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게 '일' 만해서 안사람만 속상해요

섬진강을 따라 올라가며 흘러간 옛 노래를 듣는다. 달리는 차창 왼편으로 백운산 줄기가 감싸듯 안아주고 오른편에는 섬진강이 쓰다듬듯이 따라온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 옛 노래를 크게 따라 부르며 다압면 죽천마을로 갔다.

죽천 마을 입구.

죽천마을은 마을 앞에 넓은 백사장을 끼고 주변에 대나무 숲이 산재해 있다. 마을 사이사이로 4개의 내가 섬진강으로 흐른다고 해서 대내라는 뜻의 대나무 죽(竹)에 내 천(川)자를 써 죽천(竹川)마을이다. 현재 54가구 13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으며, 남녀의 비율이 아주 좋다. 섬진강 도로변을 따라 1.9Km의 길이로 마을이 길게 자리 잡고 있으며 주 소득 작물은 배와 밤이다.

마을 입구에 도착하니 올해로 이장직을 맡은 지 3년이 된 김영중 이장님이 버선발로 마중 나와 계신다. 차에서 막걸리를 꺼내 안아들고 앞서 걸어가는 이장님을 따라나섰다.

다압면 죽천마을 김영중 이장님

“원래 마을 어르신들이 많이들 오시는데 오늘은 다들 일이 있으셔서 별로 못 오셨네요”라며 경로당 문을 열자마자 화통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안으로 들어서 막걸리를 내려놓으니 많은 수의 어르신들이 환하게 웃으며 취재기자를 반긴다. 막걸리가 부족하지는 않을까 고민하는 사이 이장님이 어느새 안주와 잔을 가져온다. 인사는 잠시 미뤄두고 이장님과 어르신들의 잔에 막걸리가 채워졌다. 김 이장이 건배제의를 한다.

“올 한해 날도 너무 더웠는데 다들 땡볕에 농사일 하느라 고생들 많이 하셨어요. 마을의 발전과 어르신들의 건강을 위해 건배 한번 하겠습니다. 위하여!”

이장님이 마을 분들께 막걸리를 따르고 있다.

아이고! 취재기자만 빼놓고 다들 즐겁게 한잔 쭈욱 들이키신다. 저마다 맛나다며 막걸리 병을 들고 한참을 살핀다. 이장님 자랑 좀 해달라는 취재기자의 말에 앞 다퉈 말을 꺼내셔서 김 이장을 향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어르신 중 한 분이 “우리 이장이 진짜 뭔 큰일난거 아니믄 아침마다 마을을 죽 한 바퀴씩 돌아. 혹시나 밤사이에 뭔일이 있었나 확인한다고”라며 “나이도 젊은디 궂은일 마다않고 얼마나 착하게 일하는지 몰라”라고 이장님을 치켜세웠다.

또 다른 어르신은 “이장님도 자기 농사일로 바쁜디 우리가 나이가 많다고 맨날 우리꺼 농사부터 다 도와줘. 자기꺼 농사만 맨날 밀린당께”라고 덧붙이자 사방에서 맞장구를 치신다.

어르신들의 칭찬이 끊이질 않자 어느새 취재기자의 옆에 앉은 김 이장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다. 부끄러운 듯 너털웃음을 지으며 연신 아니라고 고개를 젓는다.

이장님의 얼굴도 식힐 겸 마을 자랑을 좀 해달라고 하자 이번에는 어르신들보다 김 이장이 먼저 말을 꺼냈다.

“우리 마을은 매년 1월 1일에 마을 어르신들과 필봉에 올라 해맞이를 해요. 너무 연세가 드신 분들은 산행이 힘드시니까 마을 회관 앞에서 다 같이 떡국 한 그릇씩 하고 재밌게 놀죠”라며 “어르신들 중에 60대가 많아서 마을이 젊은 편이에요. 요즘도 마을 어르신끼리 산행도 꾸준히 다니고, 정월 대보름 때는 남도대교부터 우리 마을까지 마을사람들 다 같이 산책 겸 도보 운동도 했구요”라고 마을의 단합을 제일 자랑거리로 꼽았다.

반면, 김 이장의 요즘 가장 큰 고민거리는 ‘까치와 까마귀’다. 마을 대부분이 밤과 감, 배를 재배하는데 고라니나 멧돼지 같은 산짐승보다 까치와 까마귀가 더 상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김 이장은 “고라니나 멧돼지는 야생동물 피해방지단을 부르면 되는데 까치랑 까마귀는 방법이 없어요. 얘들이 전신줄에 앉았다가 내려오는데 피해방지단이 쏘는 총이 산탄이라 쏘지도 못하고요”라고 말하며 밝은 얼굴에 그늘이진다. 김 이장은 “폭음기랑 폭죽을 쏴도 처음에만 놀라지 나중에는 신경도 안써요. 올해는 유난히 피해가 많네요”라고 덧붙였다.

김 이장은 “술을 좋아해서 마을 젊은 사람들과 술자리도 많이 하게 되고, 집안일보다 자꾸 마을 일을 우선시 하게 되니 안사람 속만 타들어가네요”라고 말하며 아내에게 미안한 감정을 내비쳤다. 그는 그러면서도 “그래도 어째요. 시골 일 하면서 이런 재미라도 있어야지”라고 말하며 멋쩍게 웃는다.

마을 회관에서 내려다 본 모습.

취재를 마치고 마을회관에 올라 전경을 찍는 와중에 새끼 강아지가 달려와 반긴다. 이 녀석이 사진을 다 찍고 마을 입구에 다다를 때 까지 돌아가래도 가지도 않고 자꾸만 따라온다. 마을 비석 앞에 도착하고서야 강아지는 마중 나왔던 거라고 말하듯이 돌아간다. 녀석에게 뜻밖의 배웅을 받았다.

돌아가는 길에 차창을 내리자 시원한 강바람이 불어온다. 멀리 죽천마을 어르신들의 웃음소리가 대나무 숲을 타고 한참을 따라왔다. 마을 어르신들과 김영중 이장님의 얼굴이 벌써부터 다시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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