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순간을 넘어서 현재로 이어지는 시간들. 배영일 씨는 한 가족의 역사가 간직된 낡은 앨범 한 권을 들고 왔다. 그것을 한 가족만의 역사로 묶어 두기에는 그 무게가 너무 컸다. 광양의 ‘과거’이자, 더 나아가 우리 민족이 걸어온 ‘시대’를 대변하고 있는 사진들이었다. 사진으로밖에 뵐 수 없었지만, 어린 시절부터 줄곧 듣고 자라온 자신의 백부. 故배흥순 씨(1930~ 1950)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졌다.

▲ 평양으로 출발하기 전, 전남도청 앞에서 찍은 사진

배 씨는 “아버지의 형이자 나의 혈육. 집안 어르신들이 들려주시던 옛이야기가 문득 떠오르는 날에는 한 번도 뵌 적 없는 백부가 그리워 앨범을 펼쳐들곤 했다”며 “그의 부재를 대신했던, 그날들의 이야기는 나와 백부를 만나게 했고 끈끈하게 이어주는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전남 도청 앞에서 찍은 단체사진 속 백부는,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조선총독부 주관 전남도 관내 각 시ㆍ군 최우수학생으로 선발돼 서울 남산조신궁과 평양으로 소위 성지순례를 떠나기 전 찍은 사진이다. 뒤에 북두칠성 모양의 점이 있었다는 백부는 어린 시절부터 영특해 많은 이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 전남도 내 최우수생 소위로 선발된 학생들이 평양을 방문해 을밀대 정문인 현무문 앞에서.

“48년 10월 백운산으로 걸어 들어간 그는, 일 년 만에 옥곡 고향집 뒤뜰을 찾아 당시 세 살 아래인 동생에게 ‘하늘이 무너져도 죽지 않고 살아 돌아올게’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떠났습니다”라며 배씨는 아버지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를 전했다.

모든 이의 간절한 바람과 기대와 달리 역사의 수레바퀴는 어린 영웅의 피가 필요했나보다. ‘전남 유격대 부사령관’으로 활동하던 지난 1950년 순천의 한 산야에서 토벌대와 교전 중 끝내 돌아오지 못하는 곳으로 떠나고 말했다. 그의 나이 겨우 만 20세였다.

50대에 접어드는 배 씨는 이제 사진 속 백부보다 더 많은 나이를 먹었다.

배 씨는 “어린 시절 그를 동경하면서 성장했고, 이제는 사진 속 여전히 패기와 의협심 강한 20세 청년을 마주하며 나의 삶을 되돌아보고 더욱 열심히 꾸려가고자 노력하고 있다”며, 어린 백부의 멈춰진 시간을 다시금 앨범 속에 고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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