을 위한 준비단계를 거칠 예정이다.

김 통장은“ 사실 언제가 될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마을이 개발에 들어갈 예정이라 길 뿐만 아니라 마을회관, 여러모로 시설들이 낙후돼 불편함이 있지만 그것을 감내하고 살아가고 있는 실정이야”라고 말했다.

이어 주민 한 사람은“ 여기서 나고 자랐는데, 저 사람들은 시집와서 여그를 고향처럼 여기고 살았는디, 다들 서운키야 서운허지. 근디어쩌겄는가. 개발이 시작되면 공사할 동안은 흩어져 살아도 또 다시 모여서 살 수 있으면 그리허면 참말로 좋겄는디. 그것도 우리 맴 먹은 대로 되는 것이 아니니까”라고 아쉬움을 표현했다.

또 다른 주민은“ 개발이 되야지 되는갑다 하지 벌써 이야기 나온지 20년 가까이 됐다. 이놈의 개발 때문에 신축공사는 도통 불가하니 그냥 있는 대로 사는데, 험하게 하고 산다니깐”이라며“ 될라믄 되고 안 될라믄 그냥 좀 고쳐서 살게 하루빨리 결정이 나브렀으면 좋겠어”라고 말했다.

평촌마을에는 삼국시대 유물들이 다수 출토됐다. 1984년 이 마을에 거주하던 서원태씨에 의해 처음 발견 됐는데 청자대접, 청자병등과 같은 출토 유물들은 현재 국립광주 박물관에 보관돼 있다고 한다. 이로써 이 마을에는 고려시대 이전부터 사람들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마을은 처음에는‘ 평더리’라고 불리다, 마을의 형태가 들같이 평평하다해‘ 평촌(平村)’이라 이름 붙여 졌다.

김 통장은“ 마을에는 지금은 안쓰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사용된 우물이 있어. 유물과도 같은 시간을 간직한 우물이라 할 수 있네. 상수도가 들어오기 전에는 거기서 물길러다 마시고, 밥 짓고 했지”라고 말했다.

뿐만 아니다. 하포에서 마을로 들어온 길목인‘ 망개’는 임진왜란 당시 왜적의 침입에 대비해 망을 보던 곳이라 불린다. 또 마을 서쪽 100m 인근에는 조그마한 산등이 있는데‘ 뱃등’이라 부르는데 그 모양이 배 같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몰 마당’이 있는데 이곳은 과거 이 마을에서 말을 키웠음을 나타낸다. 이 곳에서 말을 길들였다. 주민들의 추측으로는 약 150여 년 전일 것이라고 했다.

주민들은 잔을 채웠다. 김 통장은“ 오래된 시간부터 이어온 마을과 주민들의 앞으로의 안녕을 위하여”를 외치며 잔을 부딪쳤다.

주민 한 사람이“ 우리 통장은 술도 잘 마시고, 일도 잘하고, 건강도 좋고, 최고!”라고 외치자 주민 모두가 그동안의 노고에 감사하며 박수를 쳤다.

마을 회관을 나서는 길, 주민들이 벗어 놓은 알록달록한 슬리퍼와 신발들이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우는 것 같았다. 얼마 뒤면 사라질 수도 있는 풍경이란 생각에 아쉬운 마음이 들어 멈춰선 채, 한참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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