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시식지’와‘ 전우치’ 이야기 속으로

▲ 태인동 궁기마을 김재령 통장

태인동의 궁기마을에는 우리나라처음으로 김을 양식한 김여익 (1606~1660)을 기리기 위해 세운 ‘김시식지 역사관’이 자리하고 있다. 김여익은 병자호란 당시 의병을 끌고 청주로 가던 중 인조임금의 청나라 항복 소식을 듣고 통곡하며 낙향했고 3년간을 고향을 떠나 배회했다. 그러던 중 광양현에 머물게 됐고 밤나무 등을 이용한 김 양식법을 창안해 널리 보급하게 됐다고 전한다.

궁기마을의 김재령 통장(70)은 “우리네 밥상에 자주 올라가는‘ 김’을 식용으로 한 것은 천 년 전쯤으로 추정하고 처음 김 양식을 시작한 것은 370여년 전으로 바로 이곳에서 시작됐다”며“ ‘김’이라는 이름도 김여익의 성씨를 따서 붙인 것으로 전해온다”고‘ 전라남도 기념물 제 113호’로 지정된 김시식지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태인동 삼봉산 동쪽에 위치한 이 마을은 예로부터‘ 굼턱’이라고 불렸는데, 이는‘ 궁 터’를 뜻하는 말로 옛날 궁에서 관리하던 곳이었음을 유추해본다.

김 통장은“ 전설에 따르면 전우치가 태인도에 궁궐을 짓고 성을 쌓았다고 하는데, 궁궐자리가 바로 우리 마을인‘ 궁기’이고, 성터는‘ 성재’, 성 아래 동네가‘ 장내’마을”이라며“ 북치고 나팔 불고 전우치가 놀던 섬이라 전하는 북섬, 서취도, 모래섬, 넉섬, 애기섬 등은 각각‘ 도촌’,‘ 장내’,‘ 용지’마을과 그 앞의 섬들이었다”고 말했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예로부터 궁기마을에 전해 내려오던 이야기들을 나눴다. 비현실적인 요소들이 곳곳에 녹아있는 이야기들이지만, 그 속에 이곳에 뿌리내리고 살아온 이들의 삶과 애환 이 겹겹이 쌓인 세월이 스며들어 있었고, 어느새 한 마을의 역사가 돼있었다.

현재 궁기 마을에는 50여 가구가 살고 있으며 주민들의 대부분은 농사를 짓는다. 젊은이들은 대부분 객지로 나가고 마을에 남은 주민들의 대다수는 65세 이상의 노인들이다. 하지만 마을 출신의 30세 이상부터 60세 미만의 마을 출신 인재들이 모여‘ 궁기회’를 조직했고 마을 봉사는 물론이고 마을 자체행사 추진 등 궁기마을의 발전을 위해 이바지하고 있다.

이 마을에서 9년 차 통장직을 맡으며 주민들의 신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김 통장은“ 어느 마을보다 주민들 간의 화합이 잘 되고 가족과 같이 지내다 보니 다툼도 없고 일을 추진하는데도 큰 어려움이 없었다” 며“ 주민들의 성품이 곱고 무엇보다 생활력이 강해 생활이 빈곤하거나 어려운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부촌’”이라고 말했다. ‘이 참에 우리 통장 자랑 좀 해야겠다’며 주민들이 앞 다퉈 나서 김 통장에 대한 그동안의 평가를 늘어 놓았다.

주민 한 사람은“ 마을에 농기계 보관 장소가 마땅치 않아서 참 애를 먹었는데 작년에‘ 태인동 발전기금’을 지원받아 건물을 지어 보관하고 있어. 뿐만 아니라 마을 안길도 포장하고. 이런 숙원사업 해결에 많은 관심을 갖고 발 빠르게 움직여나가기 때문에 우리는 고맙기만 하지”라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은“ 농약 방에 한 번나가더라도 주민들 중에 혹시 필요한 것이 있는지 일일이 확인해서 사다가 직접 가져다주기까지 하고. 참말로 마음도 좋고 일을 잘해. 그러니깐 주민들이 계속 통장직을 맡아달라고 부탁하고, 지금까지 하고 있는 것 아니겄는가”라고 덧붙였다. 막걸리와 함께‘ 궁기마을’의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주민들은 취미생활로 인근의 게이트볼장에 다니는 데, 스포츠와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김 통장은“ 나이를 먹을수록 삶에서 건강을 지키는 활동이 최고이자 최선이라고 할 수 있다”며“ 인근에 스포츠시설이 잘 갖춰져 많은 주민들이 이용하고 있지만 거동이 편치 않은 이들은 경로당에 모여 함께 할 수 있는 건강 프로그램이 더욱 활성화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마을 주민들은 인터뷰 중간 중간에, 20여 년간 자매결연을 통해 마을의 곳곳을 수리해 주고 청소, 풀베기 등 봉사활동을 펼쳐준‘ 광양 제철소 화성부’에 대해 감사의 인사를 전하곤 했다. 앞으로도 자매 업체와의 끊이지 않는 정을 이어가도록 함께 노력하겠다고 했다.

김 통장은 막걸리 잔을 채우고 “이 마을에서 나고 자라 지금껏 주민들과 동고동락하며 평생을 살아왔다. 그들에게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살피는 것은 가족처럼 생각하는 마을 주민들을 위해 내가 해야 하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힘닿는데까지 노력해 마을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사업들을 적극 추진해 나갈 것”을 약속했다.

저작권자 © 광양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