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가족화가 부른‘ 유대관계 약화’ 가족 간‘ 대화단절’ 불러

자녀와 관계 끊어진 ‘노인’ 고독과 빈곤으로 정신건강 ‘취약’
정신건강증진센터 무료 상담서비스 제공 “마음도 치료해야…”

[사례]
집을 떠나 혼자 살고 있는 A씨(여,29)는 전 직장에서 부당해고를 당한 뒤 심한 우울감에 빠졌다. 직장에서의 실패는 A씨 스스로를 능력 없고 쓸모없는 인간으로 생각하게 만들었으며, 앞으로 남은 날들을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사람들이 두려운 존재로 느껴지기 시작했으며 매일 밤 불면에 시달렸다. 평소 가족과 대화가 적었던 A씨는 혹 못나게 보일까봐 부모나 형제에게도 고민을 털어놓지 못했다. A씨에게 삶의 의욕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자신의 인생은 실패작이며 포기할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었다.

사람들은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지만 마음이 아프면 구석으로 들어간다.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치부, 마음의 병.

그렇기에 ‘우울’은 현대사회에 가장 만연해있는 사회문제면서도 쉽게 수면 위로 떠오르는 법이 없다.

이따금 언론에서 OCED 자살률 1위, 이혼률 증가와 같은 통계들이 그 사실을 은밀하게 뒷받침해주고 있을 뿐.

가족해체가 부른 역효과 ‘소통의 단절’

현대인들이 겪는 ‘우울’의 발원지를 찾아 거슬러 가다보면 그 중심에는 ‘전통적 가족구조의 해체’가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과거 대가족을 형성하며 살았던 가족 구성원들은 산업화와 도시화를 겪으면서 빠르게 핵가족화 됐다. 여기에 맞벌이 가구가 늘어나고, 혼밥·혼술을 즐기는 1인가구가 하나의 사회문화 현상으로 떠오르면서 가족구성원간의 정서적인 유대관계가 느슨해지기 시작했다.

설용계 정신과전문의는 “핵가족화로 인해 가족과의 연계성이 떨어지면서 ‘대화의 단절’을 불러일으키게 되는데, 이는 가족갈등의 핵심 원인으로 작용한다”며 “가정 내에 ‘불통’이 만연해지면 부부 갈등이 잦아지게 되고, 대화의 매개를 찾지 못한 자녀들은 게임중독에 빠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광양시 사회지표에 따르면, 2015년도 이혼 건수는 총 356건으로 전년도(2014) 대비 6.2% 증가했다. 이러한 가족해체는 자녀들의 자아기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며, 이는 곧 낮은 자존감과 청소년 우울증을 발현시키는 원인이 된다.

자살, 희망을 잃은 이들의 ‘슬픈 도피처’

관계의 약화는 잦은 갈등으로 이어지고 이는 곧 우울·불안·부적응·폭력 등과 같은 사회병리현상을 일으키게 된다. 가장 극단적인 예 중의 하나가 바로 ‘자살’이다.

광양시 보건소 통계에 따르면, 2015년 광양시 자살 사망자수는 총 37명으로 △20-30대 7명(18.9%) △40-50대 12명(32.4%) △60대 이상 18명(48.6%) 등이다. 성별 사망자 수는 남자가 32명(86.5%)으로 압도적으로 높았다.

직업별로는 56.8%가 가사·무직 등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계층이 높았고 기타 농어업 종사자가 10.8%로 뒤를 이었다.

자살 사망원인 자체 분석결과에 의하면 △우울증 등 정신과적 문제(20%) △질병(20%) △기타 가족 간의 갈등(9%) △경제적인 문제(7%)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노인 자살률이 전체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독거노인 증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광양시 내 독거노인은 총 2560여명(주민등록상 독거노인 4557명)으로 주로 농촌지역에 홀로 사는 여성가구가 주를 이룬다.

이들은 자녀와의 단절로 인한 고독과 빈곤, 그리고 배우자의 사망으로 인한 상실감을 겪는 경우가 많아 쉽게 우울감에 젖어들곤 한다.

