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의 하루_ 안영작가

광양시 진월면 차동마을 출신인 작가 안영(1940~ )은 ‘겨울 나그네’로 2002년 제 39회 한국문학상을 수상했으며, 1965년 등단 이후 소설집과 수필집 등 총 13권의 책을 내는 등 활발한 문학 활동을 전개해 왔다.

특히 장편소설 ‘영원한 달빛, 신사임당’은 문단에서 신사임당에 관한 가장 정통적인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전국 각지의 초청을 받아 70여 차례 이상 강의를 전개해 왔다.

광양시민신문은 문학사적 의의가 큼에도 불구하고 아직 광양지역 출신 작가에 대한 연구와 정보가 부족한 점을 지적하며, 동시에 ‘광양출신 작가를 만나다 - 작가와의 하루’를 창간 5주년 특집으로 기획 했다.

지난 18일 성남시 분당구에 위치한 안영 작가의 집을 직접 방문해 작품 속에 내재돼 있는 문학적 세계관, 광양에서의 추억, 황순원ㆍ정채봉ㆍ김승옥 작가들과의 인연 등에 대해 밀착 인터뷰했으며, 이를 지면을 통해 보도함으로써 시민들에게 문학과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을 고취시키고 지역민으로서 자부심을 갖게 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나의 고향 ‘광양’은,
‘그리움’과 ‘아픔’의 대상

▲ 안영 작가

1940년 10월 3일, 광양시 진월면 차동마을에서 안영작가는 5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하지만 해방을 맞이하던 해 중앙청 인사과장이 된 아버지를 따라 5살에 서울로 이사를 가게 됐고, 이어 광주로 전주로 이사를 다녔지만 방학이 오면 언제나 조부모님이 계시는 광양을 방문했다.

그러던 중 초대 전주 시장을 지내시던 아버지(故 안상선)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되던 해, 공산군 손에 학살됐고, 그 슬픔을 견디지 못한 어머니는 병을 얻었다. 조부모님은 어머니를 광양으로 데려와 극진히 간호했지만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어머니를 떠나보내야 했다.

안영 작가는 광양에 대한 어린 시절의 기억들을 꺼내놓으면서 “그래서인지 나의 고향, 광양은 늘 그리움과 아픔의 대상으로 다가오곤 했다”고 말했다.

광주여자고등학교 재학시절, 방학 때면 기차를 타고 광주에서 순천의 친척집에 들러 하룻밤 자고 다음날 순천에서 버스로 진상까지 왔다. 그리고 진상에서부터는 걸어서 상재고개를 넘어 진월면 차동마을 까지 가곤 했다. 그 시절부터 그는 자연을 사랑하게 됐고, 광양에서 보낸 방학시절들은 그가 작가로 성장할 수 있는 좋은 자양분의 역할을 해줬다.

안 작가는 “이런 저런 나무들, 꽃들, 또는 새들의 노래를 감상하며 터벅터벅 걷다가 산꼭대기에선 잠시 쉬며 시를 읊었다. 그러다가 곧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뵐 수 있다는 기쁨에 발걸음이 빨라지곤 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또한 부모님을 일찍 여윈 5남매를 살뜰히 보살펴주시고 결혼까지 시켜주신 조부모님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표현했다.

1962년 대학 졸업 후 원하던 교사 시험이 없어 애태우던 차, 박정희 대통령이 당시 각 군청 공보실을 신설, 대졸여성 채용 시험을 실시했고 고향인 광양 군청의 행정주사보가 됐다. 원하던 교직은 아니었지만 항상 그리움의 대상이었던 고향에서 일할 수 있어 감사했다.

그는 “당시 주로 군정 홍보를 맡아 매주 광양 공보를 만들고 각 읍면을 돌며 마이크를 잡았는데 철 따라 변하는 읍내의 자연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군정을 홍보하면서도 내 눈을 스쳐가는 자연에 도취돼 감탄사를 연발하곤 했다”고 말했다.

‘세 가지의 꿈’ 이루게 해준 고향,
내 삶 속 ‘잊을 수 없는 추억’ 깃들어

1963년 가을, 편지 한 장과 ‘피어리어드’라는 제목의 소설을 당시 존경하던 소설가인 황순원 작가에게 우송했고 인정을 받아, 우편지도를 받게 됐다. 그리고 1964년 황순원 작가는 남도를 여행 중 광양에 들르게 됐다.

