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영 시민신문 독자위원장

▲ 정은영 광양시민신문 독자위원장

지난해 연말 인근도시의 특정모임에서 있었던 일이다. 사오십대 중년들이 주축인 모임에 이십대 초반의 남자가 처음 참여했단다. 반가운 마음에 기존회원들의 관심은 당연히 이 젊은 회원에게로 향했다. 식사를 하며 자연스레 청년에게 질문이 많아졌고 환영의 유쾌한? 농담들이 오갔다. 그것이 발단이었다.

“우리 모임에 영계가 들어왔네”, “사진으로 볼 땐 몰랐는데 여드름이 나 아직 애기다” 등등의 여느 모임에서 있을 듯 한 몇몇 이야기가 오갔다.

이후 그 청년은 그 모임의 불편함에 대하여 SNS를 통해 강력히 항의했다. 모임의 일원들은 사과했지만 문제는 거기서 해결되지 못했다. “웃자고 한 얘기에 죽자고 달려든다”는 식의 불편함을 주장하는 회원도 있었다. 그리하여 그 모임은 잠정적으로 모임을 중단했다. 그리고 지금도 그 일의 파장이 가시지 않고 있다.

우리는 많은 관계 속에서 서로의 어색함을 해소하기 위해 가볍다고 생각하는 농담을 던지는 경우가 자연스러운 풍경이다. 그러나 그러한 농담들이, 나이ㆍ외모에 대한 평가들이, 상대방이 처한 상황들에 대한 악의적이지 않은 가벼운 말들이, 한사람의 인격권을 무시하거나 또는 모독하는지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우리 생활 속 내재한 평등하지 못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의 대화나 행동들은 우리 자신이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주변에 만연해 있다. 아무도 그것을 지적하지 않는 것 또한 문제이다. 그도 그럴 것이 보통 가해를 하는 쪽은 나이가 많거나 직장의 상사거나 힘을 가진 쪽이고 그것을 참아내는 쪽은 그 반대이기 때문이다.

평등문화와 관련한 갈등은 때로 세대 간 갈등을 불러온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청년들의 생각과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기성의 경험들로 울타리를 친다. 특히 지역일수록 이러한 문화가 고착되어 있다. 기성의 질서를 강압한다.

예를 들어 어느 모임이나 직장의 회식자리에 앞의 경우가 생겼다면, 그리고 문제를 제기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도 그이는 “젊은 놈이 융통성이 그렇게 없어서 쯔쯧...” 바로 다음날부터 사회 부적응자로 낙인 찍혔을 것이다.

신년에 정현복 광양시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올해 광양시의 화두는 우리의 미래인 ‘아이들과 청년’이라며 아이가 행복하고 청년이 꿈을 이루는 도시를 실현하겠다”고 말했다.

지난주 광양시민신문 주관의 ‘청년 희망 도시 만들기 시장 간담회’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는 청년일자리 확대, 청년기본조례제정, 청년발전기본계획 수립, 청년창업지원, 청년문화공간 확대 등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청년을 위한 이야기였다. 이야기만으로도 우리 도시가 마치 활력이 생기는 듯 분위기가 팽창했다.

우리가 간과하는 것이 있다. 청년뿐 아니라 아이, 청소년, 노인, 여성, 장애인, 다문화가정, 저소득가정....우리가 이야기하는 전제에는 배려, 지원에 앞서 서로가 평등하다 인식하고 존중하는 평등문화가 먼저 자리 잡아야 한다.

예를 들어 지역문화를 이끄는 사람이 지역에 함께 사는 사람이 아닌, 지역출신만 챙긴다면 그것이 미래를 위한 지역문화인가? 시민들이 참여하여 도시의 여러 가지 상황들을 이야기하는 시의 위원회에서(현실은 청년들이 참여할 공간조차 많지 않지만) 목소리를 내어 이야기 하는 청년에게 어린놈이 돌아가는 상황파악 못하고 말이면 다냐고 면박을 준다면 그것이 함께 어우러지는 문화인가? 만약에 예를 들어 말이다.

그것은 지금껏 지배적이고 소수의 권위를 내세우며 대대로 이어온 봉건적 기득권의 문화다. 우리 스스로 깨어나거나 깨지 못할 때 이는 거꾸로 가는 문화 위에 수많은 돌을 올려 집을 지으려 하는 것과 같다.

우리도시는 청년의 튼튼함과 실험정신이 그 어느 때 보다 필요한 시기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사소한 만남의 자리에서나 관계에서도 청년에 대한, 또 사람에 대한 평등한 인식이 필요하다. 한사람이 바라는 인간의 존엄, 권리, 인격, 가치, 행복의 추구는 곧 나의 바램이다.

그것이 평등이다. 문화다.

저작권자 © 광양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