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째 한자리 지키고 있는 풀빵 트럭 주인의 삶을 듣다

찬바람이 분다. 달콤한 팥앙금이 가득 든 따뜻한 풀빵이 생각나는 계절이다. 중마동사무소 사거리 농협 앞에 17년 동안 풀빵과 중국식 호떡을 파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 주인공은 바로 청각장애인 김현철(53)씨와 김성주(44)씨다. 주문한 풀빵을 기다리며 한 손으로 호떡을 집어 든다. 기름에 튀기지 않아 담백하고 고소한 중국식 호떡은 뒤돌아서면 또 그리운 맛이다. 이 집에서 풀빵과 호떡을 주문하는 방법은 조금 특별하다. 손가락과 눈빛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호떡 두 개면 손가락으로 두 개, 풀빵 3천원 어치면 세 개를 내 보인다. 헷갈릴 법도 한데 막힘없이 주문을 받는다.

호떡 굽는 아저씨
풀빵 만드는 아주머니


트럭 왼쪽 편에선 김현철 씨가 호떡을 굽고, 오른쪽에서는 김성주 씨가 풀빵을 만든다. 손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호흡이 척척 맞아 부부로 오해 할 수도 있지만, 부부는 아니다. 나이차는 많이 나지만 지금은 둘도 없는 친구 사이다.

그들의 인연은 올해로 30년. 돈을 벌기위해 부산의 한 신발 공장에 취업을 한 김성주 씨는 주말마다 농아인 교회를 갔다. 그 곳에서 김현철 씨를 알게 돼 인연을 맺었다.

김 씨는 “같이 일한지가 오래돼서 그런지 닮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 부부로 오해를 받았다”며 “성주씨도 돈을 벌어야 하고 혼자 하기는 힘든 일이라 같이 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현철 씨는 17년 전 풀빵 장사를 할 거라곤 생각도 못했었다. 하지만 장애인이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었다. 무엇을 할까 고민 끝에 풀빵과 호떡을 팔게 됐다. 하지만 풀빵장사도 만만치 않았다.

김 씨는 “4년 동안은 너무 힘들었다”며 “기술도 부족하고 빵도 맛이 없어 좌절했던 순간이 많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김현철 씨는 1살 때 열병을 앓고 청각장애2급을 판정받았다. 큰 장사꾼이 되고 싶다는 꿈도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혹독했다. 그는 “큰 장사꾼은 아니지만, 지금 풀빵과 호떡을 파는 것이 너무 행복하다”며 “단골손님들이 자주 찾아주는 것도 감사한 일이다”고 고마워했다.

풀빵 트럭은 평일에 오전 10시에 열고 6시 30분쯤에 문을 닫으며, 주말에도 가끔 문을 열고 있다. 김성주 씨는 “오랫동안 한 곳에서 장사를 하다 보니 손님이 많은 것 같다”며 “건강이 허락하는 한 풀빵을 계속 만들어 팔고 싶다”고 웃어보였다. 김성주씨도 청각장애2급을 판정받았지만, 작은 소리는 들린다. 하지만 그 소리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어 힘들 때가 많다.

엄마와 아빠
세상에서 가장 듣고 싶은 소리

그들은 가장 듣고 싶은 소리는 ‘엄마’와 ‘아빠’. 김 씨는 슬하에 아들이 하나 있고, 김성주 씨는 아들 두 명이 있다. 김 씨 아들은 부산대를 졸업하고 현재 서울에서 미국 유학을 준비 중이다.

아이들이 꿈을 이루기 위해 끝까지 지원자가 되어주고 싶다는 김현철 씨와 김성주 씨. 그들이 마지막으로 간절하게 하고 싶은 한 마디를 전해본다.

“아들, 힘내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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