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의 ‘가치’ 사회 통합 속에서 빛을 발하다

광양시 다문화가족 2400여명… 자녀 대부분 ‘초등생’
한국어 대신 ‘취업’ 택하는 결혼이민자들 ‘자녀교육 소홀’
다문화자녀 ‘이중 언어’ 능력 갖춘 인적자원으로 육성해야
다문화가정의 경제적 자립과 사회적 인식개선 ‘선행과제’

2000년대 중반 국제결혼 붐이 일면서 우리나라에는 ‘다문화가족’이라는 새로운 가족구성 형태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현재 광양시에도 결혼이민자와 자녀를 포함해 약 2400여명의 다문화가족이 터전을 일구며 살아가고 있다. 정부는 이민자 정착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한국어 습득이 완전치 않아 양질의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고 자녀 교육에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한 외국인에 대한 편견과 부정적인 인식이 여전히 사회 곳곳에 남아있어 이민자들의 사회적응을 저해하고 있다. 이에 광양시민신문은 광양시의 다문화가족 실태를 점검하고, 나아가 진정한 지역사회 통합을 위해 우리가 가야할 방향은 어디인지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다문화자녀 10명 중 9명은 초등학교 이하
다문화가족 정책 ‘자녀 성장·교육’에 초점

우리나라는 2000년대 중반, 성비불균형으로 인해 결혼 적령기 여성을 구하기 힘들어지면서 국제결혼이 성행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검증을 거치지 않은 무차별적인 결혼중개가 이뤄지면서 이혼, 허위 결혼, 업체 사기 등 많은 부작용이 발생했다.

이에 정부는 △결혼 비자 발급 심사 강화 △이민자의 한국어 교육 수준 △국제결혼중개업 제도 개선 등 법적 절차를 강화했으며, 그 결과 지속적으로 결혼이민자 수가 감소해 현재는 정체기에 머물고 있다.

국제결혼 붐이 일어난 지 어느덧 10년, 시간이 흐르면서 다문화 가정에 대한 정책 방향도 많이 바뀌었다. 과거에는 ‘결혼이민자’의 정착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다문화 자녀’의 성장·교육에 초점을 두고 있다.

전라남도 다문화가족 자녀 현황을 살펴보면 「만6세 이하」가 57%, 「만7~12세」가 32%를 차치하고 있어 10명 중 9명은 초등학생 이하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다문화가정이 자녀양육에 있어 중요한 시기를 지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한국어 배우기도 전에 ‘일터’ 뛰어드는 이민자들

광양시에 거주하는 결혼이민자 수는 총 847명(여성 799, 남성 48)이며, 출신국은 △베트남 308명(36.3%) △중국 290명(34.2%) △필리핀 90명(10.6%) △일본 53명(6.2%) △캄보디아 33명(3.8%) △중앙아시아 18명(2.1%) △몽골 11명(1.2%) 순이다.

결혼이민자들이 지역사회에 올바르게 정착하고, 안정적으로 가정을 꾸려나가기 위해선 가장 먼저 ‘한국어 교육’이 선행돼야 한다. 그러나 ‘언어 습득’이전에 ‘경제적 어려움’을 맞닥뜨려야 하는 이들에게 한국어는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광양시 건강가정·다문화가족 통합센터(센터장 손경화, 이하 광양다문화센터)는 결혼이민자 대상으로 ‘한국어 교육’을 실시해 적응을 돕고 있지만, 전체 이민자의 30%정도만 참여하고 있는 실정이다. 나머지 70%는 곧바로 ‘취업전선’에 뛰어들고 있다.

손경화 센터장은 “대부분의 다문화가정은 경제 사정이 좋지 않기 때문에 결혼과 동시에 이민자들은 일자리를 구하려 한다. 타국에 있는 친정에 돈을 보내야하는 부담감도 적지 않다”며 “그러나 언어습득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돼 있다. 주로 식당이나 계산원, 청소부, 화장품 방문판매 등의 일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광양다문화센터는 ‘초·중·고 검정고시반’과 △바리스타 △네일아트 등의 자격증 취득교육을 지원하고 있지만 소수인원밖에 수용할 수 없는 형편이다. 또한 한국어가 능통하더라도 이민자 신분으로 양질의 일자리를 구하기란 여전히 ‘하늘의 별따기’다.

손경화 센터장은 “한국어 능력이 뛰어나고,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으면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기회는 많아지지만 정작 취업은 녹록치 않다”며 “사업주 입장에서는 같은 직원이라도 외국인보다는 자국인을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소득수준 낮은 다문화가정일수록 자녀에 ‘소홀’
언어발달 느리거나 학습부진으로 이어지기 쉬워

광양 내 다문화가족 자녀수는 총 852명으로 주로 초등학생 연령기다. 이들은 부모의 국적이 서로 다르고, 두 가지 언어를 쓰기 때문에 성장과정에서 많은 문화적 차이를 경험한다.