그는 “황순원 선생님께서 ‘현대문학’에 초회 추천 작품을 보내놓고 정말 소설을 쓸 사람인지 한번 와서 사는 것을 보고 싶었노라고 했다. 당시 김홍영 군수님께서 지프차를 내주셔서 광양 읍내 구경을 시켜 드리고 진월면 차동마을 집으로 가서 하룻밤을 머무셨다”며 “그때 사회계장님이시자 훗날 광양 전교가 되신 김종근 선생님과 함께 광양불고기를 대접하고 선생님과 유당공원으로, 연습림으로 한 바퀴 돌던 때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고 말했다.

안영 작가에게 ‘광양’은 소설가로서 등단의 꿈을 이루게 한 곳이자, 그토록 바랐던 교직, 천주교에 입교한 곳이기도 하다. 때문에 광양은 ‘내 삶 속 잊을 수 없는 추억이 깃들어 있는 곳’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50여명의 교우들이 다니던 읍내의 작은 공소에 나가 순천 저전동 성당에서 나오신 아일랜드 신부님, 멕시코 신부님들을 만나게 됐는데 외국 신부님들이 우리말이 서툴러 교우들과의 사이에서 통역을 맡았다”며 “성당 교우 중 광양중학교 박현수 교장 선생님이 우연하게도 교사채용 공고를 알려줘 시험에 응시하게 됐고, 1965년 전남여고 발령을 받게 돼 그토록 꿈 꿨던 교사의 길을 갈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한국 현대 문학의 거장,
‘황순원ㆍ정채봉ㆍ김승옥’ 그 들과의 인연

▲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1958년 조선대학교 문학과에 진학해 작품으로 황순원 작가를 처음 만났다고 한다. 따뜻한 인간애, 생명에 대한 외경심, 간결하고 서정적인 문체 등에 완전히 매료돼 도서관에 있는 황순원 작가의 작품을 다 찾아 읽고 초기에 낸 두 권의 시집까지 구해다 정성껏 베끼곤 했다.

대학 졸업논문도 ‘황순원 론’을 썼을 정도였다. 광양군청에 근무하던 당시 ‘현대문학’을 사서 읽었는데 당시 소설부문 추천위원이던 황순원 작가에게 소설을 써서 보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1963년 황순원 작가에게 단편 소설 한 편을 우송했고 ‘두 편만 더 보내라’는 답장을 받아, 용기 내 소설 쓰기에 매진했고 ‘우편제자’가 됐다. 이렇게 시작된 인연으로 1967년 결혼식 주례를 서주셨다. 안 작가는 대학졸업논문에 이어 1983년 중앙대학교 대학원 석사 논문도 ‘황순원 소설에 나타난 꿈 연구’에 대해 썼다.

안 작가는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황순원 선생님과 사모님을 친정 부모님처럼 생각하고 따랐다”며 “두 분을 부모처럼 모신 인연으로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소나기 마을 촌장으로 봉사했고, 현재도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채봉 작가와의 인연은 매우 가족적이다. 광양군청 재직 시, 중학생이었던 정채봉과 이균영 작가는 시화전을 열었고, 그 때 축하해 준 것이 인연의 시작이었다. 훗날 정채봉 작가의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소식을 접했고 너무 반가워 축하 전화를 했는데, 그때부터 정채봉 작가는 안 작가를 ‘누님’이라 부르며 이들은 각별하게 지내왔다.

안 작가는 “조촐하게 치렀던 결혼식에도 김승옥 작가와 우리 부부를 초대해 주었고, 그들 부부가 80년대, 천주교에 입교하면서 나와 남편이 대부모가 돼줬다”며 “이렇게 가족처럼 지내온 인연으로 정채봉 작가가 세상을 떠났지만, 지금도 그의 부인과는 친자매처럼 서로 돕고 산다”고 말했다.

김승옥 작가에 대해서는 “광양시청에서 문화 행사에 문학인들을 불러주시곤 했는데, 그때마다 함께 가곤 했다”며 “나중 쓰러져 건강이 상한 뒤에도 가끔 만나 필담으로 대화를 나누기도 했는데 마음이 아프다”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장편소설 ‘영원한 달빛, 신사임당’,
그리고 작가 ‘안영’

▲ 분당 성 요한성당‘ 요한성당대학교’에서 말씀 봉사자로 활동 중인 안영 작가.

안영 작가는 ‘겨울 나그네’로 2002년 제 39회 한국문학상을 수상했으며, 1965년 등단 이후 소설집과 수필집 등 총 13권의 책을 내는 등 활발한 문학 활동을 전개해 왔다. 특히 장편소설 ‘영원한 달빛, 신사임당’은 문단에서 신사임당에 관한 가장 정통적인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전국 각지의 초청을 받아 70여 차례 이상 강의를 이어왔다.

