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권 인문학강사

김용권 인문학강사

대몽골 제국의 왕, 칭기스칸이 어느 날 신하들과 함께 사냥을 나갔다. 그런데 그날따라 종일토록 돌아다녀도 사냥감은 한 마리도 잡히지 않았다. 저녁 무렵이 되어 빈손으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그곳 지리에 밝은 칭기스칸은 서둘러 돌아가고픈 마음에 홀로 지름길을 택해 말을 달렸다.

중간에 심한 갈증을 느낀 칭기스칸은 예전에도 가본 적이 있었던 근처의 샘물을 찾아갔다. 그런데 날씨가 너무 더운 탓인지 샘물은 다 말라버렸고, 물이라곤 샘 위쪽 바위틈에서 똑똑 떨어져 내리는 물방울들뿐이었다.

칭기스칸은 하는 수 없이 잔을 꺼내 바위틈에서 떨어지는 물을 받아먹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잔에 물이 채워져 마시려고만 하면 번번이 매가 날아와 잔을 쳐버렸다. 자신이 애지중지하며 사냥 때마다 데리고 다니던 매였다. 그러나 허기와 갈증에 시달려 머리끝까지 화가 난 칭기스칸은 이유는 생각 해보지도 않고 매를 죽여 버렸다. 그런데 그 순간 평소에는 자신의 말을 잘 듣던 매가 왜 갑자가 돌변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주변을 다시 잘 살펴보게 되었는데 물방울이 떨어지던 바위틈 위쪽으로 물웅덩이가 있고 그 안에는 독사가 한 마리 빠져죽어 있었던 것이다. 그때서야 칭기스칸은 깨달았다. 자신의 매가 왜 물을 먹지 못하도록 했는지, 그리고 한순간의 분노가 일을 어떻게 그르치는지.

그 일이 있은 후 칭키스칸은 주위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다시는 분노한 상태에선 어떠한 결정도 하지 않으리라!” 분노와 관련한 인상적인 이야기 하나를 더 해보기로 하자.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의 일화이다.

플라톤이 한번은 노예 때문에 몹시 분노한 적이 있었다. 도저히 화를 주체할 길이 없었던 그는 그 자리에서 즉시 노예를 처벌하고자 했다. 노예의 옷을 벗기고 채찍질하게 등짝을 내보이라고 명령하고는 직접 자기 손으로 매질을 하려고 채찍을 높이 치켜들었다. 그런데 그 순간 자신이 분노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는, 마치 일부러 손을 들어 올린 사람처럼, 손에 채찍을 든 채 내려치는 자세 그대로 석상처럼 한참을 정지해 있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옆의 친구가 그 이유를 캐묻자 플라톤이 이렇게 대답했다. "쉽게 분노하는 사람을 나는 지금 벌주고 있는 중이네."

분노란 참으로 다스리기 어려운 감정임에 틀림없다. 위의 두 사례가 보여주듯, 심지어 위인이나 현자조차도 버거워하는 일이니 말이다. 멀쩡하던 사람도 분노에 한번 휩싸이면 쉽게 자제력을 잃고 판단력이 흐트러져 평소와는 영 딴판인 사람이 되곤 한다. 그리고 다른 때 같으면 절대로 하지 않을 행동과 말을 서슴없이 하기가 일쑤이다. 이처럼 분노는 힘이 세다.

그래서 분노는 잘 다스려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여파가 너무도 크기 때문이다. 한 순간의 분노를 억누르지 못해 작게는 자신과 집안을 망치고 크게는 나라를 위험에 빠뜨리는 경우가 어디 한둘이던가? 요사이 곳곳에서 들려오는 이른바 홧김에 발생한 사건사고들이야 굳이 일일이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분노하지 않으면 최선이고, 만일 꼭 분노해야겠다면 지금 당장이 아니라 어떻게든 나중으로 미루는 것이 상책이다. 분노는 순간폭발력은 강하지만, 의외로 지속력은 약하기 때문이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분노의 힘은 현저히 약해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는“ 분노에 관하여” 이렇게 조언했는지도 모르겠다.

“분노의 가장 좋은 해결책은 시간을 두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분노 초기의 끓어오름을 식히고, 영혼을 압박하는 어둠이 사라지거나 혹은 옅어지게 만들어야 합니다. 당신을 뒤집어놓은 것들 가운데 어떤 것들은 며칠도 아니고 몇 시간이면 약해지고, 또 어떤 것들은 완전히 사그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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