언어발달이 늦어지거나, 학교 내에서 이국적 외모와 어눌한 발음 탓에 차별을 당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학습’이다. 그러나 한국인 엄마도 어려워하는 교과서를 말이 서툰 외국인 엄마가 올바르게 지도하는 것은 힘든 일이며, 30명이 넘는 학생을 관리해야하는 교사에게도 개별적인 관심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광양다문화센터는 다문화 자녀(만 12세까지)를 대상으로 ‘다문화가족 자녀 언어발달지원 사업’을 실시해 전문적인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읍·면 등 외곽지역에 사는 아이들은 접근성에 한계가 있어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손경화 센터장은 “자녀교육에는 부모가 중심에 서야하지만, 소득수준이 낮은 가정일수록 부모들이 양육보다 돈에 기울 수밖에 없다”며 “맞벌이 가정의 다문화자녀는 숙제 등 기본생활습관이 잡혀있지 않아 학교수업에 소외되는 경향이 있다. 아이들에게 학습은 곧 자신감인 만큼 지속적인 사회적 지원체계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제언했다.

한국인과 결혼이민자, 서로 자국문화 ‘공유’해야…

대법원 자료에 따르면 2011년~2015년까지 5년간 법원에 접수된 이혼소송은 총 11만 549건으로, 이중 결혼이주민이 당사자인 경우는 3만 4225건(31%)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적 차이를 안고 시작해야 하는 다문화 부부는 갈등이 발생할 소지가 비교적 많기 때문에 무엇보다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

특히 우리나라에 자리 잡고 있는 시댁문화는 결혼이민자가 적응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뒤따른다.

광양다문화센터 통계에 의하면 2016년 ‘다문화 상담’ 이용 횟수는 총 216건으로, 상담 내용은 △부부문제 92건(43.5%) △개인문제 69건(32%) △자녀문제 27건(12.5%) △그 외 가족 26건(12%) 순으로 나타났다.

손경화 센터장은 “결혼이민자가 한국문화를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역으로 한국인 남편도 외국인 배우자의 문화를 배우려 노력해야 한다"며 ”이민자에게만 우리나라 문화를 배우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닌, 서로의 문화를 공유하고 함께 변화하려 할 때 비로소 건강한 부부관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며 양 부부간의 의무교육 필요성을 강조했다.

다문화가정이 아닌 ‘똑같은 한국사람’
이민자 자녀 역시 한국의 ‘미래 인적자원’

일각에서는 다문화의 폐해를 부각하며 한민족 국가의 분열을 일으킬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개방화시대가 도래하고 국경의 개념이 흐려지고 있는 시대 흐름 안에서, 다문화주의의 확산은 자연스러운 일일 수밖에 없다.

여성가족부 통계에 의하면 2015년 기준 다문화가족은 89만 명에 달했으며, 매년 지속적으로 증가해 2020년에는 10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대한민국 전체의 2%, 우리는 이들을 ‘분열’의 시선보다는 ‘통합’과 ‘융합’의 대상으로 바라봐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손경화 센터장은 “다문화가정에 대한 사회적인식이 전보다는 부드러워졌지만, 아직은 똑같은 한 국민이라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는 못하고 있다. 여전히 이민자와 한국인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경계선이 그어져 있다”며 “그러나 지금 우리가 가야할 길은 분리가 아닌 통합이다. 연고도 없이 타국에 온 이들의 입장을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헤아려보고, 지역사회가 따뜻한 관심과 배려로 한국적응을 위한 디딤돌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문화의 자녀들이 학령인구를 지나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 또 하나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인적자원의 ‘가능성’이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인구절벽 시대를 맞을 위기에 놓여있는 가운데, 각 지자체는 인구 확보를 위해 파격적인 출산장려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847명의 결혼이민자와 그들이 낳은 852명의 다문화자녀에 대한 사회정책은 여전히 빈약한 실정이다.

손경화 센터장은 “인구는 국력이며, 이민 자녀 역시 중요한 인적자원”이라며 “그들이 쓰는 이중 언어는 글로벌사회에서 커다란 장점이 된다. 교육만 잘 받는다면 외국기업을 상대할 수 있는 핵심인력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로 다른 문화가 섞인 ‘다문화’는 ‘소통의 어려움’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다양한 문화를 바탕으로 ‘이중소통’이 가능하다는 커다란 장점이 있다.

때문에 다문화자녀들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착초기 지역사회의 뒷받침이 절실하다.

다문화자녀가 우수한 재원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다문화가정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해 안정적인 정착을 도모하고, 그에 따라 올바른 아이 양육이 이뤄질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더불어 지자체와 공공기관이 ‘미래 인적자원’을 발굴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교육프로그램을 실시해 다문화 자녀가 한국사회에 오롯이 수용될 수 있도록 도와야할 것이다.

손경화 센터장은 “다문화 자녀를 천덕꾸러기라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가진 능력을 살려줄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다문화의 가능성을 인식하고, 긍정적인 결과를 도출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가 함께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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