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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이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라종렬 광양사랑의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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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3.20  09:2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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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종렬 광양사랑의교회 목사

조선의 정치 경제 군사 문화등의 사상적 기틀을 잡았던 정도전이 꿈꾸던 나라는 비록 왕정시대였으나 백성이 주인이 되는 나라였다. 그래서 왕 한 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되지 않도록 했다. 그렇게 될 경우에 왕 한 사람의 능력과 성향의 여하에 따라 나라가 휘청거릴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러한 왕을 견제 및 협력하는 이들로서 재상들의 역할이 중요했다. 왕이 잘하는 일은 적극 협력하지만 왕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은 재상들이 협력해야 했고, 또 잘못할 때에는 재상들이 깨어서 나라를 지키도록 한 것이다.

그래서 왕과 재상은 서로 견재와 협력 그리고 경연을 통해서 어느 한편으로 권력이 집중되지 않도록 균형을 이루어 백성이 잘 살게 하는 일을 감당해야 했다.만일 왕이 문제가 되면 재상이 깨어야하는데 그런 재상들마저도 부패하고 제역할을 못할 때에는 결국 깨어있는 백성들이 일어나게 되었다. 돌아켜 보면 조선의 역사는 왕정으로서 왕들이 주도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명맥을 유지하고 지키고 세워온 것은 결국 깨어있는 백성들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대한민국에 언제 진정 나라와 국민을 생각하던 대통령이 있었을까? 그런 이가 근자에 있었어도 우리는 살아 생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떠나보냈다. 유신독재와 군부정치 시절 대의정치의 선두에 있던 국회의원들은 정권의 하수인으로 제역할을 하기보다는 자신의 잇권 챙기기에 급급해서 독재자를 견재하고 비판하기보다는 제 한몸 건사하기도 바빴으며 대부분은 권력의 정당성을 입증하는데 이용당하고 말았다.

정치깡패와 정경유착과 부정부패의 고리들은 이미 친일의 족보위에 세워저 정통성을 상실한 정치인에게는 자신의 치부를 가리고 정당성을 찾기 위해서는 반공이데올로기에 편승해서 빨갱이를 양산하고 그들을 공동의 적으로 세워서 자신의 치부를 가리고 세를 규합하여 우민위에 군림하던 일들을 이어온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간파하고 민이 주인이 되는 나라를 세워야 한다고 깨어있던 민중은 남녀노소를 무론하고 기꺼이 저항했다. 4.19가 그랬고 5.18이 그랬으며 6월항쟁도 그랬다.

우리 현대사의 변곡점에는 늘 정치 지도자와 국회의원이 아니라 깨어 있는 민중들의 단합된 힘이 발휘된 때였다. 이번에 진행된 탄행 정국의 종지부를 찍게 된 것도 그동안 있었던 어떤 혁명보다 가장 합법적으로 가장 이상적으로 그리고 가장 질서있게 진행된 깨어있는 민중의 승리였다.

그런데 조선과 대한민국의 이러한 정치사를 고스란히 경험하고 있었으면서도 여전히 그 틈새에서 흔들리지 않고 버티고 있는 조직이 있으니 바로 기업과 종교다. 거의 모든 권한을 다 가진 왕회장과 이를 보필 또는 견재하고 지도 감독해야 하는 이사회나 재단등이 있는데 돈의 위력앞에 여지없이 양심도 법도 도덕도 헌신짝 버리듯 버린다. 자신들의 배를 불릴 수만 있다면 법위에 군림하고 법을 집행하는 검찰이든 법원이든 국회의원이든 얼마든지 돈으로 매수해서 민중의 고혈을 착취해서 탐욕의 배를 채워간다. 그런 기업의 농간에 정치인도 검찰도 심지어 민중들도 끌려가고 만다.

이로서 정경유착의 골을 깊어 갔고, 기업의 장학금으로 자란 정재계와 검찰과 법을 집행하는 이들까지도 장악, 매수되어 있다는 이야기들이 공공연하게 전해진다.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기어이 긁어 모은 불로소득의 재산들을 사회에 환원하기 아까워 탈세를 위해 정경유착의 고리를 이용하다가 결국 실체가 탄로나고 말았는데도 여전히 철면피처럼 부인하고 있다. 그런 기업이 얼마나 갈 수 있을까? 아니 세대교체가 되면 그 명맥을 유지할 수 있을까? 대기업의 사원들은 자신들이 우선은 기업의 혜택을 보고 있기에 밥줄이 끊길까봐 부정과 부패를 알고 보면서도 말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러한 기업들도 결국 구성원중에 누군가 깨어 나지 않으다면 결국엔 함께 공멸하는 길로 가는 것이다.

90% 이상은 100명 미만의 성도를 가지 교회이고 나머지 5-7%가 100명 이상이고 3%도 안된 미미한 비율의 수천의 성도를 가진 교회들이 있다. 이 교회들은 대부분 대한민국 정치현실의 구조와 맥을 같이 한다. 소위 담임목사라는 사람과 이들을 협력하도록 세워진 장로회나 위원회 그리고 성도들까지 크게 세 부류의 구성으로 조직되어 있다. 그러나 사실 성경에서 말하는 조직의 형태는 지금처럼 많은 권한이 집중된 담임목사제가 아니라 장로회를 통해 조직된 복수의 지도력을 가진 조직이었다. 그래서 지도력이 편중되지 않고 함께 협력하면서 교회를 세워가는 형태이다.

역시 복수의 지도자들이 잘 이끌어간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이들마저도 부패한다면 결국 구성원인 성도들이 깨어나야만 교회개혁은 본질을 잘 회복할 수 있을 것인데 작금의 교회의 현실은 과도기에서 정치현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요지부동 기득권과 전통위에 안주하려고 하고 있다. 이미 세상은 그런 구조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데 교회의 조직은 이대로 얼마를 더 유지할 수 있을까? 그 안의 깨어난 성도들은 개혁을 위해 몸부림치고 어떤 이들은 이탈해 있는 형국이 진행중이다.

정치, 경제, 종교 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다양한 공동체의 나름의 바람직한 생존 유지를 위한 그림을 그리고 있지만 위기와 갈등이 생길 때는 자체 정화 능력이 부족하다. 그래서 결국 가장 저변에서부터의 저항과 몸부림이 부패한 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새로운 시대를 열수 있게 한다. 그래서 깨어 있는 민중의 힘이 나라와 공동체들을 바로 세워가는 역사가 여전히 현재 징행형임을 보게된다. 우리 현대사의 단면을 보면서 지금 소속된 공동체의 정화와 건강과 유지를 위해서 고민하게 한다. 깨어있는 민중으로 서고 그런 이들을 세우는 일이 얼마나 귀한것인지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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