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다툼·욕심’ 없는 삼무(三無)마을

 

광양시에는 280여개의 마을이 있으며, 각 마을 마다 고유의 특성과 수려한 자연경관을 갖고 있다. 시민신문은‘ 이장님 막걸리 한 잔 하시죠!’를 기획해 직접 지역내 마을을 찾아다니며각 마을의 이장님을 만나 뵙고 생생한 마을의 소식과 각 마을의 보석 같은 숨겨진 이야기,아쉽게 잊혀져가고 있는 이야기, 골목과 토담을 넘어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을 담아내며 기록한다. <편집자 주> 막걸리 협찬: 광양주조공사

“대문이 뭔 필요가 있어~ 다들 가족같이 믿고 사는디. 대문을 다는 집이 있으면 그게 더 이상한 꼴이야."

우리 마을에서는 '한동 댁’과‘ 본동 댁’으로 불리는 이들은 내게 친절하게 마을에 대문이 없는 이유를 설명해 줬다. 이들은 옥룡면 선동마을에서 나고 자라 같은 동네에서 배필을 만났고, 평생을 이곳에 뿌리박고 살았다. 때문에 그렇게 불린다고 했다. 그들은 일평생을‘ 대문 없는 집’에서 살아왔다.

신기하기도 하고 낯설기도 한‘ 선동마을’의 이색 문화를 감상하며 심각한 것은 나뿐이었다. 범죄에 노출된 적은 없는지, 안전에 대한 염려는 없는지 꼬리를 무는 질문에 주민들이 손 사레를 치면서“ 집에 가져 갈 것도 없고, 가져가면 어쩌겄는가. 다 내 식구들인디”라고 웃어넘겼다.

이어“ 없는 것이 어디 대문뿐인 줄 알아? 이 사람아~ 다툼도 없고 욕심도 없는 사람들만 모여 사는 곳이 우리 마을이야. 옛날에는 선인(仙人)이 사는 마을이라고 했잖아. 그래서 우리 마을이‘ 선동’이라고 이름붙여 진거야”라고 말했다.

이렇게도 유쾌한 이들이 모여 사는 이 마을에서 3년차 이장직을 맡고 있는 김근식(47) 이장도 이 마을출신이다. 그들과 경로당 앞의 평상에 둘러 앉아 시원한 수박에 곁들여 막걸리를 마셨다. 서늘한 바람을 타고 곳곳에 숨겨진 마을의 역사와 추억들이 내 앞에 놓였다.

김 이장은“ 옛날에는 마을에 주수입원이‘ 밤’이었어. 그 시절에는밤 가격도 좋았고. 하지만 10여 년 전부터 밤나무 대신‘ 매실’을 심었지. 또 어르신들이 연로해서 이제 밤을 하는 것은 불가능해. 대신‘ 고로쇠 약수’,‘ 고사리’ 등을 하는데 이것도 수입원이 될 만큼은 못 해”라고 말했다.

함께 자리한 이정수(59)씨는“ 고로쇠 철이 되면 마을로 사람들이 찾아왔지. 집집마다 손님을 받았는데 한 집에 방이 2-3개뿐이니. 손님 받고 나면 정작 집 주인들은 부엌에서 자야했다니까”라며 그 시절을 떠올렸다.

마을에는 현재 30여 가구가 살고 있으며 이전에는 이 지역에 절이 있었다고 전한다. 마을에는 부녀들이 목돈을 마련하기 위한‘ 쌀계’가 있었는데 현재는 사라졌다. 하지만 여기에도 많은 추억이 서려있다.

주민 한 사람은“ 체에다가 순번을 써서 제비뽑기를 하거든. 십여명이서 한 사람당 쌀 한푸대씩을 내서 돌아가면서 타 먹는데. 계 타는 날에는 또 쌀을 한 바가지씩 퍼내서 그 거로 술사고 음식해서 마을 사람들끼리 먹고 놀고. 지금은 쌀값이 폭삭 주저앉아서 그렇지 옛날에는 쌀 열푸대 받으면 그걸로‘ 3정(현재 9천평 정도)’ 크기의 논을 샀어”라고 말했다.

마을에는 오래된 이야기만큼이나 귀중한 문화유산들이 산재해 있었다. 특히 전라남도 시도유형문화재 제182호로 지정된‘ 송천사지회은장로비’는 1677년에 새워졌다‘.

송천사’는 도선 국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 오는 데 오래전 폐사돼 유구가 거의 없다. 하지만 다행하게도 나한전지라 전해지는 건물지 앞의 개울가에 남아있는 회은장로비가 그 흔적을 대신하고 있다. 비문은 조선 후기 시문에 능했던 백곡처능이 지었고 글씨는 이우가 썼으며, 회은의 출생과 출가 후의 행장과 승장으로서의 활동, 그리고 그의 법손들이 그를 기념하는 비를 세우게 된 사실 등이 기록돼 있다. 이밖에도 마을의 아래 산기슭에는 송천사지 송백당부도와 일명부도 응암당 부도 등 3기가 있다. 이 부도에도 얽힌 이야기가 많다.

옥룡면 선동마을 김근식이장.

김 이장은“ 어르신들이 말씀하시는 걸 들어보니 과거 일제시대에 일본군들이 부도 밑에 보물이 숨겨져 있다고 믿고 부도를 치우고 파내는 등의 만행으로 탑이 흩어져 나뒹군 채 긴 시간 방치 됐다고 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마을 사람들이 힘을 모아 예전의 모습으로 복원 간직했는데 그것이 현재의 모습”이라며 “하지만 일명부도의 윗부분에는 ‘청룡’모양의 석재장식물이 있었는 데 오래전 도난당해 주민들의 상심이 크다”고 밝혔다.

이정수 씨는“ 저 부도 덕분에 우리 이장이 태어난 것”이라고 말하자 주민들이 깔깔깔 한바탕 소리 내 웃었다.

이어“ 마을 어른들이 힘을 보태 모래를 옮기고 새끼를 꼬고 나무를 대서 부도를 복원할 때 나는 9살이라 그 옆에서 보고만 있었어. 그때 어른들이 우리 김 이장 아버님한테‘열심히 힘쓰면 아들 낳을 것’이라고 했고, 정말인지 딸 일곱인 집 막둥이로 우리 김 이장이 태어났어”라고 말했다.

주민들은“ 고로쇠정제창고도 만들고 회관부지도 닦아놓고 마을길도 깔고. 주민들뿐만 아니라 어딜 가도 우리‘ 선동이장’ 칭찬이 자자해. 안 태어났으면 우리 서운해서 어쨌을까몰라”하며 막걸리 잔을 부딪쳤다.

막걸리 잔을 비운 김 이장은“ 앞으로도 남은 기간 동안 마을에 변화와 발전을 위해‘ 선동의 지킴이’가 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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