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의미를 일깨워주는 ‘굴물’ 사람들

광양시에는 280여개의 마을이 있으며, 각 마을 마다 고유의 특성과 수려한 자연경관을 갖고 있다. 시민신문은‘ 이장님 막걸리 한 잔 하시죠!’를 기획해 직접 지역내 마을을 찾아다니며각 마을의 이장님을 만나 뵙고 생생한 마을의 소식과 각 마을의 보석 같은 숨겨진 이야기,아쉽게 잊혀져가고 있는 이야기, 골목과 토담을 넘어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을 담아내며 기록한다. <편집자 주> 막걸리 협찬: 광양주조공사

▲ 옥룡면 상운마을 이정연 이장

마을 앞에는 넓은 뜰이 펼쳐져 있고 뒤편에는 산이 병풍처럼 자리하고 있어 겨울철에도 따뜻한 상운마을은, 이와 같은 지형 때문에 옛 문헌을 살펴보면 굴물(堀勿)이라고 기록돼 전한다.

마을회관에 들어서자, 주민들은 아랫목의 이불을 들쳐 자리를 마련해주며“ 기자 양반 잘 찾아왔어. 상운마을에 대해서 제대로 알려면 우리 이장을 만나야해. 그동안의 역사를 다 읊어낼 수 있는 건 우리 이장뿐이거든. 우리들은 그동안 많은 것을 보고, 겪어 왔지만 나이를 먹어 기억도 가물가물하고 기자 양반한테 많은 이야기를 해 줄 수가 없어”라고 말했다.

상운마을의 이정연 이장(80)은 올해 9년차 이장직을 맡고 있다. 이곳에서 나고 자랐으며, 윗대까지 4대차 이 마을에 터를 잡고 살고 있다고 한다. 현재 50호, 10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이 마을은 벼, 생강, 고추 등을 주산물로 재배한다.

과거에는 보리와 하우스 농사로 오이를 재배하기도 했지만 주민들의 대다수가 고령이라 현재는 힘에 부쳐 하우스 농사는 거의 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이 이장이 주민들의 잔에 막걸리를 한 잔씩 따라준다. 막걸리를 마시며 주민들은 지난해 생강 농사에 대해 이야기했다. 2015년 생강수익이 좋아 마을 주민들 대다수가 생강을 심었는데 작년에는 생강 종자 값만 겨우 건진 정도라고 했다.

이 이장은“ 농사도 돈이 있어야 짓는다니깐. 하지만 옥룡 제일가는 천석꾼이 우리 마을에 있었어. 공기도 맑고 농사도 잘되니 사람살기 좋은 곳이었지. 그런데 지금은 노인들만 남아 빈촌이나 다름없어”라며 “하지만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아직도 변치 않고 마음만은 천석꾼이야”라고 말했다. 그러자 주민들이 “그라제~”라며 막걸리 잔을 부딪쳤다.

몇 명 주민들은 새 봄이 오면 또 어디로 관광을 갈지 벌써부터 설렌다고 했다. 작년 봄에는 경주의 불국사를 다녀온 이야기도 함께 전했다.

주민 한 사람은“ 돈이 있든 없든 여기서 우리 마을 사람들은 행복하게 살아. 우리 이장이 매 년 봄이 오면 관광도 준비하고, 노인들끼리 외식하기 힘들잖아, 한 번씩 날 잡아서 생전 처음 먹어보는 맛좋은 집에 데려가서 마을 주민 외식도 시켜주고”라며“ 이장세도 받은 적이 없어. 알뜰살뜰 주민들 배려하면서 동네살림은 우리 이장이 다 살았지~”라고 칭찬을 쏟아냈다.

얼마 전에는 상운마을 출신 남상빈씨가‘ 광양시보건소장’으로 임명됐다. 마을 인근에 플랜카드를 걸고 자신의 일처럼 축하하고 기쁨을 표현하기도 했다.

이 이장은“ 마을에 참 젊은 인재들이 많았어. 그들과 같이 새마을 사업할 때 초가집개선 사업도 하고, 울타리도 뜯어 마을 안길도 내고 상수도도 들어올 수 있게 하고. 지금은 다들 외지에 나가 있어서 마을에 개선하고 싶은 게 있어도 애로사항이 참 많지”라며“ 그래도 명절 때마다 향우들이 오면 음식 장만해 한자리에 모여 사는 이야기도 나누고, 마을 안건에 대해 회의도 하고. 참 고마운 게 우리 마을 사람들은 협조도 잘하고 일도 잘 도와줘서 힘든 것 없이 이장 일을 할 수 있다네. 칭찬은 내가 받을 게 아니라 우리 마을 사람들이 받아야지”라고 웃어보였다.

마을에는 주차할 곳이 없어 많은 불편이 따랐다. 이 이장은 시의 협조를 구해 마을 주차장을 조성했다.

또한 젊은 귀농·귀촌인들이 찾게 하기 위해서는 마을 진입로가 불편이 없어야 한다고했다. 때문에 현재 마을의 묵은 밭들을 활용해 길을 내고자 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길을 내기 위해서는 예상 구간의 땅 소유주들의 승낙을 받아야 하는데 이해를 구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 됐고, 어려움도 뒤따랐다. 하지만 마을의 발전을 꾀하는 일에 앞장설 때 보람을 느낀다는 이 이장은“ 나이가 들수록 활동이 줄어들기 때문에 운동을 해야 하는데 도시와는 달리 농촌마을에는 그러한 시설이 미비하다네. 내가 이장을 하는 동안에 그런 공간을 만들어 보려해”라고 전했다.

옥룡면 주민들의 숙원이라는‘ 중흥산성 토성 복원’등의 이야기,‘ 중흥사의 석조여래좌상, 삼층석탑’에 대해 들은 터라, 돌아가는 길‘ 중흥사’에 들렀다.‘ 지장보살 반가상’ 앞에서 나약한 중생의 마음을 털어놓고 구제를 염원했다. 이곳을 다녀간 많은 이들의 소망이 차곡차곡 쌓여 이뤄진 돌탑 위에‘ 상운 마을 주민들의 건강과 시민신문의 발전, 개인의 안녕’을 빌며 돌 하나를 얹고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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