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만 마주쳐도 부끄러웠던, 그 시절

누구라도 고이 보관된 소중한 시간을 지면에 싣고 그 안에 담긴 추억을 함께 나눌 수 있도록‘ 광양시민신문’은 <아날로그의 추억, 순간을 바라보다>를 통해 기성세대에게는 낭만에 젖은 추억을, 젊은 세대에게는 아날로그적 감성을 선사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3월에 군대 휴가 나와서 선을 봤는데 복귀전에 신랑이 한 번 더 찾아왔어. 밥을 차려 주는데 부끄러워서 얼굴도 못 보고 상만 얼른 내주고 다시 돌아 나왔지. 그리고 10월에 혼례를 올렸어” 5년 전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 그와의 추억이 담긴 흑백 사진 한 장을 꺼냈다. 다시 그날들을 추억하고 있자니 스무 살 새색시가 된 것 마냥 수줍기만 하다.

서연순(81)씨는“ 사진 봐서 알겠지만, 우리 남편 인물이 참 좋지? 처음 봤을 때부터 우리 엄마는 사위가 마음에 쏙 드셨나봐. 난 부끄러워서 눈도 못 마주치는데 잘 생겼다면서 그렇게 좋아하시고 아끼셨지.

군인이라 결혼하고도 2년 동안은 휴가 때나 잠깐 볼까 남편과 떨어져 지내야 했어. 홀로 몸이 편찮으신 시어머니 모시느라 어려움이 많았지”라고 말하며 남편과의 첫 만남 그리고 신혼생활을 떠올렸다. 이 사진은 남편의 동갑내기 친구들과 계모임에서‘ 구례 화엄사’로 여행 가 찍은 것으로 50여년이 훨씬 지났다.

서 씨는“ 예전에는 여행가는 게 쉽지 않아서 이런 기회가 생기면 특별히 신경 써서 준비를 하곤 했어. 한복도 새로 해 입고 말이야. 보통 아들 계모임에서 여행을 가면 시어머니들이 동행 하곤 했는데 이땐 둘이 다녀오라고 해서 얼마나 좋았는지”라며 이 날을 추억했다.

슬하에 자식 넷을 둔 서 씨는 자식들만큼은 제대로 교육시키고 싶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올곧게 자라준 자식들은, 남편이 떠나고 난 빈 자리에서 듬직한 버팀목이 돼주고 있다.

서 씨는“ 이렇게 사진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잊고 싶지 않은 순간들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야. 그리고 되살아나지. 얼굴만 마주쳐도 부끄럽던 그 시절. 그 마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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