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마지막 직업‘ 경비원’ 3년 째 대림 아파트를 지켜오고 있는 이용원씨

인생 마지막 직장을 얻다
나는 ‘경비원’이다

순찰 돌러 갑니다! 기쁜마음이 경비원이 가져야할 기본!

2013년 10월, 새 직장을 얻었다. 바로 아파트 경비원. 다시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벅차올랐다. 경비원이 되기 전, 이용원 씨(66)는 광양제철소 협력업체에서 20여년 넘게 일했다. 매일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힘든 순간도 많았지만 보람찼다. 힘들 때마다 가족을 생각했다. 가족은 그에게 살아가는 이유이자 자양강장제다. 가족이라는 단어에 별다른 수식어가 필요하랴.

이 씨의 손길이 닿은 곳마다 하나의 ‘성과’가 됐다. 재미있었다. 오랜 시간 몸담았던 직장을 퇴직한 뒤 2년 동안은 자신에게 ‘쉼’을 선물했다.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맛있는 것도 먹고 좋은 곳도 보면서 가끔은 농사도 지으면서 그렇게 마음의 여유를 얻었다. 하지만 마음에 오래 머물 것만 같았던 여유는 녹아버린 얼음처럼 씁쓸해져갔다.

경비원을 뽑는다는 공고는 우연히 봤다. ‘설마 되겠어…. 에잇, 그래 뭐 밑져야 본전이지’ 라는 마음으로 덜컥 펜을 들었다. 결과는 ‘합격’ 이었다. 이용원 씨는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며 “떨어질 줄 알았는데 합격을 해서 얼마나 기쁘던지, 아내를 부둥켜안고 방방 뛸 정도였다”고 자랑했다.

3년차 경비원, 입주민들 마음알기 연습 중

사람을 대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가스레인지 불도 못 켜는 사람이 12첩 밥상을 만들어 내는 기분이었다. 제각각 다른 입주민들의 입맛을 맞추느라 하루는 정신없이 흘러갔다. 하지만 정작 답은 ‘나’에게 있었다. 입맛을 맞춰야하고 무조건 잘해야만 한다는 부담감이 입주민을 더 불편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 씨는 “온 지 3년 됐지만, 불찰도 한 번 없었고 큰 일 난 적도 없어”라며 “입주민 모두가 경비원을 생각해주기도 하고, 그만큼 아파트 사용하는데 있어 불편한 점이 없도록 많이 신경을 쓴 덕분 아니겠어”라고 미소를 지어보였다.

경비일지를 써야 퇴근을 할 수 있다. 하루의 마무리.

3평 남짓 경비실에는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다. 손때 묻은 열쇠꾸러미, 아파트 각 호에 의견을 전달하는 인터폰, 캐릭터 스티커가 가득 붙여진 오래된 텔레비전, 에어컨, 화장실, 침대, 책상, 냉장고, 밥솥까지. 이 곳에서 이 씨는 끼니를 해결하고 야간 근무 때는 잠을 자기도 한다.

책상 위에 ‘경비 일지’가 눈에 띈다. 하루 기록을 꼼꼼하게 적어놨다. 이 씨는 “오늘은 쓰레기장 점검, 엘리베이터 점검, 계단 점검 등을 했다”며 “이게 하나의 ‘경비록’이 아니겠나. 하하. 이걸 써야 오늘 내가 무얼 했고 앞으로는 또 뭘 할 계획인지 한 눈에 알게 된다”고 설명했다.

하나라도 까먹지 않기 위해서는 메모가 필수.

이 경비실의 특별함은 바로 버스표 ‘사이드 미러’다. 창밖으로 설치된 사이드 미러 덕분에 더 많이 그리고 더 가깝게 주변을 파악할 수 있다. 사이드 미러는 누군가 버스에서 떼어와 경비실에 달아놓은 것이다. 재미있는 풍경이다.

이용원 씨가 문득 지난 인생을 뒤돌아본다. 그는 “넘치지는 않지만 부족함 없이 자식도 키워 결혼도 시켰고, 사랑하는 아내도 옆에 있으니 이 정도면 아주 잘살았다”며 “너무 열심히 살아서 후회도 없다”고 말했다. 한 가지 그리운 것은 ‘어머니의 밥상’ 이다. 이 씨는 “어머니가 10남매를 다 키우고 있었고, 어머니가 차려준 밥을 먹을 기회가 많지 않았다”며 “좁은 방 안에서 가족 모두가 부대끼면서 먹고 자고 생활을 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어머니의 손맛이 듬뿍 담긴 밥상. 그 맛을 모르고 자라왔더라도 이용원 씨가 차려내는 인생 밥상은 꿀맛이다.

“경비원이요? 그만두라고 할 때까지 할랍니다” 오래 살라는 의미에서 아버지가 지어줬다는 ‘이용원’이라는 이름처럼 오래오래 대림 아파트를 지켜주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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