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 함께 마을과 주민을 위해 봉사하는

▲ 이길순 이장(71)과 남편 성봉채(75)씨

광양읍 억만마을에는 ‘1번 이장’과 ‘2번 이장’이 있다. 오늘의 주인공인 이길순 이장(71)이 ‘1 번 이장’이고 마을일을 적극적으로 돕는 그의 남편 성봉채(75)씨를 주민들은 ‘2번 이장’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막걸리를 들고 마을회관 문을 두드렸다. 잠시 자리를 비운 이 이장 대신 2번 이장이 주민들과 함께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억만마을은 현재 60여가구가 살고 있다. 진주 정씨가 처음 정착했다고 전하지만 정확한 입촌시기는 알수 없다. 과거에는 ‘어마정’이라고 불렀는데, 이에 대해 성봉채씨는 “마로산성의 입구가 되는 이곳을 지나던 장수들이 산성에 오르기 전 말을 멈춰 쉬었다가는 정자가 있었다고 한다. 아마도 거기서 유래 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마을에는 예전부터 효자, 효부가 많기로 소문이 났는데 마을 내에 ‘효자 정치재 비’, ‘효부 이천서 비’, ‘열녀 달성 서씨 비’, ‘효자 정운익 효행비’, ‘경산 하태호 기념비’ 등을 찾아 볼 수 있었다.

주민 한 사람은 “내가 이곳에 시집와 수십 년을 살았는데 마을이 참 많이 변했어. 예전에는 살기 좋다면 좋은 곳에 속했어. 사람들도 인정 많고. 지금은 마을에 남자는 없고 여자들만 남아있지. ‘암’과 같은 병에 걸려 세상을 저버린 이들이 많다보니 누가 여기로 들어와 살고 싶겠어? 우리야 어쩔 수 없이 뿌리 내렸으니 죽는 날까지 사는 수 밖에”라며 마을의 변화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했다.

실제로 마을 인근에는 송전탑이 설치돼 있었고 주민들은 변전소로 인한 피해가 막대함을 다시금 토로했다.

“그 당시에는 이런 피해가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어. 무지했던 거지. 하지만 인체의 피해는 물론이고 재산적 피해도 크다네”라며 “어디 이것뿐인 줄 알아? 쓰레기매립장의 악취, 비오는 날이면 억만천을 따라 흘러 내려오는 폐수. 우리는 이 안에 갖혀서 이런 문제점들을 안고 하루하루를 버텨가고 있어”라고 전했다.

‘노래교실’에 다녀온다는 이길순 이장이 돌아왔다. 주민들이 “우리 1번 이장 왔네! 왔어! 인제 2번 이장은 쉬어도 되겠구만”하고 우스갯소리를 던지며 일제히 반긴다.

이 이장은 올해로 2년차 이장직을 맡고 있는데 “마을에 워낙 나이든 사람밖에 없다보니 한 살이라도 젊은 내가 이장직을 맡게 됐다”며 “하지만 다른 마을에 비해 복잡한 이슈가 많다보니 일도 몇 배 많고 어려운 점도 많아 남편의 도움을 받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마을에 여자는 많은데 남자가 없다보니 물건을 옮기거나 힘이 필요한 일에는 남편의 역할이 크다”며 “회관에 와서 주민들 재밌게 놀아 라고 노래도 틀어주고 살뜰하게 챙기는 모습이 내 남편이지만 존경스럽다”고 덧붙였다.

마을에는 ‘통새미골’, ‘참새미골’과 ‘호랑이골’이라는 명칭과 함께 이야기들이 전해 내려오고 있었다.

이 이장은 “샘을 만들 때 나무를 통으로 짜서 넣었다해서 ‘통새미골’, 그 맞은 편에 위치하는데 물 맛이 참으로 좋다해 ‘참새미골’이라고 했느데 산비탈에 위치한 참새미골은 현재는 사라지고 없고 이야기만 전한다”고 유래를 설명했다.

‘호랑이골’에 대해서는 주민들은 “우리도 호랑이는 못 봤는데 예전에 이곳에 호랑이가 자주 나타났다고 하더라고. 나도 할아버지뻘 되는 분들한테 들었어. 억만마을 앞에서 예전 사곡교회 쪽을 바라보면 보이는 골짜기가 그 곳이야”라고 전했다.

이어 한 주민은 “과거 이야기 해봤자 속만 상하지. 지금은 다 무슨 소용인가”라며 “하지만 우리한테는 1번이장, 2번이장이 있어서 힘든 여건에서도 화합하고 즐거운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할 수 있는 것 같아, 어쩔 때는 잘라고 누웠다가 고마운 마음이 커서 잠이 안와”라고 말했다.

마을에는 벽화작업이 한창이었다. 알록달록 예쁜 색들이 벽면을 채우고 그림이 그려지고 있었다. 이길순 이장 부부는 마을회관 밖으로 나와 배웅하며 “이장직을 맡은 동안 함께 열심히 마을을 예쁘게 가꾸고 주민들의 마음이 좀 더 편안할 수 있게 돕는 일에 매진하겠다”고 말했다. 짧은 만남을 뒤로한 채 돌아오는 길, 마을의 여러 문제들이 해결돼 주민들의 마음도 벽화처럼 알록달록 예쁜 색들로 채워지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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