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명퇴 후‘ 길’을 찾다

한화손해보험 우수팀장 김재영씨의 휴먼라이프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높이’가 아닌 ‘넓이’다

미취업 상태인 청년층 147만 시대. 2017년 5월 경제활동인구조사 청년층 부가조사 결과다. 게다가 ‘자포자기’형 백수 청년층들이 증가하고 있다는 소식은 씁쓸한 잔향만 남기고 있다.

어둠은 빛과 함께 공존한다. ‘제도’에 얽매이지 않고 현실 속에서 ‘삶의 만족도’를 위해 또 다른 길을 개척하고 있는 한 청년을 만났다.

고교 시절에는 전교 1등, 대학교 졸업 전 대기업 입사 그리고 6년 뒤 명예퇴직까지. 입사부터 퇴직까지 누군가가 걸어온 60살 인생을 나열한 것이 아니다. 올해 서른 셋, 한 청년의 이야기다.

김재영(33)씨는 성황동에서 태어나 성황초를 다녔다. 이후 동광양중, 백운고를 졸업하고 순천대 회계학과를 다녔다. 노력한 만큼 운도 따랐다. 졸업 전 대기업인 한 증권회사에 인턴을 거쳐 최종 입사를 했다.

김재영 씨는 “처음부터 대기업 입사를 목표로 했던 건 아니었다. 금융권으로 취업해야겠다는 생각만 했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지원을 하게 됐고 최종 면접까지 갔을 때도 기대는 하지 않았었다”며 “가장 중요했던 건 ‘자신감’이었던 것 같다. 어딜 가나 무엇을 하나 나에 대한 믿음은 늘 품고 있었다”고 떨림으로 가득 찼던 최종면접 때를 회상했다.

31살, 명예퇴직 결심

젊음은 곧 경험이다

신입사원의 패기를 누가 이길 수 있겠는가. 김 씨는 일이 재미있었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좋았다. 새로운 경험을 통해 사회생활 잘하는 방법, 나만의 업무 스타일, 고객 응대 요령 등을 자신만의 색깔로 만들어 나갔다. 아무리 복잡한 내용이라도 김 씨를 거치면 조리 있게 필터링 됐다.

그렇게 6년, 그는 명예퇴직을 결심했다. 말하지 못할 회사 사정도 있었지만, 한 번 사는 인생 평생 재미와 보람을 느끼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백수와 직장인은 결국 종이 한 장 차이었다. 조금의 힘만 있으면 찢을 수도 태울 수도 있는 아무것도 아닌 종이 한 장은 괜히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었다.

그는 “퇴직을 하고 석 달 정도 공백이 생겼다. 많은 생각을 했다. 공부를 할까. 아니면 아예 다른 길로 가야하나….” 마음에 이미 답이 정해져 있었지만, 그 답이 머리로 이동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김 씨는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가 머리와 마음의 거리라더니, 그 말이 피부로 와 닿더라”며 “아무것도 안 했던 시간일지라도 결국 지나서 보면 그 시간들 덕에 이 자리에 있을 수 있구나 싶은 순간들이 많다”고 말했다.

석 달의 공백은 ‘가구점 영업’으로 채워나갔다. 주위에서는 ‘뜬금없다’는 눈초리를 보내왔다. 가구점에서 생전 처음 영업을 접하면서 어려움이 많았다. 문득 영업을 하는 사람들이 대단해보였다.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 어떤 이야기라도 술술 풀어내야하는 그들이 멋있어보였다.

보험에 대한 편견을 깨다

영업이 아니라 컨설팅으로

그가 택한 두 번째 직업은 ‘보험 설계사’다. 김 씨는 “친구들에게 ‘나 요즘 보험해’라고 했더니 모든 사람들의 반응은 같더라”며 “왜? 너 오래 안 할 거지? 라는 말로 보험설계사를 정말 이상하게 보더라”고 괜한 편견을 속상해했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마음’이라는 한 길만 볼 뿐이었다.

보험을 시작하고 누군가에게 연락하기가 괜히 미안했다. 그는 “보고 싶어서, 생각이 나서 연락을 하고 싶은데, 혹시 오해할까봐 연락을 못한 적도 있다”며 “하지만 가족, 친구, 지인들이 먼저 나서서 ‘너라면 믿고 맡길 수 있겠다’고 말하면서 도와주더라”고 감격해했다.

보험 설계사 3년. 그는 지금 ‘우수 팀장’이 됐다. 그는 “보험을 하면서 남을 도와주면서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내가 자주 접하는 사람은 사고가 난 사람 그리고 아픈 사람이다. 그들에게 내가 도움이 될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며 “보험을 하기 전에는 ‘나’밖에 몰랐다면, 지금은 ‘사람’이 전부가 됐다. 업무 특성을 배제할 순 없겠지만, 사람이 사람과 나누는 정은 그 어떤 것으로도 바꾸지 못한다는 것을 배웠다”고 깨달았다.

열정으로 이뤄낸 김재영 팀장의 성과들.

보험을 하며 마음이 찡한 적도 있었다. 보험 청구 업무를 도와드리기 위해 진상의 한 비닐하우스를 찾았을 때였다. 당시 어르신은 비닐하우스에서 애호박 따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는 “식당을 운영하는 어머니 생각이 나 애호박 한 봉지를 구입하려고 했는데, 한사코 애호박 값을 거부하시더라. 결국은 주머니에 애호박 값을 넣어드리고 가려는데, 애호박 두어 개를 더 봉지에 올려주시고는 결국 호박값도 거절하셨다”며 “별 건 아니지만, 할머니 댁에 놀러가서 집으로 가기 전처럼 푸근함이 느껴져서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 내내 마음이 뭉클했다”고 설명했다.

김 씨의 앞으로의 목표는 딱 두 가지다. 하고 있는 일을 충실하게 해내는 것. 그리고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그가 일궈낸 모든 것들은 ‘가능성’ 이었다. 그는 어차피 안 될 거니까 안하는 것이 아니라 안 되더라도 해보는 도전 정신이야말로 보이지 않는 힘이고 그것이 훗날 가능성이 될 거라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가능성’이 청년실업이라는 대란에 나비효과로 작용이 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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