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째 덕양탕 지킴이 박순현(64)·안종남(60) 부부

덕양탕에 찾아드는 반가운 손님
한 달에 한 번 수요일은 장애인의 공간

대단한 일은 하지 않았다는 마인드 자체가 이 부부가 가진 ‘대단함’

왼쪽부터 안종남(60)박순현(64)· 부부

“대단한 일도 아니여~뭘 이렇게 카메라까지 메고 와~”

광양읍 덕례리에 위치한 덕양탕. 이곳을 운영하고 있는 박순현(64)·안종남(60) 부부가 최근 장애인들의 목욕봉사를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무료로 장소를 제공해 이웃들에게 훈훈한 감동을 전해주고 있다.

“정말 아무것도 한 것도 없는데, 쑥스럽구만”이라며 계속 손사래를 치다 목욕탕 안으로 다시 들어간다. 몇 초 뒤 안종남 씨는 분홍색 플라스틱 컵에 얼음 동동 띄워 물 한 잔을 내민다. 꼴깍꼴깍 목 뒤로 넘어가는 시원한 물 한 줄기가 더위를 내쫓는다. 시원하고 달다. 별거 아닌 그냥 물 한 잔이지만, 누가 어떻게 주느냐에 따라 ‘맛’과 ‘기억’이 달라진다.

장애인 목욕 봉사를 위한 장소 섭외를 하러 다닌 한 사회단체도 “죄송하지만, 제공이 불가능합니다”는 뜨거운 더위만 맛보다 안종남 주인의 “그럽시다, 제공해드릴게요” 한 마디가 이 얼음물처럼 달았을까.

덕양탕의 안주인을 맡고 있는 안종남씨는 “아니, 도대체 어떻게 알고 온 거여? 봉사단체 관계자한테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그라고 단단히 주의를 줬건만”이라며 “기자 양반이 날 좀 봐. 어디 나가서 봉사를 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고, 내가 못가니까 그럼 내가 할 수 있는 것들 중에서 최대한 활용을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제공을 하게 된거지”라고 머쓱해했다. 부부의 행동 하나하나가 곧 ‘얼음 물’ 같다.

부부는 지금까지 남을 먼저 배려해야한다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그렇게 살아오다보니 ‘배려’와 ‘나눔’이 고스란히 몸에 배었다.

장애인들이 덕양탕을 찾는 날은 수요일. 한 달에 한 번이지만 시간 제약은 따로 정해지지 않았다. 편안하게 씻고 맘껏 쉬다가 가라는 부부의 마음이 담겼다.

안 씨는 “장애인이라고 해서 우리와 다를 것이 어디 있겠냐. 하나도 없다. 결국 우린 다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고 사랑을 줄 수 있는 하나의 인격체”라며 “덕양탕을 찾는 고객들 또한 이런 부분을 잘 이해해주고 불편함이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서로 많이 생각을 해주고 도와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시간적, 공간적 여유만 되면 봉사활동도 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베풀고 싶다”며 “목욕탕 제공은 아주 작은 것에 불과하지만, 공간을 제공해줄 수 있어 너무 기쁘다”고 덧붙였다. 이토록 고운 마음을 가진 부부는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을까.

덕례리 덕, 광양 양. 그래서 덕양탕

‘덕양탕’은 올해로 19년이 됐다. 부부는 2001년도에 덕양탕을 인수받고 처음 광양땅을 밟았다. 안 씨의 고향은 순천 승주면, 남편인 박 씨는 여수 삼일면이다. 부부의 인연도 기가 막히다. 안 씨가 17살 앳된 소녀 시절이었다. 신나는 방학을 맞아 계획을 세우던 중, 여수에 살고 있는 막내 이모의 갑작스런 교통사고 소식을 듣고 곧바로 여수에 있는 한 병원으로 갔다. 다행히 심각한 정도는 아니었다. 며칠 동안 이모 옆에서 병수발을 하면 되겠다 싶었다. 이모는 택시에 치어 사고가 났다. 더 충격적인 것은 당시 그 택시한테 치어 사고가 난 사람은 이모 뿐 만이 아니었다. 바로 지금의 시아버지도 함께 치었다. 사고가 난 후 각각 옆 병실에 입원을 했다. 지금의 남편은 당시 군 입대를 앞두고 아버지의 병수발 중이었다. 서로 쌀을 씻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한 알 한 알의 정이 쌓여갔다. 남편은 군대를 간 후 집으로 편지를 했다. 휴가 때는 승주까지 찾아와 얼굴만 보고 갔다.

안 씨는 “21살도 넘은 남자가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고등학생을 찾아오니 엄청 혼냈지”라며 “그때 나도 아무것도 몰랐지, 남자가 뭐고…근데 뭐 그러다가 21살에 아들을 낳았지. 하하”라고 웃어보였다.

박순현 씨는 “아내한테 첫 눈에 반했다”며 “살아갈수록 더 많이 느끼게 된다. 늘 누군가를 돕고 살아야한다고 말하는 아내가 정말 사랑스럽고 존경스럽다”고 애정을 표현했다.

21살에 아들을 낳은 후 1983년도 여수 중앙예식장에서 ‘부부’가 됐다. 일찍 낳은 아들 둘은 벌써 장가를 가고 부부에게 예쁜 손자손녀도 안겨줬다. 이보다 더 한 ‘행복’이 있을까.

불쑥 찾아온 또 다른 재미, 섹소폰

평생 목욕탕에만 매여 있던 부부에게 ‘여유’도 생기기 시작했다. 어느 날 남편 박순현 씨의 돌발 선언. “색소폰을 좀 배워볼까?”. 안 씨는 ‘왜’ 혹은 ‘이 사람이…’ 라는 말은 꺼내지 않는다. “얼마면 배우는데? 하루 2시간씩 배우면 될라나?”하고 남편의 색소폰 입문을 지지했다.

그 후 7년이 지난 지금, 박순현 씨는 색소폰을 들고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연주 봉사’를 펼치고 있다.

부부의 앞으로 바람은 항상 지금처럼만 살아가는 것. 욕심은 채우려 할수록 채워지지 않는 법이다. 함께 나눠먹고 도와가면서 사는 것이야말로 ‘행복’을 찾아가는 진정한 길이다.

부부는 오는 20일 특별한 여행을 떠난다. 부부가 함께 가는 것은 ‘첫 번째 여행’이다. 부부는 “여름에 중국 백두산으로 여행을 떠나게 됐다”며 “목욕탕을 지키느라 부부가 함께 가는 것은 꿈도 못 꿨는데, 벌써부터 설렌다”고 기뻐했다.

특별한 하루는 ‘특별함’이 만드는 것이 아니다.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마음’ 이 만든다. 진정한 마음이라는 종착지로 함께 걷고 있는 부부의 ‘여생’길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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