직장문제로 인한 스트레스 역시 현대인의 정신건강을 해치는 주요요인으로 손꼽히고 있다. 광양시 사회지표에 따르면, ‘직장생활에서 스트레스를 느꼈다’라고 답한 비율은 70%로 10명 중 7명은 스트레스를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취업난과 치솟는 실업률 등 사회·경제적 문제 역시 우울증상을 유발하는 주요 요인이다. 특히 무직인 경우에는 정신건강 수준이 낮고, 우울증상이 높아 자살에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마음이 아프면 ‘당연히’ 치료해야 합니다
광양시 보건소 정신건강증진센터 ‘마음 주치의’

‘광양시정신건강증진센터’는 지역주민의 정신건강 증진을 위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정신과 전문의 무료상담실 ‘마음주치의’는 △우울증 및 자살위기 △스트레스 △부부문제 △아동문제 등을 겪고 있는 일반시민들에게 개인별 상담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매주 목요일 예약을 통해 이용할 수 있다.

내방이 어려운 시민들을 위해 상담전화도 운영하고 있다. 상담시간은 월~금요일이며, 1577-0199를 통해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운 고민들을 상담 할 수 있다.

이외에도 마을 경로당을 순회하며 ‘실버치매 예방교육’을 실시해 노년기 우울증·스트레스 관리 등에 대한 올바른 지식과 정보를 전달한다.

특히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자살예방을 위해 △학생 생명사랑 교육 △직장인 자살예방교육 △산후우울증 및 주부우울증 예방교육 등 생애주기별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농촌지역에서 자주 발생하는 음독자살은 ‘농약안전보관함’을 이중으로 설치함으로써 충동적인 행동을 미연에 방지한다.

그러나 가장 직접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상담서비스’는 이용률이 저조한 실정이다. ‘정신건강’에 대해 논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회적 편견 때문이다.

2016년 정신건강증진센터 통계에 따르면 정신질환을 제외한 일반상담은 총 276건이며, 이중 자살관련 상담은 42건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설용계 정신과전문의는 “우리나라에서 정신문제는 사회적으로 터부시되어 왔기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서도 거론하는 것 자체를 쉬쉬하는 분위기”라며 “때문에 우리나라 국민들은 마음이 아플 때 스스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더 강하다”고 말했다.

이어 “우울 증상과 같은 정신건강 문제를 사회적 편견과 시선이 두려워 방치했다가는 더 곪아 큰 상처로 남을 수 있다”며 “마음의 병은 사람 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누구나 겪어볼 수 있는 문제며 특별한 것이 아니다. 사소하고 복잡한 고민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정신건강증진센터를 부담 없이 방문해 치료받기를 권한다”고 당부했다.

김신희 기자

부록 - [작은 마음상담소]
건강한 관계를 만들기 위한 말 ‘싫어요’

광양정신건강센터 설용계 정신과전문의

설용계 전문의는 “스트레스를 혼자 힘들게 참는 것보다 적절한 방법으로 의사표현을 해야 성숙한 관계를 이어갈 수 있다”며 “무엇보다 ‘난 이거 싫어요’라는 자기주장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설용계 전문의는 원활한 의사표현을 하기 위해서는 자아기능이 살아있는 사람, 즉 ‘자존감’이 중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설용계 전문의는 “자아기능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사람은 타인이 나를 미워하게 될까봐 ‘싫어요’라는 말을 하지 못하고 마음에 담아두는 경향이 강하다”며 “또한 타인에게 미움 받는 일을 대단한 큰 일로 느끼곤 하는데, 그 두려움을 극복하고 말할 수 있어야 건강한 관계가 성립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가족 간 관계 설정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한 대화를 시도하는 것은, 자칫 강압적 대화로 흘러갈 수 있다”며 “평소 꾸준한 의사표현으로 건강한 관계망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갈등이 발생하기도 하는데, 마음에 담아두다 큰 싸움으로 터지는 것보다 잔 싸움을 많이 하는 게 오히려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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