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희 광양보건대학교 교수

김광희 광양보건대학교 교수

불확정성의 원리로 잘 알려진 독일의 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는 자신이 일생 동안 몰두해온 양자물리학 연구를 회고하며 1969년 ‘부분과 전체’라는 이름으로 자전적인 글을 썼다. 세상의 물질적 구조(전체)를 원자(부분)와 양자역학(규칙)으로 설명해냈던 하이젠베르크가 자신의 필생의 연구를 이런 제목으로 은유해낸 것이 아닌가 싶다.

물질계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이 부분과 전체의 관계로 치환될 수 있을 듯하다. 고대 그리스의 자연철학 이래로 부분과 전체는 세상을 보는 도구 관념이었다. 광대한 우주도 크고 작은 별들과 우주 물질의 총체이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도 인간과 세계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의 총합이다. 심지어 햇빛마저도 단일한 파장이 아니다. 프리즘을 통과한 빛은 빛과 어둠이라는 단순성 속에 감추고 있던 제 정체를 무지개색의 다양한 파장과 입자로 드러낸다. 어디 이뿐이겠는가. 인간을 비롯한 삼라만상 모든 것이 실은 개별적인 부분들이 내적으로 일정한 규칙에 따라 질서 있게 조직된 전체로서 존재한다.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오케스트라의 멋진 음악도 사실은 개별 악기들이 내는 소리의 조화로 이루어진다. 악기의 크기나 악곡 전체에서의 연주 시간과 상관없이 모든 악기와 연주자가 곡 전체를 완성시키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인간 세상이란 이처럼 질서 있는 다양성이 그 본연의 모습이다.

요즘 나는 대학에서 인문학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인간 사유의 본질과 언어 현상이 강의의 중심 주제이다. 이 강의에서 ‘호모 로쿠엔스(말하는 인간)’의 언어능력을 음성학적 측면에서 접근하다보면 인간의 발성기관인 ‘후두’를 세밀하게 관찰하는 일이 필요하게 된다. 후두는 설골이라는 작은 뼈와 9개의 연골, 대여섯 개의 미세 근육들로 구성되어 있어 인체 전체로 보면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이 후두의 작은 연골들과 성대를 비롯한 근육들이 신비로울 만큼 정교하게 움직여 다양한 말소리와 노랫소리를 조율해낸다.

연인들끼리 나누는 작은 사랑의 속삭임이나 수백 명의 병사를 호령하는 장수의 함성, 그리고 파바로티가 부르던 감동적인 아리아 ‘네순 도르마(Nessun dorma)’도 모두 우리 몸에 후두라는 기관을 사용하여 실현된다. 후두가 비록 작은 부분이지만, 쓸모로 보면 견줄 게 없을 정도로 인간에게는 중요한 기관이다.

만약 후두를 구성하는 작은 연골 중 하나라도 사라진다면 인간은 말소리를 잃게 될 것이다. 말을 잃는다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고작 1센티미터도 안 되는 작은 연골들의 조화가 이 정도일진대, 이 세상에 하찮게 여겨도 좋을 존재가 어디 있겠는가. 존재하는 모든 것, 심지어 과거 한 순간 있다가 지금은 사라진 것들까지도 우주와 인간계 전체를 구성하는 작지만 소중한 부분들이다. 하물며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가치야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대선이 코앞이다. 각 당의 후보마다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뉴스 화면 속에 등장하는 후보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평소에는 눈길도 제대로 주지 않던 재래시장을 찾아 사진 찍기에 바쁘다. 물건을 파는 할머니의 거칠고 마디 굵은 손을 덥석 잡기도 하고, 엄마를 따라 나온 아이를 안아 올리기도 하면서 지지를 호소한다. 출마의 변을 밝힌 후에는 으레 국립묘지를 찾아가고, 광주민주영령 앞에 고개를 숙인다. 이런 행보의 목적과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이 순간이 각 후보들에게는 전체를 이루는 작은 부분들에 대해 새삼 생각해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우리 사는 세상은 바로 이런 어린 아이들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또 이 땅에 먼저 살다간 사람들로부터 지금 우리들까지, 작은 분자들이 모여 이룬 다양성이 질서 있게 실현되는 곳이다. 그러니 각 후보들은 주권자들을 만날 때마다 우리에게 그 어떤 것도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음을 깨닫는 기회를 얻기 바란다. 또 한 가지, 전체의 위상만을 강조하느라 부분의 가치와 역할을 무시하게 되면 모두에게 고통과 위기를 안겨줄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인류의 역사와 우리의 현대사가 이점을 엄중하게 교훈하고 있지 아니한가.

생명체를 이루는 작은 부분들을 분리시키면 종국에는 생명 자체를 잃을 수 있다. 선거를 치르는 동안 우리 전체를 조각으로 분리시키는 일 없이 사회의 각 부분과 요소가 질서 있는 전체로 융합될 수 있기를 바란다. 대통령이란 바로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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