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아람 기자의 호루라기

총학생회 시절, 알고 지내던 선배가 있었다. 참고로 선배는 남자다. 대학 졸업 후에도 한두 번씩 우연히(?) 만나서 밥을 먹기도 하고 커피를 마시기도 했다. 이야기도 잘 들어주고 후배들에게 밥도 잘 사주는 ‘착한 선배’로 머릿속에 각인됐다.

과학을 가르치는 교사를 꿈꿨던 선배는 임용을 준비하며 학원 강사로 일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필리핀으로 떠났다. 목적은 알지도 궁금하지도 않았다. 내 핸드폰에는 그 선배의 번호는 없었다. 나와는 딱 그런 사이였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다행스럽게 느껴지는 순간이 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한 사건이 하나 일어났다. 사람일은 정말 모른다더니 옛말 틀린 게 하나 없다.

우연히 보게 된 ‘성범죄자 알림e’에서 익숙한 몽타주를 마주하게 됐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사건과 사고는 항상 함께 공존한다. 지난주 월요일 내 심장은 또 ‘덜컥’ 내려앉았다. 관내 공직자가 부하직원을 성추행한 것이다. 타의 모범을 보여야할 ‘공직자’가 범죄를 일으킨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조치’였다. 사건 발생 후 최대한 빨리 행위자를 조사하고 피해자는 보호해야했다. 하지만 시는 행사로 인해 다음날 행위자를 불러 조사를 했고, 가해자의 억울한 부분이 있을 수 있으니 신중히 진행하는 게 맞지만, 인사조치가 신속히 이뤄졌다고 했다. 문장이고 내용이고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다.

공무원노조는 반발했다. 노조는 “사건 발생 이후 노조의 문제 제기에도 10여일이 지나도록 시 집행부는 안이한 대처로 일관하고 있다"며 "노조는 시의 이 같은 태도를 규탄하고, 철저한 진상 규명과 더불어 직원의 인권 보호에도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직장 내 성폭력이 근절되려면 제도 변화가 중요하지만 권력관계부터 변화시켜야 한다. 변화의 가장 좋은 약은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는 것이다. 만약 내 딸이 이런 일을 당한다면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의 에필로그는 내가 하면 친밀감 남이 하면 성폭력이라는 것이다. 결국, 뭐든 내가 하면 다 용서가 되는 세상이다.

직장 내 성희롱 예방 교육은 일회성밖에 안 된다. 성희롱과 관련해 어떤 매뉴얼이 있는지 물으면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미지수다.

성폭력과 관련한 여러 방책들이 있지만,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파다하다. 심지어 관련 시설마저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경우도 있다. 꺼진 불도 다시 보듯 시설과 제도를 다시 보고 재점검하고 살펴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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