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힘들어도 '봉사'는 멈출 수 없어

어느새 ‘시즌2’가 시작된 지 3번째 이야기, ‘이장님 막걸리 한잔 하시죠!’의 92번째 이야기다.

익신마을 이장님을 만나러 가는 길을 반기듯 아침 내내 오던 비가 그쳐 어느새 맑은 하늘을 자랑한다. 막걸리도 기대된다는 듯 출렁인다.

익신마을 입구 비석

익신마을은 168가구 290명의 주민수를 자랑하는 큰 마을이다. 높지는 않지만 듬직한 봉화산자락을 따라 이어진다. 내동과 외동, 양동마을이 합쳐져 붙여진 ‘익신마을’ 이름의 유래는 사실 명확치 않다. 익신(益申)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문헌 상 고려시대에 분신(盆申)이라 하다 조선 초기에 들어와 ‘익신’이라는 기록이 보인다.

마을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통일 신라 말 옥룡사에 있던 도선국사가 익신마을 뒤쪽에 있는 절 이름을 일신사(一新寺)라 일컫던 게 계기가 돼 마을도 일신이라 하였다가 익신역이 들어선 후 익신으로 마을 이름이 바뀌었다고 전하고 있다.

익신마을 추동구 이장님

마을회관에 도착해 막걸리를 내려놓자 많은 주민들이 반긴다. 추동구 이장님이 단단한 풍채를 보이며 악수를 청했다. 이장님의 일정이 바빠 마을 어르신들께 막걸리를 내어주고 우리는 밖으로 나와 마을을 거닐었다.

이장님은 “군대를 특공대 태권도 사범으로 제대하고, 내 나이 26살 때 경찰 생활을 시작했지. 교사와 경찰 자격증을 동시에 따서 먼저 연락 온 곳이 경찰이었어요. 아마 교사로 먼저 발령이 났으면 교직생활을 했었겠지”라고 지난 날을 회상했다.

추 이장은 그렇게 38년의 경찰공직생활을 지난 2002년 6월에 마쳤다. 늘 해오던 게 ‘봉사’라 그는 은퇴 후에도 행정사로 ‘무료법률상담’등을 하며 지냈다. 문득 추 이장은 내가 자란 마을을 위해 봉사를 하고 싶어졌다고 한다. 그렇게 올해로 3년째 이장직을 수행하며 마을의 궂은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마을의 골목길에서 오래된 향기가 풍긴다.

슬하에 2남 1녀를 둔 추 이장은 자식과 손주들 자랑 좀 해달라는 말에 “내가 뭐 한게 있나. 누구 하나 모난 것 없이 알아서 잘 컸어요”라며 “아들 둘은 포스코에 다녀서 광양에 있는데 딸은 서울시교육청에서 일하다 보니 그래도 좀 덜 보게 되니 가장 보고 싶지”라고 말했다.

이장님은 “지금 안사람은 중매로 만났어요. 서로 처음 만난 지 14일 만에 결혼해서 데리고 서울로 올라갔었지. 얼마나 고왔던지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니까. 물론 나도 소싯적에는 광양멋쟁이라 불렸지”라며 호탕하게 웃으셨다. 추 이장은 옛이야기를 하며 아내를 향한 각별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익신마을 전경

마을회관 옥상에 올라 이장님과 마을을 죽 둘러봤다. 취재기자는 이장님께 이장 일을 하면서 가장 하고 싶은게 뭐냐고 여쭤봤다. 추 이장은 “마을 앞에 논과 밭이 익신산단으로 바뀐 뒤로 어르신들 나이는 들어가는데 건강이 자꾸 나빠져 ‘환경오염종합측정기’가 꼭 설치됐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며 “마을 뒤에 묵힌 논과 밭이 있는데 농로가 없어서 농사를 못하고 있는데 농로도 설치돼서 어르신들 농사라도 짓고 살 수 있었으면 합니다”라고 답했다.

마을 어르신들과 인사를 나누고 돌아가는 길. 차량 룸미러로 보니 이장님이 잘 가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안보일 때까지 한없이 손을 흔들어주시는 이장님을 보고 문득 오래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생각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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