사임당이 5살 때부터 47세 돌아가실 때까지의 일대기를 담은 이 소설은, 효녀로서의 삶, 아내로서의 삶, 어머니로서의 삶, 자아성취의 삶 등 ‘네 가지 삶’을 그려냈다. 특히, 짧은 생애지만 자그마치 7남매나 나아 기르면서 그림, 시, 붓글씨, 수예 등 많은 예술작품을 남기고 간 사임당의 삶을 재조명해, 많은 독자들은 ‘어버이가 딸에게, 아내에게 최고의 선물 대한민국 여성이라면 꼭 읽어야 할 책’으로 꼽았다.

안 작가는 “2003년 여름 소설가 협회에서 역사 인물 102인을 선정하고 하나씩 쓰자는 계획을 세웠는데, ‘신사임당’의 이름을 보는 순간 가슴이 두근거려 장편소설 작업에 돌입하게 됐다”며 “당시 30여 년간의 교직 생활을 통해 ‘교육의 천년 대안은 인성교육이다’라는 결론을 얻었던 터라, 사임당 일가를 빌려 교육철학을 담아보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2004년 여름 한 달 동안 국립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하며 50여 권의 책을 읽고 복사했고, 가을에 들어서는 강릉 오죽헌, 시립박물관 등을 방문해 자료를 얻었고, 어르신들을 만나 풍습을 듣는 등 철저히 준비를 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안 작가는 “이 글은 혼자 쓰지 않았고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썼다. 글을 이어가는데 어려움을 당하면 기도하고, 묵상하고, 미사도 드리고, 퍼뜩 좋은 생각이 나면 자다가도 일어나 컴퓨터에 앉곤 했다”며 “소설을 집필하면서 2005년 1월부터 가톨릭 월간지 <참 소중한 당신>에 연재를 시작했고, 2007년 3월까지 50매씩, 1300매의 장편을 완성하게 됐다”고 말했다.

또 “책으로 펴내자마자 사임당과 관련돼 강의 초청도 많이 받아 전국을 돌며 열심히 홍보했는데, 그 사이 고액권 화폐의 주인공이 신사임당으로 결정돼 여기저기서 국민 여론에 한몫했다고 박수를 보내줘 보람도 느꼈다”며 “내 유일한 장편소설이자 이런 저런 추억이 서려 있어 가장 애정이 가는 소설”이라고 덧붙였다.

안영작가를 사랑하는 ‘독자들’과
작가를 꿈꾸는 ‘광양의 꿈나무들’에게

작가를 꿈꾸는 ‘광양의 꿈나무들’에게 광양출신 안 작가는, ‘중국 문장가 구양수’의 말을 인용해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는 것’이 작가가 되기 위해 중요한 것 같다고 조언 했다.

이어 “좋은 책을 골라서 많이 읽고, 매일 일기 쓰는 습관을 들이면 도움이 많이 될 것이다. 문장력과 사고력을 기르는 데는 ‘일기’를 쓰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을 것”이라며 “아울러 우리말에 사랑과 관심을 갖고, 체험도 폭 넓게 하면서 인격을 닦아 나가는 것이 우선 돼야한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안영 작가는 “나는 스스로를 문단이라는 거대한 정원의 한쪽 구석에 수줍게 피어 있는 ‘한 송이 풀꽃’에 비유하곤 한다”며 “앞으로도 작지만 지나가는 사람에게 위로를 주고, 희망을 주고, 기쁨을 주는 풀꽃과 같은 글, 순수한 글로 영혼에 잔잔한 울림을 줄 수 있는 작가로 남고 싶다”고 말했다.

●‘안영 작가’ 약력
•1940년 10월 3일 전라남도 광양 출생.
•1962년 조선대학교 문학과 졸업
•1962년 ~ 1964년 광양군청 공보실 근무.
•1965년 전남여고 국어과 교사로 교직 생활 시작.
•1965년 현대문학‘ 월요 오후에’ 등단
•1983년 중앙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제39회 한국문학상‘ 겨울 나그네’
•제27회 국제펜문학상 수상
•황순원문학촌‘ 소나기 마을’ 촌장 역임, 現 운영 위원
•現 분당 성요한성당 요한대학교 말씀 봉사자 활동.

●‘안영 작가’주요저서
•소설집‘ 가을, 그리고 山寺’,‘ 아픈 幻想’,‘ 겨울 나그네’,‘ 가슴에 묻은 한마디’,‘ 비밀은 외출하고 싶다’ 외다수
•수필집:‘ 그날 그 빛으로’,‘ 아름다운 귀향’,‘ 하늘을 꿈꾸며’,‘ 초록빛 축복’
•동화:‘ 배꽃마을에서 온 송이’
•장편소설:‘ 영원한 달빛, 신사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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