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아람 기자의 호루라기

좁고 딱딱한 의자에 앉았다. 메뉴판을 보자마자 머릿속에 떠다니는 것은 물음표. 결국 한마디를 툭 던진다. “무슨 떡볶이 가격이 이래?”

어른(?)들과 함께 한 떡볶이 집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길고 매끈한 떡을 기호에 맞게 잘라서 먹는 떡볶이 집. 문을 열고 들어간 떡볶이 집에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연령대도 다양했다. 학생들부터 직장인들까지. 포장마차에서 먹던 떡볶이와 이 집의 다른 점은 ‘토핑’이다. 떡볶이와 차돌박이나 오징어, 향긋한 깻잎과 순대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메뉴가 준비돼 있다. 메뉴판만 봐도 군침이 도는데, 함께 동행 했던 분들은 ‘이게 밥이 되나’는 눈치다.

센스 없이 이런 곳을 추천했냐는 말을 듣기 전에 선수를 쳤다.

“여기가 요즘 트렌드예요. 이게 다 경험이죠”

보기만 해도 쫀득함이 살아있는 듯한 기다란 떡은 순대와 깻잎 아래 숨어있었다. 집게로 긴 떡을 집어 올려 가위로 잘라나갔다. 달짝지근한 소스에 적당히 밴 떡볶이 맛은 최고였다. 세트 메뉴로 함께 나온 감자튀김도 이질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함께 동행한 어른들은 말없이 떡볶이를 먹었다. 맛은 그렇게 나쁘지 않은 모양이었다.

라면사리와 야끼만두까지 야무지게 먹은 일행에게 “이제는 밥을 볶을 차례”라고 말을 던졌다. 돌아오는 대답은 “여기에 밥을 어떻게 볶냐”는 것이었다. 또다시 유행어처럼 반복했다.

“트렌드 라구요”

유엔이 지난 2015년 4월, 변하고 있는 인류의 체력과 평균수명 등을 고려해 인간의 생애주기를 다섯 단계로 새롭게 구분했다. 0~17세는 미성년자, 18~65세는 청년, 66~79세가 중년, 80~99세는 노년, 100세 이후는 장수노인이다. 결국은 스물도, 마흔도, 예순도 ‘청년’인 시대다. 함께한 어른(?)들은 모두 나와 같은 ‘청년’인 셈이다.

점심으로 떡볶이를 먹느냐 김치찌개를 먹느냐는 ‘취향’일 수 있다. 하지만 한 번쯤은 젊은 사람들이 즐겨먹는 ‘트렌드’를 경험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다. 경험을 해본 자가 하는 말과 하지 않은 자가 하는 말의 질량은 엄연히 다르다. 게다가 이제는 예순까지 ‘청년’인 시대라지 않는가. 이유 불문하고 청년이라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트렌드’를 경험해 볼 의무가 있다.

달달한 떡볶이 소스 위로 하얀 쌀밥과 잘 익은 김치가 고루 섞였다, 고소한 참기름, 게다가 볶음밥의 클라이맥스인 짭조름한 김가루까지 더해졌다. 냄비에 볶음밥이 살짝 눌어붙을 때 불을 꺼주고 맛있게 먹을 일만 남았다.

떡볶이 집에는 손님이 끊이질 않았다. 이렇게 많은 손님을 끌어들이는 매력은 도대체 무엇일까 고민에 빠졌다. 떡볶이가 주는 친근함, 기호에 맞게 떡을 잘라먹는 재미와 다양한 메뉴를 고를 수 있는 즐거움일까.

지난 10일 새 정부가 출범했다. 새 정부가 떡볶이 집 같은 분위기가 되면 어떨까. 국민들의 신뢰가 쌓여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믿음이 끊이질 않기를, 대통령이 주는 친근함과 현 사회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해결해주는 고마움까지 더해지기를 바란다. 사회에 대한 변화를 갈망한다면 자기 자신부터 변화시켜야 한다. 민주주의에서 국민은 그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 진짜 ‘트렌드’는 모두 자기 자신 안에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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