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 노동자가 바라본 세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세어라, 청년 경재철”

▲ 매일 아침 컨테이너 부두 사거리를 지키고 있는 경재철씨.

‘해고’라는 단어 두 글자에 무너졌던 인생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해고’라는 두 글자는 매일 밤 온 몸을 짓눌렀다. 10년 동안 회사에 몸담고 있으면서 나의 발전이 곧 회사의 발전, 회사의 발전 또한 나의 발전이라고 믿어왔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온 인생이 아니다. 오직 내 삶이기 때문에 열심히 살아왔다. 그토록 열심히 달려왔기에 ‘해고’는 인정할 수 없었다. 받아들일 수 없는 결과 그리고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 사이에 슬픔이 겹겹이 쌓여갔다. 해지고 또 해져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한 땀 한 땀 기워주던 것은 ‘가족’과 ‘친구’ 그리고 ‘넌 해내야한다’는 자기 자신의 ‘의지’였다.

슬픔은 열정이라는 땀과 골고루 잘 섞여 시멘트처럼 단단해졌다.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으리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아침잠, 화, 술…열정 빼고 다 끊었다

어떻게 해야 성공할까라는 고민을 다르게 해보기로 했다. 어떻게 살아야할까. 결국은 어떤 사람이 되어야하느냐가 관건이었다.

모 자동차 정비사로 4년 동안 일한 경력을 살려 ‘중고차’에 인생을 던져보기로 했다. 밤 12시까지 직접 전단지를 돌리기도 했다. 빈손으로 시작한 사업이라 여기 저기 홍보도 할 수 없었다. 경재철 씨는 “몸으로 때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며 “내가 직접 나서서 홍보를 해보자라고 생각을 하다 유동인구가 많은 컨테이너부두 사거리에 나가기로 했다”고 말을 이어나갔다. 그는 “‘아이언맨’ 옷을 입게 된 것은 조카가 보고 있던 캐릭터들 중 가장 멋있어서다”고 허탈한 웃음을 보였다.

‘차이언 맨’ 경재철씨가 컨테이너부두로 출근하는 시간은 오전 7시쯤. 8개월 전부터 컨테이너부두를 지나는 시민들에게 즐거운 출근길을 선사하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쉬운 길은 아니었다. 목적이 홍보다 보니 ‘민원’도 들어오기도 하고 경찰의 제재를 받을 때도 있었다. 시에서 캠페인이라도 하는 날이면 아이언 맨은 모습을 감추었다.

재철 씨는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면서 홍보를 할 수는 없는 일이다”며 “다른 사람의 입장을 최대한 존중하고 배려하면서 홍보를 하고 싶다”고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그가 컨테이너부두 사거리를 나온 8개월 동안 생긴 변화는 놀라움을 선사했다.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 된 것. 그만큼 책임감도 생겨났다.

경 씨는 “아침잠이 굉장히 많은데, 후회하지 않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노력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며 “처음에는 나와의 약속이었지만, 이제는 시민들과의 약속도 돼 버린 것 같다”고 말했다.

1시간 30분이 넘도록 쓰고 있던 아이언 맨 가면을 벗자 이마 위로 송글송글 맺힌 땀이 흘러내린다. 그는 손등으로 땀을 스윽 닦으며 “8시 30분쯤 인사를 엄청 반갑게 해주는 아이가 한 명 있다. 그 아이와 인사를 하기위해 8시 20분이면 정리를 하던 걸 10분 더 연장했다”고 웃어보였다.

아침마다 학교 가는 길, 차이언맨을 보는 아이의 마음에는 어떤 꽃이 피어나고 있을까. 그가 입고 있는 아이언맨 옷은 통풍도 되지 않는 두꺼운 재질로 돼있다. 온 몸이 땀으로 젖어도 좋다. 즐겁기 때문이다. 목적이 다르면 결과도 다르다.

경재철 씨는 ‘사람’을 먼저 생각한다. 마음은 어떤 방식으로든 통하기 마련이라는 것을 믿는 사람이다. 8개월 전, 이 도로를 지나가는 누군가는 손가락질을 하며 ‘저 사람 뭐야’ 라고 했다. 하지만 그 시민들은 어느덧 차이언맨과 인사를 하며 ‘출근 도장’을 찍고 있다. 변화는 큰 힘이 답이 아니다. 큰 문을 열 수 있는 것은 큰 힘이 아니라 작은 열쇠처럼 말이다.

결국, 사람이 답이다
죽고 사는 건 두 글자 때문이 아니라 오직 ‘나’였다

▲ 경재철 씨

왜 하필 광양에서 홍보를 할까. 그의 고향이 광양이기 때문이다. 그는 진월면에서 태어나 진월초, 진월중, 순천공고를 졸업했다.

다시 일어나기까지는 고향 친구들 덕분이었다. 경재철 씨는 “다 뿔뿔이 흩어져있지만, 진심으로 격려를 해주고 응원을 해주고 있다”며 “나이가 어릴 때는 몰랐는데, 고향이라서 그런지 광양만 오면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말했다. 사무실은 순천에 있지만 중마동에 거주하는 것도 그 이유 때문이다.

해고를 당하고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는 가족도 친구도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대인기피증에 시달렸던 것이다. 그는 “어머니와 누나에게 늘 미안하고, 고맙다”며 “열심히 살고 있는 모습을 보이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아들, 동생이 될 것이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시민들에게는 어느덧 유명인사가 돼버린 ‘차이언맨’이지만, 가족들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 하지만 그는 말한다. 재철 씨는 “고생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 아플테지만, 그래도 열심히 하라고 응원을 해줄 거라 믿는다”고 확신했다. 가족은 그가 살아가는 ‘원동력’이었다. 경재철씨의 앞으로의 바람은 ‘참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것’. 그는 “힘들었던 순간에 도움주신 분들이 많다. 나도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며 “늘 사람이 재산임을 잊지 않고 초심을 잃지 않고 바로서는 사람이 되겠다”고 말했다.

이른 아침 시민들의 출근길에 한 줄기의 희망을 선사하고 있는 ‘차이언맨’. 그가 맞춰가는 인생이라는 퍼즐 중에 가장 멋진 조각은 ‘자기 자신’이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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