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아람 기자의 호루라기

다압면 신원삼거리를 지켜오던 신원반점이 17년의 역사를 끝으로 사라졌다. ‘양’ 많기로 소문난 집. 4년 전, 이 집을 취재한 적이 있었다. 허름하다. 그게 첫 인상이었다. 상 위로 올라온 짜장면과 짬뽕을 본 후에는 “와, 이게 뭐야?”라며 입이 쩍 벌어졌다. 면이 불까 노심초사 열심히 먹었지만 불어오는 배와는 다르게 짜장면은 좀처럼 줄지 않았다. 특별한 맛은 없었다. 하지만 짜장면에서 ‘옛’맛이 났다. 전혀 느끼하지 않았다. 탕수육 맛은 또 어떤가. 고기가 큼직하고 밀가루는 아주 얇은 것이 입에 착착 감겼다. 짜장면을 젓가락에 돌돌 말아 탕수육과 함께 먹으니 금상첨화였다.

취재를 하고 온 뒤 허름하고 옛맛을 풍기던 신원반점이 생각났다. 짜장면 맛이 아니라 신원반점이 주는 향수 때문이었다. 취재 당시 신원반점 이형규 사장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투는 신기했다. 전라도와 경상도 사투리가 골고루 들렸다. 이 사장이 어릴 적에는 다압에 학교가 없던 시절이라 초‧중‧고를 하동에서 다녔기 때문이다. 우람한 몸집에 한 마디 툭툭 내뱉는 솜씨가 짬뽕 국물처럼 화끈했던 이 사장. 신원반점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찾았다. 섬진대교를 건너 하동사람, 옆 동네 다압면 사람, 월차를 내고 달려온 사람까지 아주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신원반점이 양이 많았던 이유는 배를 곯는 사람들이 없길 바라서였다. 인근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나 먼 곳에서 다압면이나 하동으로 공사를 하러 오는 일꾼들에게 든든한 한 끼를 주고 싶었던 것이다.

스테인리스 대접에 가득 담겨있던 짜장면과 매콤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시키던 넘치기 일보 직전이었던 짬뽕. 반찬이라고는 양파와 춘장, 김치가 전부였지만 짜장면 한 입 가득 오물거리면 행복을 다 가진 듯 행복했다. 맛이 크게 중요하게 느끼지 못한 이유는 신원반점은 ‘맛’보다도 ‘마음’ 때문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매화꽃이 피던 지난 3월에도 신원반점은 짜장면을 먹으러 온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뤘었다. 그것이 신원반점의 마지막 모습이 될지는 몰랐다.

얼마 전, 취재차 다압면을 찾았다. 이정표처럼 익숙했던 신원반점 간판은 온데 간데 사라지고 처참하게 철거돼 있었다. 사라졌다는 이유 하나로 마음이 아팠다. 근처 슈퍼를 찾아 신원반점이 다른 곳으로 옮겨졌냐고 물으니 “아니, 이제 안 해”라는 쓸쓸한 대답이 돌아왔다. 신원반점 뿐 아니고 인근 슈퍼도 곧 철거에 들어간다. 연약지반이라 위험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씁쓸했다.

이 사장에게 직접 이야기를 듣고 싶어 다압 주민들을 찾아 어렵사리 이 사장의 연락처를 알아냈다. 하지만 매정한 수화음만 울릴 뿐 사장 목소리는 끝내 들을 수 없었다. 신원반점에 대해 두 가지 소문이 돌고 있다. 슈퍼 주인 말대로 이제 그냥 쉬고 있다는 것, 또 하나는 다압면 한 마을에서 작게 짜장면 가게를 차렸다는 것이다. 어찌됐건, 17년 동안 신원 삼거리에서 짜장면 한 그릇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든든함을 선물해준 신원반점은 이제 기억 속에만 존재하게 됐다. 사장님의 특유 사투리가 그리고 곱빼기를 시키면 절대 안 되는 그 짜장면집이 지금 이 순간에도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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